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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팹 조기 가동해 메모리 초격차…다운사이클 땐 되레 부메랑

2026.06.24 17:58

[반도체 메가투자 시동]
■용인 클러스터 10년 앞당긴다
하닉 2030년 캐파 2배 확장 목표
삼성은 용인 토지보상률 43% 불과
완공시기 단축 어려워 평택에 집중
2027년 하반기 성장세 둔화 가능성
속도전보다 정교한 수급 관리 필요
올 1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공사현장이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다. 연합뉴스
“5년 내 전체 웨이퍼 생산능력을 두 배로 늘리겠습니다.”

이달 초 ‘컴퓨텍스 2026’ 현장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제시한 목표치다. 당시 인공지능(AI) 수요 급증에 발맞춰 메모리반도체 주도권을 쥐기 위한 업계의 절박함이 묻어나온 발언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실제로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 등 글로벌 메모리 양대 산맥은 월 단위로 시장 수요 전망치가 갱신되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캐파(생산능력) 확충 시간표를 매일같이 다시 짜고 있다. 제때 물량을 공급하지 못하면 글로벌 AI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촌각을 다투는 기업들의 행보에 정부도 ‘속도전’을 강조하며 메모리 업계에서는 미묘한 파장이 일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24일 관훈토론회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완공을 기존 2040년 중후반에서 2034~2035년으로 10년가량 앞당겨야 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2030년 이후 폭발할 생산 물량을 감당하기 위해 전공정 팹(공장)을 광주 등 호남권으로 확장한다는 밑그림까지 내놨다. 반면 기업들은 양산 능력 확충이라는 큰 방향성에는 동의하면서도 당장은 기존 투자 계획을 차질 없이 이행하는 것이 먼저라며 정부의 미래 청사진과 뚜렷한 온도 차를 드러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철저한 셈법에 따라 자체 투자 계획을 수립·이행 중이다. SK하이닉스는 웨이퍼 기준 월 55만 장 수준인 생산 역량을 2030년까지 약 110만 장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내년 청주 M15X 완전 가동(약 10만 장)과 2030년 완공될 용인 1기 팹(약 36만 장)을 더한 수치다.

삼성전자 역시 가동 중인 평택 P5 팹 등 기존 사업장의 유휴 부지를 십분 활용하는 한편 시황에 맞춰 용인 국가산단 조성을 탄력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현실적 장벽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당장 총 360조 원이 투입되는 삼성전자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의 올 3월 말 기준 토지 보상률은 43%에 불과하다. 첫 삽을 뜨기 위한 기초 작업조차 절반을 넘기지 못한 셈이다. 짓고 있는 평택 팹조차 업황에 따라 건설 일정을 월 단위로 조율하는 마당에 토지 수용도 끝나지 않은 용인 산단의 완공 시기를 일괄적으로 10년이나 앞당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SK하이닉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30년 용인 1기 팹 완전 가동을 최우선으로 할 뿐 4기 팹 전체를 2030년대 중반까지 완성한다는 세부 계획은 아직 구체화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당장 용인과 평택 현장만 해도 전국의 대형 크레인과 건설 인력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어 추가적인 자원 확보도 쉽지 않은 형편이다.

업계 일각에서 “정부가 광주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이라는 결론을 미리 정해두고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용인 팹 조기 완공이라는 풍선을 띄운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설령 단기간에 설비를 쏟아부어 공장을 짓는다 해도 과잉 투자의 후폭풍이 닥쳐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아무리 AI 수요가 폭발적이라 해도 메모리반도체 산업은 본질적으로 사이클(주기)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호황기에 무리하게 덩치를 키웠다가 칩 가격이 하락하는 다운사이클을 맞으면 기업은 천문학적인 고정비와 적자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역대급 호황 속에서도 올해부터 3년간 설비투자 규모를 예년보다 보수적으로 잡은 일본 키옥시아의 행보가 대표 사례다. 키옥시아는 2022년 1조 엔 규모의 대대적인 증설에 나섰다가 이후 불어닥친 수요 급감으로 5분기 연속 적자의 늪에 빠졌다. 이 뼈아픈 경험이 최근의 신중한 투자 기조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시장조사 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역시 올해 메모리 시장 규모가 1500조 원으로 지난해 대비 약 4.2배 급성장하겠지만 2027년에는 2100조 원 규모로 성장세(전년 대비 40%)가 상당히 둔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신규 설비 가동이 본격화되는 2027년 하반기부터는 공급 증가에 따른 가격 조정 가능성까지 열어뒀다. 반도체 주도권 경쟁의 승패가 맹목적인 속도전이 아닌 ‘장기공급계약(LTA)’과 맞춤형 고대역폭메모리(HBM) 중심의 정교한 수급 관리에 달렸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 배경이다.

정부의 광주 반도체 클러스터 구상 등 인프라 확장에 대해 철저한 경제적 타당성 검증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반도체는 단순 제조업과 달리 고도의 역량을 갖춘 핵심 인재가 필수적인 첨단산업”이라며 “교육과 상업, 문화 시설 등 정주 여건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공장을 멋들어지게 지어도 일할 사람을 구하기 힘들 것”이라고 짚었다.

투자의 본질을 정치 논리로 훼손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유병준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들이 당장 호남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새로 지어야 할 정도로 캐파 확대가 시급한 것인지 명확히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며 “젊은 인재들의 지방 기피 현상에 대한 뾰족한 대안 없이 정치 논리만으로 공장을 유치한다면 결국 막대한 혈세 낭비로 이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감도. 사진 제공=용인시
용인 삼성전자 첨단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 국가산업단지 조감도. 용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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