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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평] 법은 어디까지 기대하는가

2026.06.24 07:00

학문은 저마다 다른 인간을 가정
법학은 규범적인 인간을 상정해
규범 수준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
김보희 법무법인 윈 변호사


학문은 저마다 다른 인간을 가정한다. 공학은 인간을 실수하는 존재로 여긴다. 그래서 아무리 어처구니없는 실수라도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부주의를 미리 차단하는 방향으로 설계한다. 경제학은 인간을 이익을 좇아 움직이는 존재로 본다. 그래서 사람들의 선택을 이해득실의 계산으로 설명한다. 이런 학문들은 인간을 있는 그대로, 약하고 계산적인 모습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법학은 다르다. 법은 규범적인 인간을 상정한다.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를 알고, 그에 따라 행동하기를 기대한다. 인간이 규범적일 수 없기에 그것을 규율하려고 태어난 것이 법일 텐데, 정작 그 법이 인간에게 규범적이기를 기대한다는 것. 처음 법을 배울 때, 나는 그 점이 다소 낯설었다. 법은 인간에게 어디까지 기대해도 좋은 것일까.

최근 그 물음을 다시 떠올리게 한 판례들이 있었다. 첫 번째는 양도소득세 면세에 관한 것이었다. 20년 넘게 보유한 주택을 팔고 실거주를 위해 새집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과세 여부가 문제 되었다. 통상 장기보유 1주택자에게 양도세는 면세되는데, 하필 그 시기가 정부의 주택 규제와 맞물려 까다로운 실거주 요건을 맞추어야 했던 때였다. 이사를 하다 보면 빈집으로 곧장 들어갈 수 있는 경우는 흔치 않아, 여러 세대가 일정을 조율하다 입주가 늦어지기도 한다. 세무서는 그렇게 늦춰진 입주가 면세 기한을 넘겼다는 이유로 수억 원의 세금을 부과했다. 1, 2심은 투기 목적이 없었음을 고려해 납세자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대법원은 면세 규정은 본래 특혜 규정이므로 엄격히 해석돼야 한다며 원심을 파기했다.

두 번째는 음주운전에 관한 것이었다. 운전자가 단속에 걸리자 동승한 친구가 자신이 운전했다고 거짓말을 했고, 운전자는 그 거짓말을 거들었다. 법은 사람이 스스로 도망치는 것은 벌하지 않는다. 위기에 몰린 인간이 빠져나가려 하는 것은 본성에 가깝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친구의 거짓말에 올라탄 행위는 처벌된다고 보았다. 다만 이 판단에는 다섯 명의 대법관이 반대했다. 스스로 도망치는 것이 죄가 아니라면 남이 자청한 거짓말에 기댄 것도 자기 도피의 연장일 뿐인데, 거기까지 처벌을 넓히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었다.

두 사건 모두, 법이 인간에게 기대한 수준은 꽤 높아 보인다. 복잡한 세법 규정을 평범한 사람이 정확히 해석하기란 쉽지 않다. 선례가 충분히 쌓이기 전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법은 예외 없이 엄격히 적용돼야 한다고 선언했다. 음주운전 사건도 결이 다르지 않다. 궁지에 몰린 사람이 친구가 내미는 거짓말을 끝내 뿌리치기란 보통의 심성으로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법은, 그 손을 잡지 말았어야 한다고 보았다.

흔히 이런 판단을 두고 '보통 사람의 법감정과 어긋난다'고들 한다. 그런데 그 보통이 정확히 누구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그 보통에 속하는지도 자신이 없고, 매번 사람들의 마음을 조사해 보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런 결론에 어딘가 마음이 걸리는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는 것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결국 문제는, 보통의 인간에게 기대해도 좋을 규범의 수준을 누가, 어디에 긋느냐에 있다. 그 보통이 무엇인지조차 또렷하지 않은데, 누군가는 선을 그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선은 한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법에는 양면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법은 시대를 따라가야 한다. 가치관이 달라지면 법도 발을 맞추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현실과 동떨어진 규범이 된다. 다른 한편으로 법은 쉽게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제 몫을 하기도 한다. 가치관이 어지럽게 흔들리는 때일수록, 무엇이 바뀌지 말아야 할 것인지를 가려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이 그어야 할 선은 늘 어렵다. 두 사건에서 법원의 판단이 심급에 따라 달라지고, 한 법정 안에서도 의견이 나뉜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그 결론이 답이고, 누군가에게는 답이 아니다. 법은 어디까지 기대해도 좋은가. 답을 알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러나 법원이 이 물음 앞에서 매번 망설이고, 다투고, 갈라지면서 더딘 걸음을 떼어 놓는다는 사실이, 외려 조금은 미덥게 느껴지기도 한다. 김보희 법무법인 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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