“꿈 이뤄줘 고맙네”…멕시코 사장님 된 ‘차범근 후계자’의 눈물
2026.06.25 05:00
한국 대표팀이 25일 북중미 월드컵 32강 진출을 걸고 몬테레이에서 남아공과 맞붙는 날, 노씨도 그 경기장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멕시코시티에서 몬테레이는 차로 편도 10시간 거리. 그래도 그는 만사를 제쳐두고 떠나기로 했다.
노씨가 축구를 시작한 건 울산 학성고 1학년 때였다. 시작은 늦었지만 183㎝의 큰 키, 100m를 11초대에 주파하는 스피드, 탁월한 골 결정력으로 금방 두각을 나타냈다. 명지대 4학년이던 1983년 마침내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해 6월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태국전(4-0 승)에서 A매치 데뷔와 함께 2골을 터뜨렸고, 이어진 나이지리아전에서도 결승골로 1-0 승리를 이끌었다. ‘차범근의 후계자’, ‘최순호의 라이벌’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는 “조규성처럼 파워가 넘쳤고, 스피드도 손흥민 못지않았다”고 웃으며 회고했다.
그는 1983년 대우 로열즈와 계약했다. 문제는 당시 대우가 실업팀이어서 규정상 정식 프로 계약을 할 수 없었다는 거다. 노씨는 이런 규칙을 몰랐다고 한다. 뒤늦게 창단해 영입전에 가세한 현대 호랑이 축구단은 이 사실을 알고 노씨를 설득해 정식 계약을 맺었다. 이중 등록 선수가 된 그를 두고 현대와 대우 그룹이 자존심을 걸고 법정 분쟁을 벌였다. 노인호 파문은 김종부 스카우트 전쟁과 함께 1983년 프로축구 출범 초기를 뒤흔든 2대 분쟁 사건이다.
1992년 멕시코시티에 자리를 잡은 그는 34년간 안 해본 일이 없다. “요식업에 정착하기까지 다섯 번 이상 망했다. 현지인 텃세도 심했다. 그때마다 ‘태극마크도 달았는데 이걸 못 견디겠냐’는 오기로 버텼다”고 그는 털어놨다.
사업에서 성공했지만, 마음 한구석엔 늘 축구에 대한 미련이 남았다. “이중 계약 파동이 없었다면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무대를 밟을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품고 살았다”고 했다. 그 아픔이 이번 월드컵에서 조금씩 치유되는 듯하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며 “후배들이 뛰는 모습을 보니 심장이 다시 뛴다. 북중미 어디서 경기하든 따라가서 ‘대한민국’을 외칠 거다. 선배가 응원한다. 특히 공격수 후배들이 더 마음이 간다. 손흥민, 조규성, 오현규 모두 골맛 보고 최대한 높은 무대에 올라다오”라고 했다.
그러면서 “못 이룬 내 멕시코 월드컵 출전의 꿈을 후배들이 대신 이뤄줘 고맙다”고 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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