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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화분 속 로즈메리, 셰익스피어 덕분에 달리 보이네요

2026.06.22 13:16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올 봄에 사 온 첫번째 로즈마리 키우기를 실패했다. 변명을 좀 하자면, 허브를 안 키워본 것도 아니다. 올해 텃밭과 화분에서 키우는 바질만 해도 서른 종이 넘는다. 씨앗을 구할 수 있는 품종은 웬만하면 다 심어봤고, 대부분은 살려냈다. 차이브, 딜, 세이지, 루콜라, 민트, 타등 많은 허브들도 내 텃밭 한켠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그런데 유독 로즈메리는 번번이 진다. 물을 좀 자주 줬다 싶으면 뿌리가 물러지고, 좀 말렸다 싶으면 잎 끝부터 갈변한다. 통풍이 좋아야 한다, 배수가 좋아야 한다, 알면서도 막상 장마 한 철 지나고 나면 화분엔 갈색으로 바스러진 줄기만 남아 있다.

그래도 로즈메리를 포기하지는 못한다. 물을 주며 잎을 스칠 때마다 습관처럼 손가락을 문지른다. 바늘처럼 가느다란 잎에서는 특유의 향이 난다. 민트처럼 시원하지만 더 묵직하고 깊은, 꼭 숲을 닮은 향이다. 나는 이 숲을 닮은 향을 좋아해 수없이 죽이면서도 꾸준히 로즈메리를 기르고 있다.

농사와 가드닝으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식물마다 오래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매번 깨닫는다. 나는 해마다 로즈메리와 고군분투를 하는데, 셰익스피어의 희곡 속에서 로즈메리는 한 번도 이렇게 약한 식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무대 위에서 로즈메리는 늘 변하지 않는 것, 끝까지 남는 것의 상징이었다. 로즈메리는 매번 다른 얼굴로 "오래간다"고 말한다. 그런데 내 화분의 로즈메리는 한 철도 버티지 못한다. 이 간극이 이 글의 출발점이다.

▲ 로즈마리 10년전에 로즈마리를 잘 키웠던 적도 있었다.
ⓒ 최수안

물론 셰익스피어가 로즈메리를 처음 무대에 올린 것은 아니다. 이미 유럽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로즈메리를 기억과 추모, 지속성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셰익스피어는 그 오래된 상징을 자신의 인물들에게 건네주었을 뿐이다.

희곡 <겨울 이야기> 4막에서, 양치기의 딸로 자란 공주 퍼디타는 양털깎기 축제에서 손님들에게 꽃을 나눠준다. 나이 든 손님들에게는 로즈메리와 운향(rue)이라는 허브를 권하며 이렇게 말한다.

"로즈메리와 운향, 이것들은 겨울 내내 그 모습과 향기를 간직하는구나."

퍼디타에게 로즈메리는 기억 뿐 아니라 지속성의 상징이었다. 겨울을 지나도 잎과 향을 잃지 않는 식물. 셰익스피어 시대 영국에서 로즈메리는 실제로 사철 잎이 지지 않는 상록 관목으로 여겨졌다.

문제는 내가 사는 곳이 영국이 아니라 강화도라는 데 있다. 한국의 장마철 한 달 동안 쏟아지는 비와 습기는 로즈메리가 원래 자라던 지중해 연안의 기후와는 완전히 다른 조건이다. 로즈메리는 뿌리가 물에 오래 잠겨 있는 걸 견디지 못하는 식물이라, 배수가 조금만 더뎌도 뿌리부터 썩어 들어간다. 물론 올해는 장마가 오기도 전에 잎이 다 말라버렸지만 말이다.

셰익스피어가 한겨울에도 변치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건, 애초에 그가 살던 땅의 겨울이 로즈메리에게 그리 가혹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같은 식물도 어느 지역, 어느 기후에 심기느냐에 따라 상징과 현실은 이렇게 달라지기도 한다.

오필리어의 로즈메리

<햄릿>에서 아버지의 죽음으로 정신을 놓은 오필리어는 사람들에게 상상의 꽃다발을 나눠주며 말한다.

"여기 로즈메리가 있어요. 기억을 위한 것이에요. 부디, 사랑하는 사람이여, 기억해주오."

짧은 한마디지만 이 대사는 수백 년 동안 살아남았다. 이후 로즈메리는 영어권 문화에서 거의 공식적인 기억과 추모의 식물이 되었다.

그런데 막상 키워보면 이 식물이야말로 가장 자주 다시 심어야 하는 식물 중 하나다. 추위에도 약하고 장마에도 약하며, 어느 한쪽으로 조금만 기울어도 뿌리부터 무너진다. 그러니 한 그루의 로즈메리로 평생을 간다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

내가 해마다 새 모종을 들이거나 꺾꽂이로 다시 살려내는 것처럼, 기억도 사실은 그런 식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한 번 심어두면 영원히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꾸 죽고 자꾸 다시 심어야만 이어지는 것 같이 말이다. 오필리어가 건넨 로즈메리도 결국은 사라질 것을 알기에 더 간절하게 기억해 달라고 말했던 것은 아닐까.

▲ 존 에버렛 밀레이, 〈오필리어〉(1851~1852) 셰익스피어의 《햄릿》 속 오필리어를 그린 작품. 출처: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즈메리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즈메리는 한 번 더 꽤 잔인한 방식으로 등장한다. 줄리엣이 가사 상태에 빠지자 원래 결혼식을 위해 준비되었던 꽃들은 장례 장식으로 바뀐다. 로런스 신부는 이렇게 말한다.

"눈물을 거두고, 이 아름다운 시신 위에 로즈메리를 바치시오."

결혼식의 꽃이 장례식의 꽃이 되는 순간이다. 셰익스피어 시대 잉글랜드에서 로즈메리는 실제로 결혼식과 장례식 모두에 쓰이던, 흔치 않게 양가적인 식물이었다. 사랑을 약속할 때도, 떠난 이를 배웅할 때도 사람들은 같은 식물을 손에 들었다.

이 장면을 알고 나니 내 화분 속 로즈메리를 보는 마음도 조금 달라졌다. 잘 자랄 때는 다음 요리에 쓸 생각에 들떠 가지를 다듬고, 시들 때는 또 한 번 졌구나 하며 가지를 잘라낸다. 축하와 애도가 한 식물을 사이에 두고 반복되는 셈이다. 식물을 키운다는 것은 같은 가위로 자르는 일인데도 어느 날은 수확이고 어느 날은 불필요한 가지들의 정리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의 로즈메리는 세 작품에서 모두 오래 남는 것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겨울을 견디고, 기억을 간직하고, 결혼과 죽음 모두를 함께한다. 향기가 강한 식물이 기억의 상징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은 종종 사진보다 냄새를 오래 기억한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이 식물을 계속 심는지도 모르겠다. 문학 속에서 로즈메리가 진 적 없는 싸움을, 내 화분에서는 해마다 다시 시작하게 되니까.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은 장마를 잘 넘긴 가지 하나가 다음 해 봄까지 살아남는 행운을 가지기도 한다. 올해도 내 로즈메리들은 무사히 이 더운 여름을 넘길 수 있을까?

* 본문에 인용된 셰익스피어 대사는 작가가 원문을 바탕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와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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