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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대장주 교체

2026.06.23 19:29

| 김지환 논설위원

지난 22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린 1990년 2월2일 한국기원에선 한국 바둑 1인자 자리를 놓고 치열한 사제간 대결이 펼쳐졌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15세 바둑 신동 이창호(4단)가 스승 조훈현(9단)에게 반집승을 거두고 최고위전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스승의 집에서 숙식하며 지도를 받은 지 6년 만이었다. ‘돌부처’ 이창호의 시대는 그렇게 열렸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자신보다 8세 어린 이세돌에게 왕좌를 넘겨주게 된다. 영원한 1인자는 없다.

바둑판 위만큼 냉혹한 경쟁이 펼쳐지는 곳이 기업의 세계다. 시장이 실적, 미래 전망을 따져 주가라는 이름의 성적을 날마다 매기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 시장인 미국 증시를 보면 ‘영원한 것은 없다’는 진리를 실감하게 된다.

한때 미국 제조업의 상징이었던 제너럴일렉트릭(GE)은 1990년대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시장에 군림했다. 하지만 1990년대 말 마이크로소프트(MS)가 GE를 제치며 정보기술(IT) 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2000년대 중반엔 중국 경제의 성장으로 유가가 치솟으면서 엑손모빌이 대장주로 떠올랐고, 2010년대 들어선 스마트폰 대중화로 애플이 시총 1위를 차지했다. 최근에는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앞세운 엔비디아가 왕좌에 오르며 판을 흔들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예리하게 반응하며 혁신하지 못하면 어떤 강자도 과거로 밀려나고 마는 게 세상의 이치다. 그게 영원한 것은 없는 이유일 것이다.

미국과 달리 국내 증시는 삼성전자의 독주 체제가 25년 넘게 이어져왔다. 2000년 11월 이후 삼성전자는 한 번도 시총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22일 마침내 ‘대장주 교체’가 이뤄졌다. 보통주 기준으로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를 제치고 시총 1위로 올라섰다. 2003년 주가가 135원까지 추락해 ‘동전주’로 여겨졌던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메모리(HBM) 혁신에 성공하면서 이뤄낸 기적 같은 결과다. 상대적으로 HBM 기술 혁신에 뒤처졌던 삼성전자의 안일이 가져온 거대한 지각변동이기도 하다. 이처럼 특정 기업의 장기간 독주가 이어지는 건 어떤 면에서 새로운 혁신기업의 성장이 더디다는 방증이다. 그리 보면 혁신 기업들의 경쟁 속에 대장주 교체 주기가 짧아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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