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일하고 돈도 짭짤” 은퇴 65명이 알려준 ‘최고 직업’
2026.06.22 11:44
" 이제부터는 딴 거 필요없어. 퇴직 준비, 그리고 노후 설계. 이 두 가지에 집중해. "
2016년, 난 정년퇴직을 딱 10년 앞둔 상황이었다. 평소 형·동생 하며 친하게 지내던 선배들은 내게 하나같이 이렇게 조언했다. 하지만 “근데 그 퇴직 준비란 건 대체 어떻게 하는 건가요?”라는 내 질문에 속 시원히 답해 주는 이들은 없었다.
알고 싶은 게 있으면 책부터 찾아 읽는 게 내 습관이다. 난 주말마다 교보문고와 동네 도서관에 틀어박혀 퇴직 관련 책들을 독파해 나갔다. 한 15권쯤 읽었을 때였나, 나는 ‘인생 책’을 한 권 발견했다. 지금은 절판된 『300 프로젝트』(카시오페아)다.
" 이 책에 보니까 ‘성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한 분야에 100권의 책을 읽고, 100명을 인터뷰하고, 100개의 칼럼을 쓰라’는 구절이 눈에 팍 꽂히는 거예요. 저를 가만 돌이켜보니 책 100권은 읽을 자신이 있고, 이전부터 블로그와 소셜미디어(SNS)를 운영하면서 칼럼 100개는 더 쓴 것 같았어요. 근데 인터뷰 100명? 여기서 무릎을 탁 쳤죠. "
나는 ‘퇴직’과 ‘인생 2막’을 주제로 100명의 인생 선배를 만나 인터뷰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내게 가장 절박한 이슈인 퇴직 준비에 대한 궁금증들을 인터뷰를 통해 해결하기로 한 거다. 나뿐 아니라 내 또래의 수많은 ‘예비 퇴직자’ 역시 나처럼 갑갑한 심정일 게 뻔하니, 나의 인터뷰들은 블로그에 올려 공유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어느덧 나는 ‘퇴직 선배’ 65명을 인터뷰하고, 65가지 각양각색 인생 2막 스토리들을 내 블로그를 통해 공유했다. 당초 목표인 100명을 채우기 위해 지금도 인터뷰 시리즈를 이어가는 중이다. 그 사이 퇴직 준비생이었던 나는 부천시청에서 31년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고 정년퇴직해 ‘퇴직자 김부규(61)’가 됐다.
혹자는 내게 “언론사 기자도 아니고, 행정직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수십 명씩 만나 인터뷰까지 했냐”며 나만의 ‘유난스러운 퇴직 준비’를 이상하게 여기기도 했다. 분명히 말하건만, 퇴직 후 나는 이 인터뷰 덕분에 우울감 한번 느끼지 않고 인생 2막을 안정감 있게 뚜벅뚜벅 걸어갈 힘을 얻었다.
누구보다 ‘퇴직 예습’에 치열했던 나의 인생 2막은 대체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신가. 내가 만난 65가지 퇴직 스토리는 어떤 것들이었을까. 그리고 지금 나는 어떤 삶을 모방하고 따라가는 중일까. 수십 명을 만난 뒤 깨달은 퇴직 후 꿀팁들을 여러분께 남김없이 공개한다.
선배·지인 ‘부고 문자’로 깨달은 퇴직의 진실
이런 내 생각을 180도 뒤집어놓은 계기가 있다. 바로 ‘부고 문자’다.
" 직장 다닐 땐 건강하셨던 직장 선배들이 퇴직하고 나면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얼마 지나면 병원에 다니신다, 몸져누웠다더라, 이런 소식이 들려오고요. 그러다 덜컥 부고 문자가 날아오는 거예요. 이렇게 허망하게 가신 분이 제법 많았어요. "
한 번은 내가 인터뷰하려고 열심히 설득 중이던 분의 휴대전화 번호로 문자가 왔기에 얼른 확인했더니, 부고였다. 심장마비로 전날 새벽에 숨이 멎었다는…. 그분 자녀가 아버지 휴대전화에 저장된 내 번호로 부고 소식을 알려온 거였다.
" 허 참, 먹먹하더라고요. 그분은 주된 직장에서 일반 사무직으로 근무하시면서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증을 따셨더라고요. 퇴직하자마자 자그마한 빌딩의 시설 관리자로 들어가신 케이스였어요. 제가 그 스토리를 듣고 싶어서 인터뷰하자고 계속 설득하는데 한사코 거절하시더라고요. 돌아가신 뒤에 알고 보니 혈액암이었대요. 62세였어요. 그렇게 가시기엔 너무 젊은 나이 아닙니까. "
때마침 퇴직을 앞둔 내게도 건강 적신호가 감지됐다. 2023년 건감검진에서 관상동맥 석회화 지수가 고위험군에 속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대학병원에 갔더니, 혈관 몇 곳이 70% 이상 막혀 있었다. 서둘러 입원해 스텐트(협착된 혈관에 삽입하는 그물망 모양의 금속 기구) 시술을 받았다.
지난해엔 후두염으로 수술을 했다. 성대에 염증이 차올라 생긴 혹을 레이저로 잘라낸 것이다. 어깨에도 이상이 생겨 체외충격파 시술을 받았다.
선배·지인들의 예상치 못한 부고에 충격을 받을 무렵, 내 몸에도 이상이 찾아오니 ‘퇴직 후 부고’가 남의 일만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에겐 “혹여 내가 죽거든 납골당이니 이런 거 하지 말고, 화장해서 내 고향 통영의 먼 바다에 나가 뿌려 달라”는 당부도 해뒀다. 그리고 내 인생 2막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 이때 제 가슴을 울린 깨달음은 이런 거였어요. ‘아, 사람은 존재감 하나로 사는구나.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너지면 한순간에 사라져버릴 수 있구나. 대다수 사람에게는 일이 그 존재감을 채워주는구나…’라는 거였죠. 그래서 저도 인생 2막에 작더라도 반드시 내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바꾸게 됐습니다. "
취재원 일터로 찾아가 함께 땀 흘리며 대화
인터뷰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섭외였다. 사실 내가 언론사에 소속된 기자나 유명 작가가 아닌데, 느닷없이 “당신의 퇴직 스토리를 들려 달라”고 찾아가면 누가 승낙하겠나? 그래서 처음엔 퇴직한 선배에게 부탁해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 내용을 정리해 블로그에 올린 뒤 한 장씩 출력해 클리어 파일에 넣어 늘 소지하고 다녔다. 인터뷰하고 싶은 대상을 발견하면 이 클리어 파일부터 들이밀고 내가 쓴 기사들을 하나씩 보여주며 며칠에 걸쳐 겨우겨우 설득해 인터뷰 시리즈를 이어갈 수 있었다.
인터뷰를 진행할 때 나만의 철칙도 세웠다. 반드시 취재원의 일터에 직접 찾아가 그의 일을 도우며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 화물운송업 하시는 분을 만날 땐, 화물차 조수석에 동승해 이른 아침 인천 사료공장에 가서 사료 50부대를 실었죠. 그리고 충남 아산의 축산 농가에서 사료 내리는 일을 전부 함께 했고요. 귀촌해 고추 농사를 짓는 분을 만날 땐 비닐하우스에서 함께 일하고 양봉업자를 인터뷰할 때도 일손을 도우며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
‘체험, 삶의 현장’ 같은 인터뷰는 내가 프로 언론인이 아니기에 가능했다. 인터뷰에도 많은 기술이 필요할 텐데 솔직히 내겐 의욕뿐이었다. 상대의 마음을 열고, 진솔한 얘기를 들으려면 일손을 돕고 함께 땀을 흘리는 게 최고라고 생각했다.
또 당시 퇴직이 코앞이었던 나는 그분들이 하는 일에 대한 개인적인 궁금증도 컸다. 나도 퇴직하고 이 일에 뛰어들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인터뷰가 일종의 체험학습 기회로 여겨졌다. 그러니 아무 거리낌 없이 일터로 뛰어갈 수 있었다.
(계속)
은퇴자 65명을 만난 그의 눈에 쏙 들어온 ‘퇴직 후 최고의 직업’이 있었다.
“소자본 투자에, 근무시간은 짧고, 수익도 괜찮네. 이거다!”
기회만 되면 꼭 해보고 싶다는 그 직업은 뭘까. 반면 현장을 보고 단칼에 포기한 직업도 있었다.
은퇴 선배 65명이 몸으로 증명한 ‘최고의 직업’과 ‘최악의 직업’, 아래 링크에서 공개한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1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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