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시간 전
사상 최고 대비 27% 급락한 금값…그래도 중앙은행은 산다 [이슈 분석]
2026.06.24 16:06
세계 중앙은행 45% "올해 금 더 사겠다"…탈(脫)달러가 떠받쳐
올해 초 사상 최고를 기록했던 금값이 최근 최고점 대비 약 27% 하락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매파 기조로 돌아서면서 무이자 자산인 금이 추가적 타격을 받았다. 그런데 정작 세계 중앙은행들은 가격 하락에도 금을 계속 사들이고 있다. 투자 수요는 빠지는데, 중앙은행 수요는 오히려 늘고 있는 것이다.
1월 28일 사상 최고 찍고 27% 하락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현물 금값은 지난 1월 29일 온스당 5595.46달러로 사상 최고를 기록한 뒤 내림세로 돌아서, 24일 오후 현재 4060달러 선에서 거래되며 4100달러를 밑돌고 있다. 최고점과 비교하면 약 27% 하락한 수준이다.
하락의 직접적 계기는 미국 통화정책 전망의 변화다. 미·이란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졌고, 이는 긴축 기대로 이어졌다. 연준은 최근 회의에서 금리를 동결했지만 인상에 대한 지지가 늘고 있다는 신호를 냈고, 케빈 워시 신임 의장은 물가 안정을 되찾겠다고 공언했다. 금리가 오르면 이자가 없는 금은 상대적으로 매력이 떨어진다.
여기에 달러 강세와 증시 매도까지 겹쳤다. 달러 가치가 오르면 달러로 매겨지는 금은 다른 통화 보유자에게 더 비싸진다. 23일(현지시간) 블룸버그는 인공지능(AI) 주도 랠리가 과열됐다는 우려로 뉴욕 증시가 매도세를 보이자 투자자들이 손실을 메우기 위해 금을 팔았다고 전했다. 금은 안전자산으로 알려져 있지만, 시장 전반의 매도 국면에서는 유동성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오히려 팔리곤 한다는 설명이다.
월가, 금값 목표가 줄하향
전망도 빠르게 보수적으로 바뀌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도이체방크는 금값 목표를 최대 22% 낮췄다. 3분기 목표를 종전보다 5분의 1 넘게 내린 4300달러로, 4분기는 17% 낮춘 4800달러로 제시했다. 두 수치 모두 현재가보다는 높지만, 이전보다 훨씬 신중해진 전망이다. 도이체방크의 마이클 슈에 애널리스트는 "연준에 대한 가격 재조정과 견조한 미국 경제지표가 금값을 끌어내린 주된 요인"이라며, 연준이 3~4차례 금리를 올리면 금값이 약 3800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앞서 골드만삭스도 지난주 연말 목표를 500달러 내린 4900달러로 조정했다. 연준이 올해 금리를 인하하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금 상장지수펀드(ETF)에서 자금이 계속 빠지면서 평소 금값을 떠받치던 투자 수요도 눈에 띄게 약해졌다. 도이체방크는 중국 내 금값이 국제 시세보다 싸게 거래되고 있어, 중국의 수입 수요도 시장을 받쳐주지 못할 것으로 봤다.
그런데 중앙은행은 계속 산다
가격 급락과 투자 수요 이탈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한 축이 있다. 중앙은행이다. 도이체방크조차 "유일하게 강한 기둥은 중앙은행 수요이며, 이런 흐름이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짚었다.
세계금협회(WGC)가 올해 2월 5일부터 5월 19일까지 중앙은행 76곳을 설문한 결과, 응답 기관의 89%가 향후 12개월간 글로벌 중앙은행들의 금 보유가 늘어날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자기 기관의 금 보유를 늘리겠다고 답한 비율이 45%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보유를 줄이겠다는 응답은 1%에 그쳤다. 응답 기관 수도 설문을 시작한 9년 이래 가장 많았다.
실제 매수도 이어지고 있다. 중앙은행은 최근 4년간 연평균 1000톤(ton)의 금을 사들였는데, 이는 직전 10년 평균인 500톤의 두 배에 이르는 규모다. 지정학·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매수 속도가 뚜렷하게 빨라진 것이다.
사들이는 이유는 '탈(脫)달러'와 위기 대비
중앙은행이 가격에 아랑곳없이 금을 사는 이유는 단기 시세 차익이 아니라 구조적 동기에 있다. WGC 설문에서 중앙은행들은 금의 방어력, 포트폴리오 분산, 인플레이션 헤지를 금 보유의 주요 이유로 꼽았다. 여기에 지정학적 위험에 대한 대비와 준비자산 다변화도 금 비중을 늘리는 핵심 배경으로 제시됐다.
특히 달러에 대한 시각 변화가 두드러졌다. 응답 기관의 74%가 향후 5년간 글로벌 준비자산에서 달러 비중이 줄어들 것으로 봤다. 반면 유로·위안 등 다른 통화 비중은 큰 변화가 없고, 금 보유는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금을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지정학 불확실성과 준비자산 다변화 시대에 맞는 전략적 자산으로 보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보관 방식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지난 12개월간 자국 내 보관을 늘렸다는 응답이 9%로 1년 전(5%)보다 늘었고, 해외 보관처를 다변화했다는 응답도 10%로 1년 전(2%)보다 증가했다. 금을 보관하는 위치를 두고도 지정학적 위험을 의식하기 시작한 셈이다.
갈라지는 수요…단기는 연준, 장기는 중앙은행
결국 지금의 금 시장은 투자 수요와 중앙은행 수요가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투자 수요는 연준의 매파 전환과 달러 강세에 밀려 빠져나가는 반면, 중앙은행 수요는 탈달러와 위기 대비라는 구조적 이유로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있다.
이는 금값의 단기 방향과 장기 바닥이 서로 다른 힘에 좌우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장의 가격은 연준의 금리 경로와 미국 경제지표에 휘둘리겠지만, 그 아래를 받치는 바닥은 중앙은행의 꾸준한 매수가 떠받치는 구도다. 도이체방크는 연준이 3~4차례 금리를 올리는 최악의 경우 금값이 3800달러까지 밀릴 수 있다고 봤지만, 동시에 중앙은행 수요만큼은 당분간 견조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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