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틸렌 만들수록 손해인데 … 석화업계, 감산 안하고 버티기
2026.06.24 17:56
여수 1호·대산 1호 이후
설비 통폐합 한 건도 없어
정부 감축 목표 68% 그쳐
저가 나프타 재고 효과에
1·2분기 실적 개선됐지만
하반기부턴 수익 악화 우려
울산 샤힌 프로젝트 가동땐
에틸렌 공급과잉 가속 전망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구조조정 시계가 중동 위기 이후 '올스톱'되면서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사업 재편을 유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나프타분해시설(NCC) 업계는 중국발 공급 과잉 장기화에도 생산능력 감축이나 설비 통폐합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업황 부진이 3년 넘게 이어지고 있지만 대부분 기업은 설비 가동을 유지한 채 시장 회복만 기다리고 있다.
산업통상부는 지난해 국내 NCC 생산능력을 370만t가량 줄이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추진이 결정된 사업은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의 대산 1호 NCC 통합(110만t)과 여수지역 여천NCC와 롯데케미칼의 설비 조정(140만t) 정도에 그치고 있다. 감축할 예정인 물량은 약 250만t으로 정부 목표의 68% 수준에 불과하다. 나머지 120만t에 대한 구조조정 과제는 여전히 논의 단계에 머물고 있다.
기업 자율에만 맡기면 공급 과잉 문제는 해소되지 않은 채 지연되면서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을 단순히 업황 부진이 아니라 구조적 공급 과잉이 고착화한 위기로 진단하며 정부가 적극적인 조정자 역할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업계에서는 구조조정을 미룰수록 부담이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업계 추산에 따르면 100만t 규모 NCC 설비를 추가로 감축하지 않고 유지할 경우 연간 1500억원 안팎의 손실이 발생한다. 공급 과잉이 장기화할수록 손실 규모는 더 확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1분기와 2분기 석유화학 업계 전반적으로 실적이 개선된 것 역시 일시적 현상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실적 부진에 따른 기저 효과와 재고평가이익이 반영된 결과일 뿐 본격적인 업황 회복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다.
오히려 3분기에는 수익성이 악화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최근 국제유가가 떨어지면서 제품 가격이 추가 하락 압력을 받고 있는 반면 생산에 투입되는 원료 상당수가 고유가 시기에 매입한 고가 나프타이기 때문이다. 원가와 판매가격 간 시차가 발생하면서 마진이 축소될 수 있는 이른바 '역래깅 효과'로 수익성이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다.
기업들의 재무 부담도 점점 커지고 있다. 롯데케미칼과 여천NCC, 대한유화 등 주요 NCC 업체들은 수조 원대 차입금을 떠안고 있다. 업황 부진 장기화로 금융비용 부담이 확대되는 가운데 최근 일부 기업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되면서 자금조달 여건도 악화하는 추세다.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선 기업들조차 단기간 내 실적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롯데케미칼은 비핵심 자산 매각과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을 진행하고 있지만 업황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3분기부터 적자를 이어갈 가능성이 거론된다.
여기에 올 하반기에는 울산지역에서 추진 중인 에쓰오일 샤힌 프로젝트 가동으로 에틸렌(180만t) 프로필렌(77만t) 부타디엔(20만t) 벤젠(28만t) 등 기초유분 물량까지 시장에 쏟아져나오면 공급 과잉은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그런데도 업계가 선뜻 생산능력 감축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이른바 '눈치 게임' 때문이다. 공급 과잉 상황에서도 경쟁사가 먼저 설비를 줄이거나 시장에서 이탈하기를 기다리는 구조가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량을 먼저 감축하면 시장점유율을 다른 경쟁사에 내줄 수 있다. 반대로 모든 기업이 생산을 유지하면 공급 과잉은 지속되고 업계 전체 수익성은 악화한다. 업계에서는 이를 전형적인 '죄수의 딜레마' 상황으로 본다.
한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설비를 먼저 줄이면 시장점유율을 잃게 된다"며 "업황이 언젠가는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가 남아 있어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생산을 이어가는 기업이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사업 재편을 유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개별 기업이 시장 논리만으로 생산능력을 줄이기 어려운 만큼 산업 전체 차원의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경쟁력 있는 설비와 비효율 설비를 구분·제시하고 세제 혜택이나 정책금융 지원을 연계한 구조조정 로드맵과 실제 실행을 세밀하게 뒷받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사업 재편 승인 신속화와 협력업체 보호 대책, 고용 유지에 따른 전직 지원 프로그램도 업계가 요구하는 정부의 역할이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석유화학 산업은 기업별 중복 투자가 많고 설비 효율화도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다"며 "중국의 대규모 증설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개별 기업의 자구 노력만으로는 구조적 공급 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동인 기자 / 이진한 기자]
저작권 보호를 위해 본문의 일부만 표시됩니다.
원문 보기 →댓글 (0)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석유의 다른 소식
모든 소식을 불러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