넣으면 안 되는데… 자책골이 쏟아진다
2026.06.23 00:56
북중미 월드컵에 지금까지 없었던 ‘득점 기계’가 나타났다. 월드컵 최고령 해트트릭 기록을 세운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 교체 자원으로 나서 3골을 넣은 데니스 운다브(독일)를 압도한다. 개막 11일 동안 8골을 기록한 주인공은 바로 ‘자책골(own goal)’이다.
북중미 월드컵은 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자책골이 쏟아지는 대회로 기록될 전망이다. 22일까지 치러진 조별리그 40경기에서 8골이 나왔다. 개막일부터 11일 동안 나흘을 빼고 모두 자책골이 발생했다. 5경기마다 한 번씩 자책골이 발생한 셈인데, 1930년 월드컵 시작 이래 96년 만에 최다 기록 페이스다.
22일 사우디아라비아를 4대0으로 대파한 스페인의 네 번째 골도 상대 자책골이었다. 후반 4분 사우디 골키퍼가 펀칭한 공이 골문 앞에 있던 수비수 하산 알탐바크티를 맞고 들어갔다. 지난 13일 파라과이 다미안 보바디야가 미국과의 첫 경기에서 ‘대회 1호’를 기록한 이후 스위스(14일), 이집트(16일), 이라크, 요르단(이상 17일), 카타르(19일), 호주(20일)에 이어 사우디까지 8개 팀이 자책골을 기록했다. 파라과이와 호주는 모두 미국을 상대로 자책골을 내줬다. 미국은 역대 월드컵 최초로 2경기 연속 자책골로 득점한 팀이 됐다.
4년 전 카타르 월드컵은 조별리그부터 결승까지 전체 64경기 동안 자책골이 2골 나왔다. 48팀이 출전한 북중미 월드컵은 총 경기 수가 104경기로 늘어났지만, 대회 일정의 38%가 지났을 뿐인데 자책골이 4배로 폭증한 것이다. 이번 대회 전까지 자책골이 가장 많이 나온 대회는 2018 러시아 월드컵(12골)으로 경기당 평균 0.188골이었다. 지금 추세가 이어진다면 북중미 월드컵(경기당 0.2골)은 자책골만 20골이 쏟아질 수도 있다.
이번 대회에서 자책골이 급증한 원인으로 공격할 때 문전을 향해 올리는 크로스가 이전과 달라진 것을 꼽는 의견이 많다. 미국 스포팅뉴스는 “상당수 자책골은 공격 팀이 골 라인까지 파고들어 골문을 향해 낮고 빠른 크로스를 올릴 때 나왔다”며 “자기 골문 쪽으로 쇄도하던 수비수들이 상대 크로스를 걷어내려다가 자책골을 넣어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과거엔 페널티 박스 멀리서 머리를 향해 띄우는 높은 크로스가 많았는데, 공격 방식의 변화가 자책골 증가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파라과이와 호주가 미국에 내준 자책골이 각각 우측면 땅볼 크로스 상황에서 발생했다. 이집트가 벨기에전에서 기록한 자책골도 깊숙한 곳에서 가운데로 꺾어 들어온 크로스를 수비하려다 내준 것이었다. 디 애슬레틱은 “낮고 빠른 크로스, 골라인에서 문전으로 쇄도하는 선수에게 패스하는 컷백 때문에 발생하는 자책골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의도된 전술의 결과물”이라고 했다.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팀이 승점을 따기 위해 ‘선수비 후역습’ 전술을 채택한 것도 자책골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영국 가디언은 유럽 메이저 축구 대회 유로 2024에서 자책골이 10골(평균 0.196골) 발생한 사례를 들며 “수비 라인을 골문 쪽으로 깊숙이 내리는 ‘로 블록(low block)’ 전술 트렌드 때문”이라며 “약팀들이 대체로 수비에 치중하다 역습을 노리는 조직력을 가다듬었지만, 페널티 박스 안에 수비수들이 밀집한다면 (자책골이 되는) 예기치 못한 공의 굴절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라크는 지난 17일 노르웨이를 상대하면서 공격수 아이만 후세인까지 수비에 가담했다가 상대 크로스가 굴절돼 자책골을 허용했다.
자책골이 대폭 늘면서 32강 이후 토너먼트에서 승부를 가르는 결정적 변수가 될 가능성도 커졌다. 크로아티아는 2018 러시아 월드컵 결승전에서 마리오 만주키치가 전반 18분 만에 자책골을 기록하며 프랑스에 선제 실점했다. 월드컵 결승전 역사상 처음 나온 자책골이었다. 이에 기세가 꺾인 크로아티아는 2대4로 져 프랑스에 우승컵을 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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