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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호의 시시각각] 스노볼, 참깨, 코스피 블루

2026.06.23 00:18

서경호 논설위원
코스피가 지난주 9000선을 돌파한 데 이어 1만 포인트 전망도 나온다. 역대급 증시 호황의 주변에서 세 가지 풍경을 엿볼 수 있었다. 첫째,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처럼 스노볼(눈덩이)을 굴리는 부러운 분들이다. 버핏은 “인생은 스노볼을 굴리는 일과 같다. 중요한 것은 (잘 뭉쳐지는) 습기 머금은 눈과 길고 긴 언덕을 찾아내는 일”이라고 했다. 최근 금융·바이오 회사 최고경영자(CEO)들, 대기업 임원 등과의 저녁 자리에서도 주식이 단연 화제였는데, 이분들은 반도체 주식 투자로 큰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여윳돈으로 주식을 일찌감치 사서 오래 보유하는 전략을 구사하니 수익률이 좋을 수밖에. 반도체 특수는 그들이 스노볼을 굴리는 긴 언덕이었다.

자산양극화, 증시 초호황의 그늘
세법개정안에 금투세 꼭 넣어야
장기투자 인센티브도 검토하길

둘째, ‘참깨’를 굴리는 사람들이다. 반도체주 투자를 한다지만 워낙 소소한 금액이라 크게 재미를 보지 못했다는 전직 관료가 자조적으로 혹은 겸손하게 이런 표현을 썼다. 아마 주식 투자에 뒤늦게 뛰어든 이들 중에 이런 투자자가 많을 것이다.

셋째, 반도체 주식이 없거나 주식에 투자할 여유조차 없는 이들은 ‘코스피 블루’(주식 우울증)를 겪는 중이다. 반도체 대형주 위주의 상승장이다 보니 반도체 주식이 없는 투자자는 포모(기회 상실 공포)에 휩싸여 일할 의욕이 사라진다고 하소연한다. 주식 투자로 인한 이런 자산 불평등은 갈수록 심각해질 것이다. 앞으로 분기 자료인 가계동향조사나 연간 자료인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최악의 양극화 통계가 반복해서 나올 것이다. 나빠진 통계를 보면서 “그래, 이건 바로 내 얘기”라며 가슴 치는 이들이 많을 것 같다.

증시 비관론보다는 영업에 도움 되는 낙관론을 많이 설파하곤 하는 증권사도 뜨거운 증시가 슬슬 걱정되는 모양이다. 한 증권사는 며칠 전 ‘마지막 바보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모두가 환호하고 달려드는 요즘 증시는 “‘지금 비싸도 내일 더 비싸게 사줄 다음 매수자가 있다’는 더 큰 바보이론에 완벽하게 기대고 있다”는 경고였다. 고점에서 비싸게 주식을 샀더라도 우량기업이라면 기다리면 오르니까 시간이 치유할 수 있지만 “실체 없는 내러티브가 가미된 테마의 영역은 다르다”고 했다. 주식을 살 때는 매수 충동을 의심하고, 팔 때는 끝까지 수익을 쥐어짜려는 욕심을 버리고 ‘까치밥’은 남겨두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가을날 감나무 꼭대기에 남겨두는 까치밥은 결코 단순한 선심이 아니다. 출구를 전적으로 타인의 매수 의사에 맡겨야 하는 냉혹한 모멘텀의 세계에서, 내가 마지막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기꺼이 지불해야 하는 가장 확실하고 저렴한 보험료다.”

올해 개인이 증시에서 순매수한 규모가 73조원에 달한다. 증시에 몰린 자금이 너무 많다. 주변 투자자 중에는 이번이 “일생일대의 기회”라며 무리하게 빚투에 나선 이들이 꽤 있다. 케네스 로고프의 책 제목처럼 “이번엔 다르다”는 믿음으로 멀미 날 정도로 출렁이는 주식 투자에 뛰어들었겠지만 “이번에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처절한 후회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 증시의 열기를 식히고 변동성을 줄이는 정책 처방이다. 코스피 1만 포인트를 향해 가는 지금이야말로 연 5000만원이 넘는 주식 양도차익에 과세하는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를 도입할 적기다. 조세 형평과 자본시장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라도 다음 달 정부가 내놓을 세제개편안에 금투세를 꼭 포함시켜야 한다. 초단기 매매 비중이 높은 한국 특유의 투자 문화를 바로잡기 위해 장기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추가할 필요도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야당 시절인 2024년 말 윤석열 정부의 금투세 폐지에 합의하면서 코스피 4000시대가 오면 다시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며칠 전 이재명 대통령은 증시 양극화가 심각한 자산 양극화를 부른다고 걱정했다. 정말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금투세 도입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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