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금빛 종이에 써내려간 만년의 정회… '고종 밀사' 권동수 친필 시문 고국 왔다
2026.06.25 04:31
재미동포 수집가 부부로부터 4월 기증받아 전시
조선 말 문신이자 서예가였던 석운 권동수(1842∼?)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청과 일본을 경계한 고종의 특명을 받고 러시아로 밀입국해 친서를 전달했다. 일본에서 개화파 거두 박영효의 암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만년의 행적은 불확실하다. 국권을 잃자 공직에서 물러나 세상을 등지고 살았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권동수가 만년에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서예 작품이 미국에서 발견돼 최근 한국으로 돌아왔다. 24일 문화유산회복재단은 재미동포 문화유산 수집가 앤드류 김(김병수)·완균 라(라완균) 부부가 소장하고 있던 석운 권동수의 행초서 7언 대련(두 줄) 작품 6폭을 올해 4월 기증받아 충남 아산시 환수문화유산기념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권동수가 짓고 쓴 것으로 보이는 한시는 한 구(줄)에 일곱 글자씩, 총 12구로 이뤄져 있다. 각각 높이 72㎝, 폭 23.3㎝인 금색 용문지(용무늬 종이) 6장에 붓글씨 흘림체로 2구씩 쓰였다. 본래 여섯 폭 병풍을 장식한 서예 작품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용문지만 남아 각 장이 액자로 보관돼 있다.
권동수는 당대 명필로 유명했다. 감식안이 뛰어난 서화 수집가였던 위창 오세창(1864~1953)이 서화가 인명사전 '근역서화징'(1928)에서 그를 "행서(필기로 흔히 쓰는 흘림체)와 전서(도장에 쓰는 가장 오래된 글씨체)에 절대적으로 능했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권동수는 또한 이름난 문장가로, 한시에선 정치적 삶을 등지고 자연 풍경을 바라보며 서화를 즐기는 예술가의 정회(情懷)를 드러내고 있다. '다섯 수레 책은 이미 아이에게 물렸고, 두 이랑 밭은 응당 학들을 위해 남겨두었네'란 구절은 은거 생활을 암시한다.
기증자인 김병수·라완균 부부는 2024년 생육신 일원인 추강 남효온의 '추강집' 목판을 문화유산회복재단에 기증하는 등 해외에 반출된 한국 문화유산을 수집해 고국으로 돌려보내는 활동을 해왔다. 이상근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은 "해외 동포들의 자발적 기증은 유실된 우리 역사의 공백을 메우는 원동력"이라면서 "앞으로도 재외동포들과 국외 소재 한국 문화유산을 조사하고 가치를 확산하는 활동을 할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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