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린 문제에 빗금 치지 마세요 "… 과보호는 왜 아이를 약하게 만드나
2026.06.23 04:31
<32> 드라마 '참교육'의 이지영
편집자주
정신건강의학과 김지용, 오동훈, 허규형 전문의가 영화나 드라마 속 캐릭터들의 심리를 분석하며 우리의 마음도 진단합니다.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이 연일 화제다. ‘교권보호국’ 감독관 나화진을 연기한 김무열 배우의 단단한 연기, 그리고 답답한 현실에 통쾌한 한 방을 날리는 전개가 어우러진, 굉장히 매력적인 드라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이토록 큰 인기를 끌게 된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을 것이다. 교권이라는 단어가 보호의 대상으로 거론돼야 할 만큼 위협받고 있다는 현실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여운을 남긴 건 5화다. 아이들을 위하는 좋은 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초등학교에 갓 부임한 최지선(송시안)은 학부모 이지영(박지연)의 도 넘은 지적과 요구에 시달리며 점차 무너져 간다. 단지 드라마 속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에는 엄연히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임을 우리 모두가 안다. 아이가 왕의 DNA를 가졌으니 “안 돼”라는 말을 하지 말아 달라, 학습을 강요하지 말고 칭찬만을 해 달라고 요구했던 교육부 공무원의 갑질 사건은 드라마 속 내용과 정확히 오버랩된다. 아이가 교사를 폭행했음에도 이를 아이의 특성을 파악하지 못한 교사의 책임으로 돌리는 부모, 수업 시간에 벌어진 사고로 아이가 다쳤으니 보상하라며 수년에 걸쳐 교사를 괴롭히다 죽음으로 내몬 부모가 있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스스로가 부정당하는 경험
얼마 전, 초등학교 선생님이 진료실을 찾았다. 학생의 수업 태도를 지적했다는 이유로 그 부모가 반복적으로 교실에 찾아와 수업을 방해하고 교무실에서 큰소리로 화를 냈다고 한다.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수업을 하면서도 자꾸 복도를 살피게 되고, 전화벨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일이 반복된다고 했다. 누구라도 그의 잘못이 아님을 알 수 있는 상황인데도 그는 자꾸 자기 자신을 탓했다. 자신이 과연 교사라는 직업에 맞는 사람일까 하는 의심과 회의감이 든다고 했다.
정신의학에는 ‘도덕적 손상(moral injury)’이라는 개념이 있다. 자신의 가치관과 직업적 판단이 긴밀하게 맞물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 판단이 부정당하는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때 입는 심리적 손상을 가리키는 용어다. 교사는 단순히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직업이 아니다. 학생에게 어떤 말을 건넬지, 문제가 되는 행동을 어떤 방식으로 바꿔 놓을지, 아이들 간 갈등을 어떻게 중재할지를 매 순간 판단해야 하는 일이다. 그 판단 하나하나에 자신의 교육관이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그런데 내가 옳다고 믿어 온 교육적 판단이 오히려 공격의 빌미가 되고, 그 공격으로부터 학교와 사회가 충분히 보호해 주지 않는 경험이 반복되면, 당사자는 외부의 부당함에 분노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내가 부족해서가 아닐까. 내 판단이 틀렸던 게 아닐까. 본래 외부를 향해야 할 분노가 자기 자신을 향하는 그 지점이 우울증의 시작이다.
실제로 많은 교사가 이러한 심리적 고통을 견디다 못해 교단을 떠나고 있다. 자발적 중도퇴직을 선택한 교사의 수는 2020년 768명에서 2024년 1,004명으로 5년 사이 약 30% 증가했고, 정신 질환으로 공무상 요양을 청구한 교원 수 역시 2021년 145명에서 2024년 413명으로 약 2.8배 늘어났다.
‘작은 좌절’ 막는 부모의 과보호
이지영은 자신을 가로막는 나화진을 향해 "내 애를 위하는 게 뭐가 나빠"라고 소리친다. 그 말 자체는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부모가 아이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은 본능이다. 다만 그 본능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느냐가 문제다. 그는 담임 교사인 최지선에게 끊임없이 요구한다. 우리 아이의 자존감이 떨어지니 앞에서 수학 문제를 풀게 하지 말라. 틀린 문제에 빗금을 치지 말아 달라. 시끄럽다고 야단치지 말아 달라. 표면적으로는 아이를 위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아이의 자존감을 깎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본인이다.
심리학자 데시와 라이언이 제시한 ‘자기결정성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에 따르면, 인간이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욕구가 충족돼야 한다. 자율성, 유능감, 그리고 관계성이다. 이것들은 일상 속에서 무언가를 직접 시도하고 부딪치고 때로는 실패하면서 조금씩 쌓여 가는 감각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어려운 문제를 풀어 보고, 두려운 마음을 딛고 발표를 하고, 친구와 다툰 뒤 사과함으로써 관계를 회복하는 경험.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아이는 스스로를 '어려운 일도 해낼 수 있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내면의 시각을 조금씩 만들어 간다.
‘작은 좌절’이 성장의 자원이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사소한 실패를 마주하고 다시 일어나는 경험을 통해 아이는 두 가지를 배운다. 하나는 '이 정도의 어려움은 견딜 수 있구나'라는 정서적 회복력이고, 다른 하나는 '다음에는 더 잘해볼 수 있겠다'라는 자기 효능감이다. 그런데 누군가 모든 좌절을 미리 막아주면 이 두 가지가 자랄 토양 자체가 사라진다. 부모는 아이를 보호한다고 믿지만, 정작 아이는 자기 힘으로 세상을 마주해본 적이 없기에 점점 더 약해진다. 그리고 진짜 큰 좌절이 찾아왔을 때, 비로소 그 어려움을 감당할 내면의 근육이 자신에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교사의 지도 방법이 내 아이에게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을 수 있다. 친구와의 다툼에서 억울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마냥 화를 내고 속상해하기보다는, 그것이 아이에게 필요한 ‘작은 좌절’이 아닌지를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미리 겪어볼 수 있는 소중한 연습으로 받아들이고, 아이가 잘 소화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부모가 해야 할 진짜 역할이다.
투사라는 이름의 그림자
이렇게 교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부모들은 대체 어떤 마음일까? 누가 뭐래도 아이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부모다. 그런데 그 책임의 무게가 너무 무거울 때, 사람은 그것을 대신 져 줄 대상을 찾게 된다. 이러한 마음의 작동 방식을 정신분석에서는 투사(projection)라고 부른다. 자신이 직면하기 어려운 감정이나 그 원인을 외부의 누군가에게 돌림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보호하는 방어 기제다. 내 아이의 문제를 내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기에 그 원인을 바깥에서 찾는 것이다. 교사 탓, 다른 아이 탓, 나아가 사회의 시스템 탓을 하고 나면 아이의 문제에서 내가 직접 책임져야 할 지분은 자연스레 줄어든다. 나는 여전히 좋은 부모로 남을 수 있는 것이다.
많은 부모가 아이의 부정적인 감정을 해결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빨리 없애 주어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뭐가 저 감정을 만들었을까’라는 질문에 몰두하고 결과적으로 ‘탓’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투사의 과정이 반복될수록 정작 아이 본인 역시 변화의 기회를 잃는다는 점이다. 모든 잘못이 바깥에 있다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받으며 자란 아이는 자신의 행동을 돌아볼 능력을 키우지 못한다.
그래서 아이의 감정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의식적인 노력 역시 필요하다. 아이도 자기 삶의 주체로서 다양한 감정을 직접 겪어 내야 할 의무가 있다. 부모가 도울 수는 있지만, 최종적으로 그 감정의 터널을 통과해야 하는 사람은 아이 자신이다. 함부로 아이의 마음을 단정하고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 드라마에서 그려졌듯, 아이의 자존감을 해친다고 의심한 그 교사가 사실은 아이에게 가장 따뜻한 어른이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함께 꽃을 피워내는 협력자로
드라마는 악성 민원을 일삼는 학부모가 처벌받는 통쾌한 결말로 마무리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다른 최지선 선생님들이 고통을 감내하며 교단에 서 있을 것이다.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도 다음 날 아침 아이들 앞에서는 웃어 보이는 분들, 부당한 항의 전화 한 통에 마음이 무너지면서도 다시 출근길을 나서는 분들. 그분들에게 마음을 담아 위로와 응원의 말을 전하고 싶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렇게 많은 책임을 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무엇보다 곁에 당신을 염려하고, 또 응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한 가지 더 짚고 싶은 것은, 아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학교와 소통하려는 모든 학부모가 '악성 민원인'으로 비치지는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특히 나의 주 진료 분야인 소아정신과 특성상 올바른 방향으로 진료가 이루어지기 위해선 아이의 학교생활에 대한 선생님 의견을 듣는 것이 필수적인데, 진료실에서 만난 대다수의 부모님은 이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선생님께 부담을 드리지 않을지를 고민하는 분들이었다. 이분들이 용기 내어 한 연락까지 월권으로 매도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관심 자체가 아니라, 그 관심이 일방적인 통제와 공격으로 변질되는 지점이다.
한 명의 아이를 키우려면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옛말이 있다. 한 아이가 건강한 성인으로 자라나기 위해서는 부모와 교사를 비롯한 주변 어른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협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교사와 부모가 서로를 피하고 감시해야 하는 불편한 관계가 아니라, 한편이 되어 아이의 꽃을 함께 피워내는 좋은 동료로 남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오동훈 연세온정신건강의학과의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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