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 전
“학교가 교육감 치적 사업 처리소? 교실 정상화 시급”
2026.06.23 07:02
● 단일화 기구 합류하지 않으면 배신자 취급
● 학생 인권, 교권 대립 넘어 ‘실효적 생활지도’ 절실
● 학생 줄어드는데 서울시교육청 직원 수 1.5배 늘어
● 하루 30~40개 공문…행정 업무에 치이는 학교
● 공약추진위와 핵심 보직 인사에 달린 서울교육 4년
6월 11일 만난 서울 교육계 진보 인사 A씨는 6·3서울시교육감 선거를 이렇게 평했다. 혼전의 결과는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의 승리였다. 정 교육감은 30.3%의 득표율로 다시 서울교육 수장이 됐다. 교육감 직선제 이후 서울시교육감 당선인 가운데 가장 낮은 득표율이다. 기존 최저 득표 당선인은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34.34%를 얻은 곽노현 전 교육감이다.
“이미 짜인 판에 이름 보태는 꼴”
정 교육감이 재선한 이유를 ‘보수 후보 단일화 실패’라는 한 가지로 설명하기엔 부족한 감이 있다. 2008년 교육감 직선제 시행 이후 서울시교육감 선거 사상 가장 많은 8명의 후보가 출마했기 때문이다. 진보성향 후보 3명, 보수성향 후보 4명, 중도성향 후보 1명이 맞붙었다.선거 막판까지 판세도 가늠하기 힘들었다. ‘쿠키뉴스’ 의뢰로 한길리서치가 5월 25일과 26일 서울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서울시교육감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정근식 후보는 24.5%로 선두를 기록했다. 그 뒤를 이은 윤호상 후보(14.5%), 조전혁 후보(14.3%), 한만중 후보(13.7%)는 0.8%포인트 차 안에서 각축을 벌였다.
이번 선거는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깊은 상처를 남겼다”는 비판을 받는다. A씨는 “단일화 기구에 합류하지 않으면 분열을 부추기는 배신자 취급을 받는다. 그렇다고 들어가면 이미 짜인 판에 이름을 보태는 처지가 된다. 공정하지도 민주적이지도 않은데 울며 겨자 먹기로 합류하는 후보가 많았다”고 전했다.
교육감 선거에서 후보단일화는 승리 공식처럼 여겨져 왔다. 서울에서는 보수 후보들이 더 많은 표를 얻고도 단일 후보를 낸 진보진영에 패한 경험이 반복됐다. 2018년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조희연 전 교육감은 46.58%로 당선됐고, 보수성향 박선영 후보와 조영달 후보의 득표율 합은 53.41%였다. 2022년 선거에서도 조희연 전 교육감은 38.1%로 조전혁 후보와 박선영 후보를 꺾었다. 이 경험은 진보와 보수 모두에 단일화에 목매게 만들었다. 또 다른 교육계 인사 B씨는 “단일화 기구가 후보 자질을 평가하는 공론장보다 특정 세력이 후보를 선별하는 권력적 관문에 가까워졌다”고 비판했다.
“교육감 선거 때마다 단일화 기구들이 전면에 나선다. 보수나 진보를 가릴 것 없이 갈등과 불신이 이어진다. 누군가는 단일화를 이기기 위한 현실적 선택이라고 치켜세우고, 누군가는 밀실에서 후보를 고르는 방식이라고 비판한다. 문제는 인위적 단일화다. 정책 검증보다 밀실에서 그들끼리 후보를 내세우다 보니 특정 세력이 후보를 선별하는 장치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계속 나온다.”
이번 선거에서도 진보진영의 단일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정 교육감은 민주진보 단일 후보로 선출됐지만 한만중 후보는 시민참여단 일부가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경선 무효를 제기했다. 강민정 후보 측과 강신만 후보 측도 경선 과정에 문제를 제기했다. 홍제남 후보도 별도 행보를 이어갔다. 보수진영에서도 단일화를 둘러싼 논의가 이어졌지만 후보 간 이견으로 완전한 결집에는 이르지 못했다. 일부 단일화 기구를 중심으로 후보 선출이나 단일화 시도가 진행됐으나 조전혁·윤호상·류수노 등 주요 후보들이 각자의 입장을 유지하면서 선거 막판까지 후보 단일 대오가 형성되지 못했다.
정 교육감은 혼전 속에서 현직 교육감의 안정감을 앞세웠다. 그는 4월 2일 예비후보 등록 메시지에서 “지난 1년 6개월 동안 서울교육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 달려왔다”며 “다음 4년 동안 변화를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출마 과정에서는 △만 3~5세 유아 무상교육 확대, △학생 교통비 전액 지원, △현장체험 학습비 지원, △학생 마음건강 강화, △기초학력 보장 등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다.
정 교육감이 내세운 안정감은 2024년 보궐선거 뒤 교육청 내부에서 형성된 평가와도 맞닿아 있다. 2024년 서울특별시교육감 보궐선거는 조 전 교육감이 해직 교사 부당 특별채용 관련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돼 교육감직을 상실하면서 치러졌다. 이 선거에서 정 교육감이 당선됐다. 서울시교육청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교육단체 관계자는 보궐선거 뒤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선거로 인한 긴장이 정리된 뒤 서울시교육청은 비교적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정 교육감은 교육청 직원들로부터도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주변 참모들도 튀지 않게 움직였고, 이전처럼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조직을 압박한다는 느낌도 크지 않았다.”
정 교육감은 이번 선거 출정식에서 민주진보교육 계승을 전면에 내세웠다.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 장휘국 전 광주교육감이 참석해 그에게 힘을 실었다.
정근식 2기 서울교육이 가장 먼저 마주할 쟁점은 학생인권조례와 교권 보호 요구다. 2011년 경기에 이어 2012년 서울에 도입된 학생인권조례는 진보 교육계를 대표하는 정책 중 하나다. 보수진영은 학생인권조례가 교권을 약화하고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힘들게 한다고 공격해 왔다. 진보 교육계는 조례 폐지를 학교 민주주의의 후퇴로 본다. 정 교육감은 두 요구가 정면으로 부딪치는 지점에서 해법을 내야 한다.
학생인권조례 논쟁 너머 교실 질서 회복이 급선무
정 교육감에게 학생인권조례는 다루기 까다로운 의제다. 학교 현장에서는 악성 학부모 민원과 수업 방해 학생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조례를 방어하면 교권 문제에 둔감하다는 공격을 받을 수 있고, 조례 손질을 말하면 진보진영 내부 반발을 감수해야 한다. 학생 인권과 교권을 맞세우는 구도가 커질수록 정작 학교 현장의 어려움은 뒤로 밀릴 수 있다.고등학교 학생부장으로 근무하는 한 교사는 학생인권조례 논의가 정치권과 언론의 편가르기 소재로 소모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생 인권과 교권이라는 대결 구도로 논의하면 자기 진영을 동원하기는 쉽지만 문제 해결은 더 어려워진다. 지금 중요한 것은 ‘악성 학부모 민원이나 상식의 범주를 벗어난 학생의 행동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다. 인권조례 존폐보다 구체적 생활지도 기준과 민원 대응체계를 만드는 일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교육부의 2024학년도 교육활동 침해 실태조사에서도 같은 흐름이 확인된다. 지역교권보호위원회 개최 건수는 4234건이었고, 이 가운데 3925건이 교육활동 침해로 인정됐다. 침해 유형은 학생의 생활지도 불응에 따른 교육활동 방해가 32.4%, 보호자의 반복적·부당 간섭이 24.4%로 가장 많았다. 서울교사노조가 2026년 서울 교사 88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현장의 목소리는 비슷했다. 응답자의 54%는 교권 보호 정책 이후 현장 변화가 없다고 답했다. 교육활동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로는 학부모 민원과 민·형사상 책임 부담, 학교폭력·분쟁 처리가 꼽혔다.
결국 관건은 정근식 2기 서울교육이 이 대결 구도를 넘어설 역량과 아이디어를 갖췄느냐다. 학생인권조례를 진보 교육의 상징으로 방어하는 데 머물면 학교 현장의 불만을 흡수하기 어렵다. 교권 보호 요구에 기대면 자신의 지지기반과 충돌할 수 있다. 정 교육감에게 필요한 것은 교사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생활지도 기준과 교육청 차원의 민원 대응체계다.
진보 교육계의 지지도 정 교육감에게는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선거 과정에서 이들은 보수 후보들의 전교조 공격과 학생인권조례 폐지 흐름을 막기 위해 정 교육감 재선이 필요하다고 봤다. 재선 이후에는 입시 경쟁 완화, 학교 민주주의, 교육 공무직 처우, 교권과 학생 인권의 균형, 교육감 선거제도 개선을 놓고 정 교육감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A씨는 “교육감이 이들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교원단체나 진보 교육계의 정서가 일반 학부모나 시민의 정서와 어긋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쪽 요구에만 끌려가면 오락가락한다는 평가가 따라붙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초학력 회복도 정 교육감이 풀어야 할 과제다. 2012~2016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서울 고등학생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4.8%에서 7.6%로 올랐다. 같은 기간 17개 시도교육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으로 집계됐다.
비대해진 교육청 줄이고 학교 지원 강화해야
학교가 과중하게 떠안은 행정 업무 부담도 정근식 2기가 해소해야 할 사안이다.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현직 교사들은 서울시교육청 본청 조직 확대와 교육감의 임기 내 성과 압박이 학교 업무를 늘리는 구조를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본청 인원이 늘어나면 각 부서가 새 사업을 기획하고 학교 참여를 요구하는 공문을 내려보낸다. 교육감도 임기 안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하므로 선도학교, 중점학교, 실천학교 같은 이름의 공모 사업이 반복된다.학교가 이를 처리하는 절차는 비슷하다. 계획서를 내고 예산을 집행한 뒤 행사 사진을 모아 결과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교사는 수업 준비와 학생 상담에 쓸 시간을 사업 처리에 빼앗긴다. 서울 광진구 소재 중학교 교사 김지현 씨는 “학교는 임기 내 성과를 내려는 교육감의 치적 사업 처리소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정근식 2기의 또 다른 시험대는 ‘인사’다. 2024년에는 보궐선거로 급히 취임해 교육청 내부 기반이 약했다. 재선 이후에는 사정이 다르다. 자신의 정책 방향을 구현할 사람을 어디에 앉히는지가 2기 서울교육의 속도를 좌우한다. 교육계 내부에서는 공약추진위원회 구성도 지켜보고 있다. 공약추진위가 정근식 2기의 정책 방향을 보여주는 첫 장치라면 비서진과 핵심 보직 인사는 실제 조직 운영 능력을 가르는 문제다.
교사 출신 인사들이 캠프에 참여하고 정책 입안에 관여해도 학교 현장이 체감하기 힘든 공약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운동 진보진영의 오래된 인사들이 중심을 차지하면서 지금 교실에서 벌어지는 생활지도와 민원 문제를 충분히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비판도 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근무하는 한 장학사의 말이다.
“이번 임기에는 인사 구상을 빠르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교육감이 조직을 제대로 이끌려면 가까이에서 판단을 도울 비서진, 인사를 총괄하는 운영지원과장, 예산 흐름을 쥔 기획조정실장·감사관·정책보좌관이 핵심이다. 교육감의 문제의식을 이해하고 실제 정책으로 옮길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런 체계를 갖추지 못하면 교육감은 관료조직의 흐름에 휩쓸릴 수 있다. 힘을 쓰지 못하는 교육감은 결국 학교 현장에도 도움이 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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