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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김용범·신현송이 띄운 명목 GDP 17% 증가의 함정

2026.06.22 09:11

김용범 정책실장이 27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 접견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앞으로는 실질 국내총생산(GDP)뿐 아니라 명목 GDP도 계속 봐야 한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9일 한국금융학회 특별심포지엄에서 꺼낸 말이다. 신 총재는 올해 1분기 한국의 명목 GDP가 전년 동기 대비 17.1% 늘었다며 “굉장히 높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번 높은 명목성장률은 국내 물가가 치솟아서가 아니라 수출물가와 반도체 가격이 빠르게 오른 결과라고 설명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도 지난 20일 같은 숫자를 들고 나왔다. 김 실장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올해 한국 경제의 명목 GDP 성장률이 두 자릿수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며 “숫자만 놓고 보면 환호할 일”이라고 했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청와대 정책실장과 통화정책을 책임지는 한국은행 총재가 하루 간격으로 같은 지표를 강조한 것이다. 그렇다면 명목 GDP 17.1%는 정말 한국경제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뜻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절반만 맞다. 한국경제의 ‘돈으로 표시한 외형’이 커진 것은 맞다. 하지만 한국경제의 실제 생산량이 17.1% 늘었다거나 국민 생활이 그만큼 좋아졌다는 뜻은 아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28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취임 후 첫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시스


명목 GDP는 쉽게 말해 그해 가격으로 계산한 경제 규모다. 예를 들어 반도체를 100개 팔았는데 개당 가격이 1만 원이면 생산액은 100만 원이다. 다음 해에도 똑같이 100개를 팔았는데 가격만 2만 원으로 오르면 생산액은 200만 원이 된다. 물량은 그대로지만 돈으로 표시한 경제 규모는 두 배가 된다.

실질 GDP는 다르다. 물건값이 오른 효과를 빼고 실제로 얼마나 더 많이 만들고 팔았는지를 보려는 지표다. 가격표가 바뀌어서 숫자가 커진 것인지, 생산 자체가 늘어서 경제가 커진 것인지를 구분하는 계산이다. 그래서 경기의 체력을 볼 때는 통상 실질 GDP가 더 중요하게 쓰인다.

올해 1분기 한국경제가 바로 이 차이를 보여준다. 한국은행 잠정치 기준 명목 GDP는 전년 동기 대비 17.1% 증가했다. 그러나 실질 GDP 증가율은 3.8%였다. 17.1%라는 숫자만 보면 한국경제가 폭발적으로 커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생산량 기준으로 보면 성장률은 4%에 못 미쳤다.

이 간극을 만든 핵심은 반도체 가격이다. 인공지능 투자 확대로 고대역폭메모리 등 반도체 수요가 커졌고, 한국의 주력 수출품 가격도 뛰었다. 같은 양을 팔아도 더 비싼 가격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나라 전체가 벌어들인 돈의 규모가 커졌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17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별관에서 열린 2026년 상반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설명회에서 모두발언을 마친 뒤 미소를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명목 GDP를 완전히 착시로 치부할 수는 없다. 과거 고물가 시기의 명목 성장률은 국내 물가가 뛰면서 숫자가 부풀려진 측면이 컸다. 이번에는 성격이 다르다. 소비자물가가 17% 오른 것이 아니라 한국이 해외에 파는 주력 상품의 가격이 오른 영향이 크다. 수출기업 이익, 경상수지, 세수에는 실제로 영향을 주는 돈이다.

실질 국민총소득이 실질 GDP보다 훨씬 크게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질 GDP가 ‘얼마나 더 많이 생산했는가’를 보여준다면, 실질 국민총소득은 그 생산과 교역을 통해 국민경제의 구매력이 얼마나 좋아졌는지를 보여준다. 올해 1분기 실질 GDP 증가율은 3.8%였지만 실질 국민총소득은 13.2% 늘었다.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한국이 해외에서 더 많은 소득을 벌어들인 효과가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국제기구들은 GDP를 조심해서 해석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4년 3월 공개한 자료에서 명목값은 각 시점에 실제 관측된 가격으로 거래를 기록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가격 GDP의 변화를 볼 때는 수량이 변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물가 상승이나 하락 때문일 수 있다는 점을 단점으로 지적했다. 반면 불변가격(실질 기준 통계)은 가격 변화 효과를 제거해 실제 수량이나 물량 변화를 따로 보려는 지표라고 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비슷한 취지의 설명을 내놨다. IMF는 GDP가 현재가격(명목가격)으로 집계되기 때문에 물가 조정을 하지 않으면 두 기간을 단순 비교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명목 GDP가 오른 것이 더 많이 생산했기 때문인지, 단지 가격이 올랐기 때문인지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은행(WB)도 세계개발지표(WDI) 자료를 통해 현재가격 통계와 불변가격 통계를 구분하고 있다. 현재가격 통계는 해당 연도의 가격으로 계산한 값이고, 불변가격 통계는 기준연도 가격으로 다시 계산해 물가 상승 효과를 조정한 값이다. 세계은행은 불변가격 통계가 실제 물량 증가를 측정하는 데 쓰인다고 설명한다.

김용범 정책실장이 13일 호텔현대 바이 라한 울산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주재 K-조선 미래비전 간담회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이런 기준에서 보면 명목 GDP 17.1%는 한국경제의 외형이 커졌다는 신호이지만 실제 생산량이 17.1% 늘었다는 증거는 아니다. 가격 변화가 큰 시기일수록 명목 GDP는 더 신중하게 읽어야 한다. 명목 GDP는 나라 전체의 매출에 가깝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이익이 크게 늘면 국가 전체 숫자는 좋아진다. 하지만 그 이익이 임금, 고용, 협력업체, 자영업 매출, 지역 상권으로 번지지 않으면 성장을 체감하기 어려워 진다.

체감경기 지표는 이 괴리를 보여준다. 올해 1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2.4% 늘었지만, 물가를 감안한 실질소득 증가율은 0.4%에 그쳤다. 같은 기간 소비지출은 5.3% 증가했다. 나라 전체의 명목 GDP는 17.1% 뛰었지만, 가계 입장에서는 소득이 크게 늘었다기보다 쓸 돈과 부담이 함께 늘어난 것에 가깝다.

소상공인 경기 역시 뜨겁다고 보기 어렵다. 5월 소상공인 체감 경기지수는 67.9였다. 기준선인 100을 밑돈다는 것은 경기를 나쁘게 보는 사업자가 여전히 많다는 뜻이다. 반도체 수출 가격이 뛰어 국가 전체 소득이 늘어도, 동네 상권의 공실과 자영업자의 매출 부진이 곧장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고용도 마찬가지다. 반도체는 한국경제의 핵심 산업이지만 대규모 일자리를 직접 만들어내는 산업은 아니다. 고부가가치 산업일수록 매출과 이익은 빠르게 늘어도 고용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반도체 가격이 올라 명목 GDP가 급등해도 청년 고용, 자영업 매출, 지방 제조업 경기가 동시에 살아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28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산업 편중도 문제로 지목된다. 이번 명목 성장률 급등은 한국경제 전반의 고른 호황이라기보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수요가 끌어올린 가격 효과에 크게 기대고 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길어지면 한국경제에는 분명한 기회다. 하지만 가격 사이클이 꺾이면 명목 성장률도 빠르게 식을 수 있다. 특정 산업의 가격 상승을 한국경제 전체의 체력 개선으로 읽기 어려운 이유다.

명목 GDP가 포착하지 못하는 위험은 자산시장에도 있다. 반도체 호황으로 벌어들인 돈이 생산적 투자, 임금, 내수 회복으로 이어지면 경제 전반의 체력이 좋아진다. 반대로 그 돈이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으로만 몰리면 격차는 더 벌어질 수 있다. 명목 GDP가 커졌는데도 서민 주거비와 자영업 비용이 오르는 역설이 생길 수 있다.

결국 명목 GDP 17.1%는 한국경제의 성과이면서 동시에 경고등이다. 반도체 가격 상승이 기업 이익과 대외소득을 끌어올린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이번 성장이 생산량 증가보다 가격 상승에 크게 기대고 있고 그 과실이 고용과 임금, 가계소득과 내수 회복으로 충분히 번졌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정부와 한은이 명목 GDP를 함께 보기 시작한 것은 의미가 있다. 수출 가격이 급변하고 반도체가 국가 소득을 좌우하는 경제에서는 실질 GDP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돈의 흐름이 있다. 명목 GDP는 세수, 기업 매출, 국가채무비율, 대외소득을 볼 때 중요한 기준이다.

1일 경기도 평택항에 컨테이너가 쌓여있는 모습. 연합뉴스


다만 명목 GDP를 한국경제의 대표 성적표처럼 내세우려면 더 엄격한 검증이 따라야 한다. 실제 생산이 얼마나 늘었는지는 실질 GDP로, 국민의 구매력이 얼마나 개선됐는지는 실질소득으로, 성장의 과실이 어디로 흘렀는지는 임금과 고용, 자영업 경기, 소득분배 지표로 확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명목 GDP 급등은 반도체가 한국경제에 벌어다 준 돈이 커졌다는 신호이지, 그 돈이 경제 전체에 골고루 돌고 있다는 증거는 아니다”라며 “지금 시장이 봐야 할 것은 17.1%라는 숫자의 크기가 아니라 그 숫자가 임금과 고용, 내수와 자산가격 중 어디로 흘러가고 있느냐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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