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밝히는 의사 [삶과 문화]
2026.06.22 00:10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좁은 배심원실 하나로 끝까지 간다. 한 소년의 운명을 두고 열한 명이 이미 유죄를 확신한다. 무더운 여름, 어서 끝내고 집에 가고 싶은 사람들. 그때 한 사람이 조용히 손을 든다. "조금만 더 들여다봅시다." 그의 무기는 새로운 증거가 아니다. 결론을 잠시 미루는 용기, 그것 하나다.
그런데 만약 그 배심원실이 진료실 문 앞이라면 어떨까.
얼마 전 기면병 환자가 약을 받으러 왔다. 다른 병원에서 검사받고 처방받던 고가의 약이었다. 다행히 기면병은 희소질환이라 등록만 되면 나라에서 큰 도움을 준다. 약값의 90%를 나라가 부담해 주니 환자가 짊어질 몫은 크지 않다. 다만 조건이 하나 있다. 이 약을 건강보험 혜택으로 처방하려면 검사 결과지를 반드시 첨부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약값 전액을 처방한 의사가 고스란히 토해내야 한다. 다른 약은 이렇게까지 까다롭지 않다. 유독 이 약만 그렇다. 규정이 그렇게 짜여 있을 뿐, 내가 세운 벽이 아니다.
나는 죄송하다는 말을 앞세워 설명했다. 결과지만 가져오시면 그날로 처방해 드리겠다고. 환자도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갔다.
그래서 이삼 주 뒤 올라온 네이버 리뷰 한 줄은 더 시렸다. "돈만 밝히는 의사." 약도 안 주고 그냥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그날 밤 나는 그 한 줄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서 뫼르소는 살인죄로 법정에 선다. 그러나 배심원들이 끝내 그를 사형대로 몰아간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것. 사람들은 행위가 아니라 표정을 심판한다. 눈에 보이는 한 장면으로 한 사람을 통째로 결론짓는다. 별점 하나, 문장 한 줄로. 그 뒤에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는 끝내 묻지 않는다.
처음엔 직업 자체에 회의가 들었다. 그러나 진료실에 오래 앉아 있다 보면 알게 된다. 화를 내는 사람은 대개 화가 난 게 아니라 아픈 것이다. 학부모 민원에 시달리던 교사는 편두통과 불면을 안고 온다. 직장에서 소진된 사람은 우울을 안고 온다. 가족을 잃은 사람은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찾아온다. 만성 스트레스는 분노라는 가면을 쓰고 찾아와, 결국 몸 어딘가에 통증으로 내려앉는다. 그 리뷰를 남긴 사람도 어쩌면, 진료실 밖 어딘가에서 이미 충분히 성나 있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나에게 화가 났다기보다, 세상 어딘가에 받지 못한 위로가 있었을 것이다.
장폴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했다. 타인의 시선에 갇히는 순간을 두고 한 말이다. 익명의 평점이 한 사람을 재단하는 시대에 우리는 누구나 서로에게 작은 지옥이 될 수 있다. 한 줄의 분노가 또 다른 분노를 부르고, 그렇게 성난 사람들의 사회가 만들어진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에서 끝까지 손을 들었던 그 한 사람을, 나는 오래 마음에 품어왔다. 성난 방 안에서 홀로 결론을 미룰 수 있는 용기.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요즘의 나는 그 손을 들 힘이 자꾸 빠진다.
분노는 전염된다. 그리고 그것을 묵묵히 받아내는 쪽은 조용히 닳아간다. 진료실 문을 닫고 가운을 벗을 때마다 같은 생각이 든다.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통증을 먼저 보려 애쓰는 사이, 정작 내 통증은 별점 하나에 자꾸 깎여 나간다.
성난 사람들 사이에서 끝내 먼저 지치는 쪽은, 성내지 않으려 버티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김석재 삼성스마트김석재신경과 대표원장·'조종당하는 인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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