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자릿수 명목 경제성장률의 함정 [유레카]
2026.06.22 17:26
올해 1분기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17.1%를 기록하며 연간 두자릿수 명목 성장률이 예상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고도성장기의 숫자가 돌연 재현되자 기대와 함께 어리둥절해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지디피는 한 나라의 생산활동을 금액으로 합산한 지표로, 어떤 가격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실질과 명목으로 나뉜다. 실질 지디피는 물가 변동을 제거해 계산한다. 이전 시기와의 경제 성과를 비교하는 데 적합하다. 반면 명목 지디피는 당해 연도의 가격을 그대로 반영해 계산한다. 국민 경제의 전체 규모나 산업 구조 등을 파악할 때 활용된다. 정부나 언론 등에서 경제성장률을 얘기할 때는 주로 실질 성장률을 지표로 삼아왔기 때문에 명목 성장률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지디피는 가계 소비, 기업 투자, 정부 지출, 순수출로 구성된다. 이번 두자릿수 명목 성장률은 반도체 가격 급등에 따른 수출액 확대가 주된 요인이다. 과거 명목 성장률이 높았던 시기가 주로 에너지 가격이나 국내 물가 상승에 기인했다면, 이번에는 수출 주력 품목의 가격 상승 덕분이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우리는 같은 양을 수출해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반면, 가격 상승의 부담은 고스란히 외국에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균의 함정’에 유의해야 한다. 반도체라는 단일 품목이 성장을 끌어올린 구조에서는 산업 간, 계층 간 격차가 동시에 확대된다. 실제로 반도체 기업들은 막대한 이익을 거두며 성과급을 확대하고 있지만, 대다수 중소기업과 비주력 산업, 그리고 그 노동자들은 이런 호황의 과실과 거리가 멀다. 2000년대 초반 오스트레일리아는 중국의 자원 수요 급증에 힘입어 철광석·석탄·천연가스 가격 상승의 수혜를 누리며 명목 지디피가 급증했다. 그러나 동시에 자본·인력의 광업 집중, 비자원 부문의 경쟁력 약화라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특정 산업의 호황이 경제 전체의 균형 성장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우리도 2021~2022년 반도체 특수로 세수 호황을 경험하며 비슷한 착시를 겪은 바 있다.
이번에 벌어들인 초과 이익을 특정 부문에만 머물게 할 경우,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 명목 성장률 17.1%는 분명 인상적인 수치지만, 경제 전반의 생산성 향상과 산업 다변화, 양극화 완화로 연결시키는 전략이 없다면 또 하나의 지나간 숫자로 남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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