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럭이는 태극기는 쉽게 안 내려간다” 어머니 말씀 떠올리며 전장서 버텼다
2026.06.23 00:46
94세 아흐메트 탄씨
“부모를 잃고 사방을 헤매던 한국 아이 두 명을 만났지. 차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부대 막사로 데려와 중대장님께 ‘제가 직접 돌보겠다’고 말씀드렸어.”
최근 튀르키예 이스탄불 참전용사협회 시르케지 지부에서 만난 아흐메트 탄(94)씨는 또렷한 눈빛으로 70여 년 전 기억을 되짚었다. 그는 “1년 정도 아이들을 자식처럼 돌봤지만 귀국이 결정되면서 보육원에 맡기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대화를 나눈 지 15분여 만에 탄씨의 기력은 눈에 띄게 떨어졌지만 당시의 일화와 지명들은 비교적 정확하게 기억했다.
그가 아이들을 맡기고 온 곳이 튀르키예군이 전쟁 고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운영한 기숙형 교육 시설 ‘앙카라 학원’이다. 앙카라 학원은 2017년 개봉한 한국·튀르키예 합작 영화 ‘아일라’의 실제 배경이다. ‘아일라’ 역시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한국 소녀와 탄씨처럼 소녀를 보살핀 튀르키예 군인의 인연을 그린 작품이다.
탄씨는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한국에 파병돼 1954년까지 약 2년간 전장을 누볐다. 당시 튀르키예는 미국·영국에 이어 최대 규모인 2만여 명을 파병해 약 700~900명이 전사하고 2000여 명이 부상했다. 탄씨는 “과연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출정할 때 ‘펄럭이는 태극기가 쉽게 내려가겠느냐. 너는 반드시 살아 돌아올 것이다’라고 하셨던 어머니 말씀을 떠올리며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참전 당시 탄씨는 결혼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신혼이었다.
전쟁터의 기억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고 했다. 탄씨는 “총알이 정말 사방에서 날아왔다. 미군이 준 방탄 조끼를 입은 몸에 박격포 파편과 소총 탄환이 부딪쳐 ‘팅’ 하며 튕겨 나가곤 했다”고 했다. “처음 한국에 도착했을 땐 나라 전체가 폐허였지. 논밭에 아무것도 심지 못하니 굶주림이 너무 심했고 마실 물조차 부족했어. 우리 병사들도 통조림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지.” 그는 “그래도 한국인들은 우리를 굶고 목마르거나 헐벗은 채로 두지 않으려 했다”며 “지금도 한국을 너무나 사랑하는 이유”라고 했다.
휴전 이후 약 60년이 지난 2012년 탄씨는 완전히 바뀐 한국을 다시 찾았다고 한다. 그는 “공항부터 놀라웠다. 사방에 기차와 버스가 다니고 고층 빌딩이 가득했다. 내가 기억하던 한국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고 했다. 보육원을 떠나 미국으로 입양됐던 아이들도 다시 만났다. 탄씨는 “직접 밥을 먹이고 놀아줬던 그 아이들이 날 보자마자 단번에 알아보고 안겼다”며 “얼마나 가슴이 벅차고 기뻤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탄씨는 “집에 혼자 앉아 있으면 한국의 부대와 막사, 함께했던 사람들 얼굴이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참 많은 일이 있었다”고 했다. 이어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는 그 참혹함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절대로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는 비극”이라며 “한국의 젊은 세대가 역사를 많이 공부하고 올바르게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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