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감자 캐는 날, 교과서 밖 '호미질'을 생각하다
2026.06.23 10:41
하지인 지난 21일 아침, 충남 부여군 세도면에 있는 주말 농장에 가서 호미로 하지 감자를 캤습니다. 올해는 씨감자를 사지 않고 지난해에 수확해 먹고 남은 싹 난 감자를 심은 탓인지 소출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심고, 가꾸고, 거둔 농작물이라 그런지 애정 만큼은 변치 않았습니다.
| ▲ 하지감자 하짓날인 21일, 주말농장에 가서 호미로 하지감자를 캤습니다. 모양은 볼품 없었지만, 일상에 대한 만족감은 제가 쏟은 땀방울 만큼이나 뜨거웠습니다. |
| ⓒ 신정섭 |
토양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아 여기저기 굼벵이가 야금야금 파먹은 흔적이 보였고, 대체로 알맹이가 크지 않아서 감자 농사지었다고 어디 내보이기에도 민망했습니다. 그래도 감자를 캐는 일은 그 어떤 과업보다도 즐겁고 가슴 벅찬, 스스로 애썼다고 위로를 건네는 소중한 노동이었습니다.
더운 여름날 감자를 캐는 작업은 고되고 힘이 듭니다. 두어 시간 호미질하다 보면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연거푸 물을 들이켜도 금세 지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텃밭 노동이 도회지 삶에 지친 영혼에 위로를 건네준다고나 할까요. 경험해 본 사람만 압니다.
3년 전 하짓날, 텃밭에서 캔 하지 감자를 한 냄비 삶아 교실에 가져갔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반 아이들 스물두 명이 입으로 호호 불어가며 시끌벅적 맛있게 먹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예뻤는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죠.
"감자합니당~"
저는 이 때다 싶어 3분 동안 감자에 관한 즉석 강의를 했지요.
| ▲ 교실에 나타난 삶은 감자 몇 해 전에, 제가 직접 심어 수확한 하지감자를 한 냄비 삶아 아이들에게 제공했습니다. 아이들이 건넨 "감자합니당~" 감사 인사가 잊히지 않습니다. |
| ⓒ 신정섭 |
노동의 가치를 일깨우기 위해
대학 시절에 읽었던 <독일 이데올로기>라는 책에는 아래와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제가 교단에 서기로 결심한 계기를 안겨준 문장입니다. 당시 저는 어느 분야에서도 한 우물을 팔 자신이 없었는데, 저마다 '우물'을 파게 될 아이들에게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는 잘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누구든 마음 내키는 대로 오늘은 이 일을, 내일은 저 일을 할 수 있다. 아침에는 사냥하고, 오후에는 낚시하고, 저녁에는 소를 몰고, 저녁 식사를 한 후에는 문학 비평을 한다. 그러면서도 사냥꾼도, 어부도, 목동도, 비평가도 되지 않을 수 있다."
저는 감자를 캐면서 소외가 없는 삶을 떠올렸습니다. 철학에서 '소외(疏外, alienation)'란 (철학자마다 조금씩 다르게 정의합니다만) "인간이 자신이 본래 속해 있거나 자신의 것으로 느껴야 할 대상, 활동, 타인, 또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분리되어 낯설게 느끼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노동은 창조적 자기실현이어야 하는데 생계를 위한 강제 활동이 되니 소외가 생겨나는 것이죠.
1학기 2차 정기 고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교실에서, 학원에서, 또는 독서실에서 시험 공부를 하느라 여념 없습니다. 감자는 마트에 진열된 상품이지, 땅에서 자라는 식물로 여기는 아이들은 별로 없습니다. 아마도 열에 아홉은 하얗게 핀 감자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학교 급식 메뉴인 감자튀김이 어떤 과정을 거쳐 식탁에 오르는지 알지 못합니다.
물론, 도시에 살면서 호미질할 기회를 얻기는 어렵습니다. 학교에 조그맣게라도 텃밭 체험이 가능한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감자, 가지, 상추, 부추, 들깨, 방울토마토 등 키우기 쉬운 농작물을 심어 아이들 스스로 물을 주고 풀을 뽑게 가르치면 좋지 않을까요?
작은 텃밭 하나가 소외가 없는 삶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가치를 일깨우는 데 텃밭 농사는 제격입니다. 일과 노동의 가치는 교과서로만 가르쳐서는 학생이 내면화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상에서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게 가장 좋습니다.
| ▲ 옥수수가 익어가는 여름 일주일 만에 주말농장에 갔더니 텃밭에서 찰옥수수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습니다. 2주 후면 수확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
| ⓒ 신정섭 |
품종과 파종 시기, 지역 등에 따라 다릅니다만, 중부 지방을 기준으로 삼으면 이제 곧 햇옥수수가 나옵니다. 네다섯 개 한 묶음에 2~3천 원 정도에 팔릴 것입니다. 텃밭에서 직접 옥수수를 재배해 본 사람은 이게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른 봄에 거름 주고, 비닐 멀칭하고, 가물 때 물 주고... 그런데 옥수수는 한 그루에 고작 2~3개밖에 안 열리거든요.
무엇이든 감사한 마음으로
"공짜 점심은 없다(There's no such a thing as a free lunch)"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아무런 대가 없이 얻는 일은 없으며, 겉으로는 공짜처럼 보여도 결국 누군가는 비용을 부담한다는 뜻으로, 경제학에서 '기회비용' 개념을 설명할 때 자주 씁니다. 저는 그 대신, 뭐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 ▲ 노랗게 익은 참살구 교정에 노랗게 익은 참살구를 몇몇 학생들이 따길래 "나무를 심고 가꾼 분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맛있게 먹어라.”라고 말했습니다. |
| ⓒ 신정섭 |
오늘 쉬는 시간에, 학생 몇몇이 교내에 열린 살구를 따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매실과 살구를 구별하기 쉽지 않은데 어떻게 살구인지 알았니?"라고 물으며 "세상에 공짜는 없단다. 이 나무를 심고 가꾼 분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맛있게 먹어라"고 말했습니다. 교사의 말 한마디가 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깊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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