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페미니즘] 그 사람 ‘손절’하고 싶다고? 고개를 들어 ‘허간민’을 보라!
2026.06.25 06:00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정기연재 시즌 1 [벌거벗은 남자들]이 가부장제 아래에서 왜곡되어 온 남성성에 변화를 모색해왔다면, 시즌 2 [미스터 페미니즘]에서는 영화, 드라마, 소설, 만화, 일상 등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남성성은 무엇인지 함께 탐구하고 상상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요즘은 개인화된 알고리즘으로 인해 예전처럼 한 명이 시대를 뒤흔드는 유행을 만들기 어려워졌다고 한다. 실로 청소년에게 인기 많은 몇 십만 구독자 규모 인플루언서도 나한텐 초면이라 당황스러웠던 적이 많다. 그럼에도 이 난세를 뚫고 좌파부터 우파, 여성, 남성할 것 없이 모두를 평정한 화제의 인물들이 있으니, 바로 '허간민'이다. 유튜브 머니그라피 채널의 B주류초대석에 나온 허키, 김간지, 김민경을 부르는 애칭인데 각자 성격도, 외형도, 직업도 랩퍼와 드러머, 그리고 출판사 편집자로 정말 너무 다르다. 김민경씨 말마따나 "누가 잘 못 꾼 꿈"처럼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이 조합에서 말도 안되는 케미가 폭발해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특히 자유분방하고 다소(?) 험상궂게 생긴 두 남성 아티스트를 '달건이', '불량배'로 부르며 들었다 놨다 하는 김민경씨를 보다보면 그냥 감탄만 나온다. 도저히 가까워질 수 없을 것 같던 관계에 싹튼 우정을 보며, 이것이야 말로 페미니스트의 길이라고 느낀다.
손절이 손쉬운 선택지가 된 사회
이들이 새삼 대단하게 보이는 건 요즘 우리사회에서 이렇게 낯선 이들과 소통하는 시도가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아니 가까웠던 이들과도 정치, 경제, 사회, 종교 등 이슈로 갈등을 빚고 관계를 끊는 일이 빈번하다. 나에게 맞지 않는 사람과 관계를 단절하고 벽을 치는 것이 손쉬울 뿐만 아니라 필요하고 득이 되는 행위로 권장된다. 사실 나도 비슷했다. 현생이 바쁘고 고단하여 인간관계에서까지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페미니즘을 접하고 나서는 친구들 사이에서 농담처럼 흘러나오는 여성혐오적인 표현이, 성차별적인 발언과 조롱의 언어가 거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이를 애써 언급하기보다 포기하는 것이 쉬운 선택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정말 그래도 괜찮을까? 인간이란 무단횡단을 하면서도 떨어진 쓰레기를 주울 정도로 입체적인 존재인데? 더군다나 사회운동은 단지 개인의 덕성을 따지고 드는 게 아닌, 사회경제, 문화 등 구조적 요소를 두루 살펴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일텐데 이렇게 쉽게 문제를 개인화하여 포기해도 정말 괜찮은 걸까?
외로움은 개인을 병들게하고 민주주의 위기를 심화시킨다
서로를 포기한 자리에 남는 건 과연 무엇일까? 한 연구에 따르면 외로움은 매일 담배를 15개비씩 피우는 것만큼 건강에 해로우며 조기사망 가능성을 26~29%높이고 심장병 위험과 뇌졸중 위험은 각각 29%, 32% 높아진다고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시간당 약 100명이 사망한다고 이야기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이러한 외로움과 고립에서 실제 공포와 두려움, 고통을 느낀다. 디지털 공간은 손쉬운 대피소지만 주목, 관심을 통해 굴러가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개인은 외로움을 채우지 못하고 더한 상대적 박탈과 고립감을 느끼기 쉽다. 게다가 소셜미디어(SNS) 기업은 소비자를 묶어두기 위해 더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콘텐츠를 빈번하게 띄운다. 에퀴문도에서 발간한 'Statue of UK MEN' 조사에 따르면 고립된 남성 청년은 여성혐오적 콘텐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기 쉬우며 때로 극단적인 이데올로기로 유도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손절에서 비롯한 외로움이 개인과 우리 사회를 위태롭게 만든다.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얼마 전, 우연한 기회로 정말 낯선 사람들과 함께 일주일간 여행을 다녀왔다. 처음부터 '활동가'라던가 '페미니스트'라는 말로 스스로를 소개했다간 설명이 길어질 것 같아서 그냥 '프리랜서', '강사' 정도로만 이야기 했는데, 나중에는 점점 친해지면서 내가 하고 있는 활동과 단체명을 이야기 해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이런 순간은 적지 않았다. 대학에서, 해외봉사활동에서, 군대에서, 창업 관련 대외활동에서 만난 사람들은 정말 나와 다른 결의 존재들이었으나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인간적인 교감을 나누면서 서로 다른 종교나 정치색, 가치관 보다 인간됨이 보이고 우정이 앞서게 되며 그에 따라 서로를 이해하는 폭도 훨씬 넓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가 별건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배척하지 않고 소통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 그거야 말로 다수결보다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민주주의의 원칙 아닐까. 꼭 '허간민' 같은 조합의 새로운 친구를 사귈 필요도 없다. 돌이켜보면 주변에 소홀해진 관계 하나 쯤 있지 않은가. 상대의 말 한 마디에, 소셜미디어 포스팅에 거리를 두고픈 마음이 든다면 김민경씨의 명언을 다시 떠올리자. "대충 알고 좋아하고, 다 알고 싫어하자" 손절로 우리 관계를 한계 짓기에 인생은 짧고 인간은 복잡하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허간민'이 필요하다.
이한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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