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도 넘는 최악 폭염에 환경계도 손들었다···프랑스 “이제 에어컨 없으면 안된다”
2026.06.24 17:46
온실가스 감축 우선 기조에 까다로운 건축 규제 영향
잇단 인명 피해에 ‘에어컨 도입’ 정치권 공방 격화
40도 안팎의 폭염이 이어지는 프랑스에서 에어컨 도입을 둘러싼 논쟁이 재점화하고 있다. 환경적 측면에서 에어컨 도입에 반대해 온 진보 진영 내부에서도 “이제는 적응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정치권 공방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23일(현지시간)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와 리베라시옹에 따르면 프랑스 녹색당 대표인 마린 통들리에는 지난 20일 LCI 방송 인터뷰에서 “학교나 병원 같은 공공시설에는 에어컨을 설치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에어컨 없이는 더 이상 운영할 수 없는 곳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70년대 환경운동가들이 기후변화 자체를 막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변화에 적응하는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프랑스 환경계는 냉방 시스템 확대가 에너지 소비를 늘리고 외부 기온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며 에어컨 보급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최근 폭염이 일상화하면서 에어컨 도입을 병행하는 새로운 정책적 관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실제 기상 관측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1947년 이후 기록된 폭염의 절반가량이 2010년 이후 발생했다.
프랑스는 올여름 1947년 이후 최악의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보르도와 푸아티에 등 일부 지역은 41도를 넘겨 최고기온 기록을 경신했고 파리 기온도 38.4도까지 치솟았다. 이날 오후 기준 전국 54개주에는 최고 수위인 폭염 적색 경보가, 35개주에는 주황색 경보가 발령됐다. 인명 피해도 잇따르고 있다. 최근 6일 동안 더위를 피해서 물에 들어갔다가 숨진 사람이 최소 40명에 달했다.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총리는 사망자 대부분이 청년층이라고 밝혔다.
급진 좌파 정당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마뉘엘 봉파르 의원은 “(에어컨 도입은) 찬성 혹은 반대라는 이분법으로 논쟁할 수 없는 주제”라고 밝혔다. 봉파르 의원은 “취약 계층이 모이는 장소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것에 당연히 반대하지 않는다. 우리는 에어컨을 살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극우 진영도 에어컨 도입 논쟁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환경 운동가들로 인해 오늘날 폭염 피해가 확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극우 정당 국민연합(RN) 전 대표인 마린 르펜 의원은 차기 대선에서 자신이 당선될 경우 에어컨을 대규모로 보급하겠다고 공언했다. RN은 국민의 에어컨 구매를 위한 무이자 대출까지 지원할 뜻을 밝히고 있다.
프랑스에서 에어컨 도입을 둘러싼 논쟁은 처음이 아니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프랑스의 에어컨 보급률은 약 25%로 한국·일본·미국(약 90%)은 물론 이탈리아·스페인(약 50%)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전국 학교 가운데 에어컨이 설치된 곳도 약 7%에 불과하다.
이는 오랫동안 온실가스 감축을 우선시해 온 프랑스의 환경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최근 정책 중에는 ‘녹색성장을 위한 에너지전환법’에 기반해 2020년 채택된 ‘저탄소 국가전략’과 2023년 발표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생태계획’ 등이 있다. 이에 따라 현재 프랑스에서는 실내 온도가 26도 이하일 경우 에어컨 가동이 제한된다.
거듭된 논쟁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건축 양식과 규제는 에어컨 보급 확대의 걸림돌로 지목된다. 프랑스에는 19세기 중반 지어진 건물이 많아 건물 외벽에 실외기를 설치하는 데 엄격한 규제가 적용돼 냉방 설비 확충이 쉽지 않다.
폭염 피해를 단순히 에어컨 부족 탓으로 돌릴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녹색당 일각에서는 역대 정부가 도시 녹지 확충과 건물 단열 개선 등 기후변화 적응 정책을 충분히 추진하지 못했다며 “에어컨은 근본 대책이 아닌 비상수단에 가깝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르피가로는 전했다.
실제 프랑스 정부는 지방정부의 친환경 전환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녹색기금의 약 3분의 2를 삭감했으며 최근에는 1억9600만유로 규모의 관련 예산도 동결했다.
아직 여름이 본격 시작되지 않은 가운데 올해 폭염은 지난해보다 더욱 심각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프랑스 해상구조협회의 기욤 튀르팽 연안작전 부국장은 리베라시옹 인터뷰에서 지난해 발생한 두 차례 폭염보다 올해 겪고 있는 폭염이 훨씬 길고 강력하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프랑스에서는 6~9월 사이 1418건의 익사 사고가 발생해 409명이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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