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 전
모든 단계에서 구멍이 있었다, 선관위를 어떻게 고쳐 쓸까?
2026.06.23 06:40
선거관리위원회의 관리 부실이 참극을 낳았다. 파헤쳐보니 ‘용지 부족’ 투표소가 초기 집계보다 많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중앙선관위)가 6월8일 발표한 조사 결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본투표일이던 6월3일 전국에 설치된 투표소 1만4288개 가운데 투표용지가 부족할 것으로 예상돼 추가 송부한 투표소는 140곳이었다. 사흘 전 발표보다 73곳 늘어난 숫자다. 추가 용지가 실제로 투표에 사용된 투표소는 50곳에서 91곳으로, 투표용지가 바닥나 투표를 중단했다가 재개한 투표소는 22곳에서 26곳으로 늘었다. 투표가 가장 오래 중단된 곳은 송파구 잠실2동 제2투표소였다. 선거 당일 오후 5시50분부터 7시35분까지 105분간 투표가 중단됐다.
중앙선관위가 6월9일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투표용지 부족 관련 실태 및 대책 보고’에 따르면, 선관위가 자체 진단한 이번 사건의 원인은 ①인쇄 비율 부적정 ②상황판단 부족 ③가이드라인 부재 ④위기대응 체계 부재 등 네 가지다. ‘인쇄 비율 부적정’이란, 과거 선거의 투표소별 투표율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이 실수가 전국 여러 곳에서 동시에 발생한 것을 단순 우연이라 보기는 어렵다. 대체 어느 단계에서 대규모 오류가 생긴 것일까? 이번 사태를 재구성하려면, 선관위 특유의 복잡하고 독특한 구조를 먼저 짚어봐야 한다.
선관위는 4단계로 조직돼 있다. 최상위에 중앙선관위가 있고, 하위에 순서대로 17개 시·도 선관위, 255개 구·시·군 선관위, 마지막으로 3555개 읍·면·동 선관위가 있다. 각 단계 선거관리위원회에는 의결기구인 위원회와 이를 보조하는 사무기구가 있다. 중앙선관위 위원회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 국회 선출 3인, 대법원장 지명 3인 총 9인으로 구성된다. 이들을 보조하는 사무처 직원은 국가공무원이다.
문제의 시작점은 중앙선관위의 탁상행정이었다. 선관위는 통상 본투표일 투표용지를 선거인 수보다 적게 인쇄한다. 선거에서 투표율 100%가 나오기 어려울뿐더러, 사전투표가 있기 때문이다. 투표용지 인쇄 매수 하한선은 중앙선관위의 ‘종합관리지침’이 결정한다. 이 기준은 2009년 80%, 2016년 70%, 2021년 60%로 점차 낮아지다, 지난해인 2025년에는 최저점인 50%까지 떨어졌다. 2025년 8월 선관위는 ‘절차사무개선 TF’를 꾸려 인쇄 매수 축소안을 작성했다. 이 축소안은 검토 과정을 거쳐 종합관리지침(이하 지침)에 반영됐다. 2025년 12월 초, 해당 지침은 중앙선관위의 위원들이 아닌 사무총장이 ‘전결(위임된 범위 내에서 하급자가 결재하는 것)’했다.
선관위가 투표용지 인쇄 매수의 하한 기준을 50%로 낮춘 이유는 ‘폐기되는 투표용지가 많아서’였다. 하향 조정의 근거가 된 문건은 2022년 12월 한국행정연구원이 발표한 용역 보고서 ‘선거 절차사무 개선 방안’이다. 해당 보고서에서는 인쇄 매수 축소 필요성이 제기됐다. 사전투표율 증가와 지역별 투표율 편차를 고려한 결정이었다는 게 선관위의 설명이다. 덧붙여 선관위는 “선거일 투표율 대비 과도한 양의 투표용지 인쇄 시 부정선거 의혹 제기”를 예방한 조치였다고 6월9일 자료에서 설명했다. 부정선거 의혹을 피하고자 내린 결정이 결과적으로는 부정선거 의혹에 불을 지핀 셈이다.
투표용지가 동난 이유
중앙선관위에서 내려오는 ‘종합관리지침’을 두고, 6월3일 본투표 당일 투표소 운영을 맡았다는 한 선관위 관계자 A씨는 “거스를 수 없는 실무 지침”이라고 표현했다. “선거마다 중앙 지침이 시달되는데, 중앙 지침은 선거에 관한 인력과 예산 등 큰 흐름에 대한 기준이라 일선에서는 실무의 지침이 된다. 선거는 단기간에 이뤄지는 전 국민적 행사라 상급 기관인 중앙의 지침이 가장 중요하다. 사실상 거스를 수 없다.”
물론 하급 선관위가 무조건 50%라는 최저 기준에 맞춰 인쇄해야 했던 것은 아니다. 투표용지 인쇄 매수 조정은 각 구·시·군 선관위원회 소관이다. 구·시·군 선관위의 구조는 앞서 설명한 중앙선관위 구성과 유사하다. 위원은 국회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 추천 인사 각 1인과 법관·교육자 또는 ‘학식과 덕망이 있는 인사’ 6인으로 구성된다. 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뽑게 되어 있는데, 관례상 법관이 위원장을 맡는다. 다만 구·시·군 선관위원회는 위원장을 포함한 모든 위원이 비상근직이며, 위원회를 보조할 사무국 또는 사무과 공무원은 따로 있다.
이번 선거에서 수도권의 한 구 단위 선관위원장을 맡았다는 판사 B씨는 투표용지 인쇄 비율 의결 과정을 〈시사IN〉에 이렇게 설명했다. “투표용지 인쇄 비율을 50%·55%·60% 중에서 택하는 위원회 의결을 했고, 위원회는 60%로 결정했다.” 그 결과 관할 투표소에서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피할 수 있었다.
위원장인 B씨가 이 결정을 주도했을까? B씨는 “(우리 위원회에서는 선관위 소속 공무원인) 사무국장이 60%로 제안했다”라고 답했다. “다른 위원들도 그게 제일 안전하다는 데 다 공감해서 그렇게 의결했지만, 만약 사무국장이 ‘50%도 충분하다’고 했다면 높은 확률로 그 의견대로 갔을 거다. 선거를 앞두고는 자주 출근하는 편이지만, 위원회는 비상시에 기능하는 조직이라 (비상근 인사들로서는) 업무를 장악하기 어렵다. 사무국장이 제안하는 것을 위원들이 적극적으로 바꾸는 일은 거의 없다.”
투표 중단 사태가 터진 서울 송파구 선관위는 투표용지 인쇄 비율 결정 당시 위원회 의결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송파구 선관위는 잠실3, 4동은 60%, 나머지 25개 동의 투표용지 인쇄 비율은 50%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회의를 열지 않았다. JTBC 보도에 따르면 한 선관위 관계자는 “(송파 선관위) 사무국이 비율을 정한 뒤 선관위원들을 찾아가 사후 서명을 받았다. 전체 위원이 다 모이기 어려운 경우 사무국이 편성안을 만들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255개 구·시·군 선관위 가운데 송파구를 포함한 34곳이 중앙선관위 종합관리지침에서 안내한 하한 기준인, 선거인 수의 50%만 인쇄했다.
본투표 당일 송파구 선관위 단체 채팅방에서는 오후 2시부터 투표용지가 부족할 것 같다는 투표관리관들의 메시지가 빗발쳤다. 송파구 선관위가 오전 11시40분께 이미 투표용지 부족 가능성을 인지하고 서울시 선관위에 대응 방안을 문의했다고도 전해졌다. 각 선관위는 투표용지 훼손 등 돌발 상황에 대비해 예비 투표용지인 ‘무번호지’를 준비한다. 선거 당일 투표율을 정확히 예상하기 어려워서다. 그렇다면 어째서 무번호지를 활용해 더 빠르게 현장 대응을 하지 못했을까?
선관위에서 13년 근무한 김규범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선관위지부장은 “투표용지가 부족할 경우 무번호지를 쓰면 되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무번호지를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각 투표소에 몇 장이 필요한지 취합하고, 일련번호를 수기로 작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방법은 있지만 이를 수행할 인력 규모가 문제다. 선관위 관계자 A씨는 투표소에 비해 선관위 직원 수가 너무 적다는 점을 지적했다. “구·시·군 선관위 (사무국) 직원이 7~11명 남짓이다. 최종 결재권자를 제외하면 투개표 관리 등을 맡는 ‘선거계’와 선거법 위반 단속 등을 맡는 ‘지도계’로 나뉜다. 사전투표나 회계 등 역할을 나눠 맡기 때문에 대부분의 위원회에서 본투표 담당자는 한 명이다. 가령 송파구 투표소가 146개라면, 혼자 146개 투표소 전부의 운영을 맡는 거다. 민원 대응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투표소 현장에 나와 있는 공무원들은 누구인가? 투표소의 사무를 담당하는 투표관리관은 ‘일시적으로 동원’된 지방정부 소속 공무원이다. 수년에 한 번 열리는 선거를 위해 항시 대규모 선관위 직원을 유지할 수는 없으니, 선거를 앞두고 지방정부 공무원이 읍·면·동 단위 선관위의 간사와 서기로 동원되고, 각 투표구에 거주하는 공무원 또는 교직원 중에서 투표관리관을 선정하는 구조를 취해왔다. 공직선거법 제5조는 “관공서 기타 공공기관은 선거 사무에 관하여 선거관리위원회의 협조 요구를 받은 때에는 우선적으로 이에 따라야 한다”라고 규정한다. 선거철마다 지방정부 공무원 ‘하청’ 논란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규범 지부장은 “위촉된 공무원은 교육을 두세 번 받는다. 명단이 늦게 전달되면 교육 자체가 부실해진다”라고 말했다. 본투표 당일인 6월3일 서울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관리관’을 맡았다는 공무원 C씨는 〈시사IN〉에 이렇게 말했다. “언론에 나온 것처럼 선관위 직원이 포함된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놓는다. 그러나 실제로 민원이 너무 다양하고 선관위 직원은 적어서 현장 대응 여력이 거의 없더라.”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선거 준비부터 투표 관리까지 총체적 부실이 빚은 결과였다. 중앙선관위는 충분한 검토 없이 투표용지 인쇄 하한을 낮췄다. 구·시·군 선관위는 제대로 된 의결을 거치지 않았거나 틀린 판단을 내렸다. 문제가 발생한 이후에 대응할 전문 인력이 부족했다. 선거 때만 한시적으로 동원되는 공무원들은 선거 사무에 전문성과 능숙함을 갖추기 쉽지 않았다.
인적·조직적 부실은 투표용지 부족만 야기한 게 아니다. 개표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도 뒤늦게 드러나고 있다. 전북교육감 선거에서는 투표록 오기로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1동 제1투표소와 제3투표소의 개표 결과가 잘못 입력됐다. 제1투표소의 1104표는 통째로 사표가 되고, 대신 제3투표소 994표가 두 번 반영되었다. 그 결과 당선자와 2위 후보의 득표 차는 ‘실제’보다 19표 많은 11만8644표로 공표되었다. 경기도교육감 선거 개표 과정에서도 투표소 이름을 오입력하거나 후보자 순서를 반대로 입력하는 착오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말 그대로 선거의 모든 단계에서 구멍이 있었던 셈이다.
‘해체 수준의 개혁’이라는 과제
이재명 대통령은 6월7일 “국민의 신뢰를 잃은 독립기관은 존재의 의미가 없다”라고 말했다. ‘해체 수준의 개혁’이라는 말까지 나오면서, 선관위 ‘대수술’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6월5일 사퇴했다. 각계는 진상규명 절차에 돌입했다. 6월9일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조사하기 위한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서울중앙지검에 설치됐다. 더불어민주당 선거제도개혁TF는 6월10일 첫 회의를 열어 “선관위 개혁과 관련된 모든 법을 비롯해 개헌까지 검토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같은 날 중앙선관위도 외부 전문가 6명으로 구성된 투표용지 부족 사태 진상규명위원회를 출범했다.
선관위 인적 구성이 문제의 근원이라는 시각도 있다. 법관이 위원장을 맡는 관례가 부적절하다는 목소리가 법조계에서도 나온다. 수도권 구 단위 선관위원장이자 현직 지방법원 판사인 B씨는 “법원에 선거소송이 들어오면, 법원 입장에서 동료가 한 일처럼 느껴진다. 특별한 배려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외부의 법관 대신 선관위에 상근하는 전문 공무원을 위원장 또는 위원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B 판사는 선관위의 신뢰도에 치명적 타격이 가해진 상황에서 이 대안이 채택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업무 장악에야 내부 승진이 유리하겠지만, 선관위 조직 자체가 하나의 ‘카르텔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는 상황에서 국민이 이를 수용할지는 의문이다.”
더 넓은 차원에서 대안도 제시되고 있다. 그간 ‘누구의 감시도 받지 않는 성역’이었던 선관위를 감시할 방법을 찾자는 논리다. 그러나 ‘선관위가 성역이 되었다’는 비판에 선관위 관계자 A씨는 반박했다. “선관위원 중 정당 추천 위원은 선거의 주요 절차를 참관한다. 참관 없이 투표용지를 단 한 장도 인쇄하거나 이동시킬 수 없다. 선거가 임박해서는 일부 구·시·군에 각종 단체, 학회, 정당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공정선거참관단’이 참관하기도 한다. 누구의 감시도 받지 않는 성역이라는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무소속으로 당선된 한동훈 의원은 국회 입성 후 첫 법안으로, 감사원이 중앙선관위에 외부 감사를 실시하도록 하는 감사원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법안은 헌법상 논란을 부를 수 있다. 지난해 헌법재판소(헌재)는 ‘선관위는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 아니다’라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당시 헌재는 감사원의 직무감찰권이 “행정부 내부의 통제장치라 (···) 국회·법원·헌법재판소는 물론 이들과 마찬가지로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설치된 선거관리위원회도 감사원의 직무감찰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라고 보았다.
다만 헌재는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감찰이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보지는 않았다. 헌재는 “감사원의 직무감찰을 허용하지 않은 것은, 이를 대신할 수 있는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자체 감찰기구가 마련될 것이라는 점을 전제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직무감찰 대상에서의 배제가 부패행위에 대한 성역의 인정으로 호도되어서는 안 된다”라고도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새로운 독립 감사기관을 제안했다. “선거를 앞두었을 때나 분기별로 선관위 주요 의결사항에 대해 검토할 수 있는 독립 감사기관을 두면 어떨까. 사무처, 위원회, 그리고 감사기관에서 3중으로 확인할 수 있다.” 선관위에 대한 감찰을 대통령 소속 기구인 감사원이 아닌 또 다른 독립기관을 통해 수행하자는 이야기다.
‘왜 선거관리위원회를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두었나’라는 근원적 질문도 새로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결정문에서 “3·15 부정선거에 대한 반성적 조치이자 국민적 열망”이라고 설명했다. 헌재는 “우리 헌법이 선거관리사무를 행정부로부터 기능적·조직적으로 분리하여 선거관리위원회에 부여한 것은, 선거관리기구가 독립적·중립적 선거관리라는 헌법적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외부 권력기관, 특히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의 영향력을 제도적으로 차단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서는 선거관리사무를 행정부가 아닌 독립된 헌법기관에 맡겨야 한다는 헌법적 결단이 헌법체계에 반영된 결과다”라고 밝혔다. 이 말이 여전히 설득력 있을까. 돌풍처럼 몰아친 개혁 요구에 선관위가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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