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Aview 로고

VIEW

과학자
과학자
[단독] "한국에서 과학자 하면 바보"…우울한 과학고 동창회 뒤에는

2026.06.24 04:31

편집자주

'짝퉁'과 '탈취'만으로 중국의 첨단기술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중국은 인공지능(AI)·로봇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중국 혁신의 현장을 들여다보고 한국이 무엇을 경계하고 무엇을 배워야 할지 짚어봤습니다.

지난해 12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최재형(29·가명)씨의 깜짝 입국에 맞춰 최씨가 졸업한 과학고 동창회가 열렸다. 정기 멤버는 최씨가 졸업한 해에 서울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한 10명. 그러나 이날 모인 이들의 표정은 그렇게 밝지 않았다.

"너도 박사 따고 한국 안 들어올 거야?"

서울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동기가 최씨에게 불쑥 물었다. 잠깐 주저하던 최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 비해) 기회도 많고, 급여도 더 후하니까." 조용히 듣던 다른 동기가 말했다. "왜 공대를 갔을까, 의대 한 번 써볼걸."

서울대 공대 진학자 절반이 의대에 갔다는 기수도 있는 마당에 최씨와 동기들은 나름 공학자의 길을 착실하게 걷는 축에 속했다. 그런데 이날 모인 과학고 동기들은 최씨를 포함해 공학도 넷뿐. 나머지는 의대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으로 진로를 틀었고 대기업에 취업하기도 했다. 미국에 정착하러 떠난 동기도 있었다. 이들은 모임 때마다 돈과 일자리를 걱정하는 공학도들의 한탄에 어색한 표정을 짓다 아예 발길을 끊어버렸다.

과학고와 서울대 입학 때만 해도 연구자의 꿈을 함께 키운 이들은 왜 연구실을 떠나버린 걸까. 이유는 명료했다. '연구'는 중시하면서 '연구자'는 중시하지 않는 모순된 현실과 맞닿아 있었다.

'OECD 2위' R&D 예산에도 떠나는 인재

예산만 놓고 보면 한국은 과학기술에 진심인 나라처럼 보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무너진 이공계 생태계를 복원한다"는 취지로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인 35조5,000억 원의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을 편성했다.

여기에 대기업 등 민간기업 투자까지 더해지면 한국의 연간 R&D 비용은 131조 원에 달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5.13%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선 이스라엘(6.35%) 다음으로 높다.

그러나 과학기술 인재들은 이런 통계 수치와는 상반된 움직임을 보인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발행한 '한국의 고급인력 해외유출 현상의
경제적 영향과 대응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부터 10년간 34만 명의 이공계 인력이 해외로 떠났고, 이 중 석·박사급 인력이 9만 6,000명에 이른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외국인 첨단 인력들에 주로 부여되는 미국의 고급인력 취업비자(EB-1·2)를 놓고 보면, 한국인은 10만 명당 10.98명이 비자를 발급받았다. 일본(0.86명)의 12배, 중국(0.94명)의 11배에 달한다.

연구는 중시하지만 연구자는 홀대

과학기술 인재의 '엑소더스' 이유로는 연구자에 대한 열악한 처우가 가장 먼저 거론된다. 이는 정부 소속 연구자의 급여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일보가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파악한 과기부 산하의 정부 출연연구기관 23곳의 지난 5년간 연봉 상승률은 △2020년 2.58% △2021년 0.81% △2022년 1.29% △2023년 1.45% △2024년 2.52%였다. 같은 기간 평균 물가상승률(3%)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대졸 연구원과 박사급 연구원의 평균 연봉은 각각 4,060만 원과 7,739만 원으로 파악됐다. 삼성그룹 대졸 신입사원의 평균 연봉은 5,500만 원 수준이다. 한국천문연구원 소속 정민섭 선임연구원은 "박사학위를 받고 출연연 첫 월급으로 240만 원을 받았다. 대리운전이라도 뛰어야 하는지 고민했다"며 "10년을 들여 학위를 따도 충분한 보상이 주어진다고 보기엔 미흡하다"고 토로했다.

반면 해외 출연연에서는 한국만큼 '월급 걱정'을 크게 하지 않는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대표 국립연구소인 '오크리지(ORNL)' 채용 공고를 보면, 학사 졸업 정규직 연구원의 초봉은 7만 달러(약 1억644만 원), 박사는 12만 달러(1억8,246만 원)부터 시작됐다. MIT로 돌아간 최씨가 미국에 남겠다고 결심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기업마다 다르지만, 갓 졸업한 박사가 실리콘밸리에서 받는 초봉은 최소 3억 원 정도예요. AI처럼 주목받는 분야라면 5억 원까지도 받을 수 있고요.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영향을 안 받는다고 얘기할 순 없죠."

한국일보가 입수한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출연연 재직자 1,24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복수 응답)에서 '낮은 임금 및 보상'은 '인재 유입 저해 요인'과 '인재 유출 유발 요인' 모두에서 1위로 꼽혔다. 응답자는 각각 1,089명(87.5%), 1,037명(83.4%)이었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는 과학기술 분야 출연연 지원·육성·관리를 맡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출연연에서 둥지를 트는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게 나타난다. 지난해 한국은행이 국내외 이공계 연구자 2,7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42.9%가 향후 3년 내 외국으로의 이직을 고려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대와 30대 젊은 층은 10명 중 7명이 외국행을 고민하고 있었다. 해외 이직을 생각하는 주된 이유(복수 응답)로는 △금전적 이유(66.7%) △연구 생태계 및 네트워크(61.1%) △기회 보장(48.8%) 등이 꼽혔다.

출연연으로 유입되는 해외 인재가 줄어든 흐름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된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가 박사급 정규 연구직 신규 입사자를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2016년엔 국외 인재 비율이 14.4%였으나 지난해엔 3.8%로 크게 줄었다.

10년 가까이 연구해 박사학위를 따도 안정적인 일자리가 담보되지 않는 점도 인재들을 해외로 내몰고 있다. 특히 연구인력을 든든히 확보해 선제적으로 치고 나가야 할 '차세대' 첨단 분야는 상황이 더욱 좋지 않다. 한국뇌연구원 소속 정민영 박사는 "(한국뇌연구원이) 뇌과학과 관련된 가장 큰 출연연인데, 연구인력 200명 중 정규직은 절반도 안 된다"며 "선진 연구가 왕성한 해외에서 학위를 딴 뒤 국내로 돌아오고 싶어도 정규 일자리가 없어 외국에 남는 연구자들이 넘친다.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하고 싶은 연구도 못 한다

열악한 금전적 처우 이외에도, 연구의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 것도 한국 이공계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정권마다 바뀌는 연구 방향 탓에 연구비를 수주하려면 연구의 연속성을 포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전문연구기관 소속의 한 연구원은 "윤석열 정부는 해외와의 협업을 강조했지만, 이재명 정부는 AI 관련성을 부각시키면 수주 확률이 높아진다"며 "이번에도 과제를 따기 위해 AI와의 연결고리를 찾느라 고생했는데, 정작 꾸준한 투자가 필요한 기초과학 연구는 상대적으로 소홀해진 것 같아 자괴감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깐깐한 예산 증빙으로 인한 '가짜 노동'도 연구자들에겐 부담이다. 특히 감사가 엄격한 국가 연구비의 경우엔 시약 하나를 사려고 해도 매번 구매 사유를 기재하고 여러 업체의 견적서를 토대로 비교군을 문서로 작성해야 한다. 국내 과기원을 졸업하고 미국 중서부의 사립대 공대에서 박사 과정 중인 이모(28)씨는 "한국 연구실에 있을 땐 석·박사급 연구원들이 돌아가며 매주 '총무 당번'을 섰는데, 당번이 되면 폐기물·영수증 정리하고 서류 작업만 해야 했다"며 "미국은 전담 직원이 배정돼 오로지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확답이 필요하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의 입학학생처장을 맡고 있는 조용철 뇌과학과 부교수는 '한국 이공계를 떠나는 인재들을 어떻게 붙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에 선뜻 답을 내놓지 못했다. "솔직히 붙잡기 쉽지 않죠. 학생들이 '열심히 연구하면 다음엔 뭐가 있냐' '먹고살 수는 있는 거냐'고 물으면 머뭇거릴 수밖에 없거든요."

과학만을 바라보며 국가연구기관에 입학한 젊은 인재 수천 명을 만나본 그의 진단은 냉정했다. "똑똑한 학생들이에요. 미래가 불투명해 보이면 안정된 시스템이 보장된 곳으로 빠르게 발길을 돌립니다. 의대에 진학하거나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것도 이 때문이고요."

조 교수는 성실히 연구에 매진한다면 훌륭한 과학자로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비전을 정부와 학계가 보여주는 게 시급하다고 짚었다. "이 일(연구)이 왜 필요한지는 당사자들이 가장 잘 알고 있어요. 성과를 알아주고 이에 걸맞은 보상만 해준다면 인재들은 연구실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인재들이 남아야 국가 경쟁력이 높아집니다."

2026 차이나 리포트

  1. ① <1> 중국 과학굴기 해부: 인재 도둑은 없다
    1. • 한국 영재 '중국 공대' 갈 때, 중국인은 '한국 도피 유학' 온다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09340004827)
    2. • '인재에 미친 나라' 중국이 한국인 교수에게 건넨 것들... 억대 연봉·공항 프리패스·영주권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09340000168)
  2. ② <2> 중국 과학굴기 해부: 우리가 외면한 중국
    1. • 짝퉁? 탈취?… 중국이 말했다 "첨단기술 빼앗길까 걱정"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09330000486)
    2. • "협력 안 하면 중국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반중 정서'에 주한중국대사의 경고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10000002371)
    3. • 중국의 과학기술은 훔친 것?... '현실 직시' 막는 혐중 인식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09350000631)
    4. • 주한중국대사 "중국 과학기술 새로운 단계, 한국 객관적 인식 확립해야" [인터뷰 전문]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10000000059)
  3. ③ <3> 중국 과학굴기 해부: 중국의 실리콘밸리
    1. • 인재들이 '제 발로' 모인다… 잘 나가는 美 창업자들도 앞다퉈 '선전행'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09330002916)
    2. • 미국에서 6개월 걸릴 일이 '여기'선 6주… 대표 '기술 관광지' 된 선전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09320002164)
    3. • 15분 만에 드론이 망고주스 배달… 선전에선 미래기술이 일상이다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09380005631)
  4. ④ <4> 중국 과학굴기 해부: 마피아와 카피캣
    1. • "퇴사했대" 사흘 안에 소문이 '쫙'… 선전 생태계 확장하는 'DJI 마피아'의 힘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09340001535)
    2. • "아이템도 없는데 300억 줘버려요"… '출신' 하나로 투자자 줄 서는 이 기업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09380001807)
    3. • 무엇이든 2시간 안에 구한다... '짝퉁 성지' 화창베이가 '제조 메카' 된 까닭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09380004431)
    4. • 신입은 일 안 준다? '이곳'선 예외… '천재 엔지니어' 키우는 비결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13020000224)
  5. ⑤ <5> 중국 과학굴기 해부: 기술 포비아는 없다
    1. • "이게 무인차라고?" 한국 vs 중국 자율주행 택시 직접 타봤다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09330004500)
    2. • 한국은 2028년으로 미뤘는데 중국은 이미 손님 태운다… UAM 격차 현장 [인터뷰]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09320003408)
    3. • 춤추는 로봇은 시시하다... 중국이 진짜 키우는 건 '일하는 로봇'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09320001137)
    4. • 중국 로봇 "실리콘밸리도 못 따라온다"... 인간 기록 깬 로봇 뒤엔 [인터뷰]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09310003125)
  6. ⑥ <6> 중국 과학굴기 해부: 공산당의 뚝심
    1. • '이공계'에 미친 중국 지도부의 '뚝심'... 반도체에만 299조 쏟았다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09390002340)
    2. • "여기가 딥시크 창업자 집이래"… 과학기술자가 의사보다 존경 받는 중국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09400000454)
    3. • "테슬라는 아무나 살 수 없지만 우리는 다르다" 중국 BYD의 자신감[인터뷰]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0309390003570)
  7. ⑦ <7> 중국 과학굴기 해부: 어두운 한국 연구실
    1. • "한국에서 과학자 하면 바보"… 우울한 과학고 동창회 뒤에는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2115110002254)
    2. • 중국은 양자·우주 향해 질주하는데…한국선 "인프라도, 연구할 사람도 없다"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62115120000029)

이유진 기자 iyz@hankookilbo.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관련기사
- 심수창 '이혼 후 월세살이, 남산 보이는 자가 있었지만… '
- '음주 뺑소니' 김호중, 30일 출소… 만기 5개월 남기고 가석방
- 박지성 '손흥민 조기 교체 아쉽지만, 감독 권한… 책임도 감독의 몫' [2026 월드컵 홍명보호]
- '300만 닉스' 찍자 외국인들 던졌다… 롤러코스터 코스피에 '공포감'
- '하룻밤 묵으면 10만 원 준다'... 지방 관광객에 돈 돌려주는 이유는
- '정청래 불출마' 압박한 송영길… 전대 앞 李대통령 독대, 무슨 뜻?
- 李, 청년층 이탈 의식했나 '역대급 코스피, 청년에겐 딴 세상...소외감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 '尹, 가슴으로 이해' 인요한, 적십자 회장 선출되자 '계엄은 불법·잘못'
- 아이는 왜 길 아닌 수풀로 향했나… 주왕산 초등생 사망 46시간의 흔적
- 이강인, '경고' 받으면 32강 못 뛴다... 피할 수 없는 VAR의 눈

저작권 보호를 위해 본문의 일부만 표시됩니다.

원문 보기 →

댓글 (0)

0 / 1000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과학자의 다른 소식

과학자
과학자
5시간 전
[유미's 픽] G7 효과 본 '비바테크'...규제만 하던 유럽, 미·중 AI 판 흔드나
과학자
과학자
5시간 전
올해도 '오픈런'…AI 시대, 서울국제도서전이 던질 질문 [D:현장]
과학자
과학자
6시간 전
모감주나무 아래서 번뇌를 줍다
과학자
과학자
6시간 전
1000㎞ 화성계곡서 회오리 30개 포착…무슨 일? [여기는 화성]
과학자
과학자
6시간 전
“오전 7시20분에 왔다” 다시 시작된 오픈런…‘2026 서울국제도서전’ 개막
과학자
과학자
8시간 전
시민과학자 제보로 찾은 월귤 새 자생지…산림청, 보호구역 지정 추진
과학자
과학자
13시간 전
[단독] "한국에서 과학자 하면 바보"… 우울한 과학고 동창회 뒤에는
과학자
과학자
1일 전
[단독] "테슬라는 아무나 살 수 없지만 우리는 다르다" 중국 BYD의 자신감[인터뷰]
과학자
과학자
2일 전
과학자가 추자도 바다에서 발견한 '은빛 등'의 정체... 놀랍다
과학자
과학자
2026.04.24
[주목! 이 책] 내일 날씨는 맑음
모든 소식을 불러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