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사려 집 팔고 가족 붕괴…이래도 탈모 건보가 먼저인가요”
2026.06.24 05:00
유전성 탈모 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 여부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되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희귀·중증 질환자들이 늘고 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 김성주(64)씨는 지난 20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생명과 직결된 치료가 ‘재정의 한계’라는 벽에 부딪히는 상황이 적잖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탈모 건보 적용부터 ‘중점 과제’로 추진한다는 소식이 환자들에게 불안감과 불만감을 심어 주고 있다”고 토로했다.
2014년 식도암 4기 진단을 받은 김 대표는 현재 항암 치료를 마치고 추적 검사를 받고 있다. 그는 “우리를 도와주려는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두렵다”면서도 “그럼에도 용기를 내지 않으면, 아무도 우리의 애로사항을 들어주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증질환연합회는 지난 16일에도 성명을 내고 “생명에 지장이 없는 질환에 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처사”라며 “건보의 취지인 ‘의학적 필수성’과 ‘급여 우선순위’를 우선하여 고려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김 대표는 특히 ‘초고가 치료제’에 대한 급여화 추진이 시급한 과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신 항암제나 희귀질환 치료제 등을 처방받기 위해 집을 팔아 비용을 대다가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경우도 많다”며 “한정된 건보 재원이 생명을 살리는 곳에 먼저 투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희귀 질환 치료제인 ▶웰리렉(폰히펠린다우 증후군 치료제) ▶가텍스주(단장증후군 치료제) ▶오페브(특발성폐섬유증 치료제) 등은 건보 적용의 벽을 넘지 못한 상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건보 재정의 적자 규모가 올해 약 5조원을 기록한 뒤 2035년에는 약 39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탈모 치료제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매년 최소 1797억원의 추가 예산이 필요하다는 추산도 나왔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의사 처방이 필요한 탈모 치료제 공급액은 약 2568억원에 달했다. 본인 부담률 30%를 대입해보면 건강보험에서 약 1797억을 부담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온다.
김 대표는 “이미 질병성 원형 탈모에 대한 건보 적용이 확정된 상태인데 유전성 탈모까지 추가적 지원을 하겠다는 것은 ‘포퓰리즘’에 가깝다”며 “더 많은 돈을 내라는 요구를 인구 절벽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어떤 국민이 동의하겠느냐”고 꼬집었다. 보건복지부는 성인 중증 원형탈모증 환자 치료제(바리시티닙 성분 경구제)에 대한 건강보험 지원을 확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다음달 1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이어 보건복지부는 행정안전부와 함께 다음달 4일 연세대학교에서 공개 토론회를 열고 유전성 탈모 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 여부까지 논의할 계획이다. 복지부는 특히 청년층을 건강보험 우선 적용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탈모로 인한 스트레스·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환자들부터 정부가 살펴주길 바란다”며 “중증 환자가 해외에서 사용 중인 치료제를 구하기 위해 수개월을 기다리는 경우도 많은데, 전담 기구 설치 등 이를 단축하기 위한 대책도 복지부가 들여다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김 대표는 환자들이 소아·분만 등 고위험 필수 분야에서 의료 사고가 발생해도 ‘중대 과실’이 없으면 형사 재판에 넘기지 않도록 하는 의료 분쟁 조정법 개정안(2027년 5월 시행 예정)의 하위 법령 논의에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강조했다. 관련 협의체 소속인 김 대표는 지난 11일 첫 회의에 참석했다고 한다.
그는 “환자들 입장에서는 의사들이 전부 병원을 떠나버리는 상황이 가장 두렵다”며 “향후 중대한 과실의 구체적 기준, 책임보험 설계 및 보장 범위 등을 정하는 논의 과정이 환자들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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