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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옥금의 한국에 산다는 것] 그들이 빗속에서 오체투지 행진한 이유

2026.06.22 00:12

원옥금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이주민센터 동행 대표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던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 아스팔트는 금세 차가운 빗물로 뒤덮였다. 온몸이 흠뻑 젖어 드는 궂은 날씨 속에서, 내 눈앞에는 평생 잊지 못할 장엄하고 가슴 시린 풍경이 펼쳐졌다.

머리를 땅에 대고, 양팔과 무릎을 차가운 바닥에 온전히 내던져 이동하는 이들의 행렬이 시작된 것이다. 바로 미등록 이주민들의 체류권 보장을 촉구하는 ‘오체투지 행진’이었다. 여러 종교의 성직자들이 앞장서고, 이주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이 그 뒤를 이어 가장 낮은 자세로 빗물이 흐르는 아스팔트 위로 몸을 던졌다. 나는 비록 직접 바닥에 엎드리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곁에서 청와대 앞까지 함께 걸으며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쳤다.

미등록 이주민의 눈물겨운 행진
불법체류 낙인에 강제퇴거 위기
궂은 일 도맡은 그들을 포용해야

비바람에 온몸이 젖고 얼굴에 흙탕물이 튀어도 그들의 행진은 멈추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몸을 던지는 오체투지는, 한국 사회에서 신분 권리가 없어 늘 숨죽여 지내야 했던 미등록 이주민들의 ‘낮은 삶’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동시에 단속과 추방의 공포 속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낸, 가장 절박하고도 용기 있는 호소였다. 그날 아스팔트 위를 눈물로 적신 이들의 외침은 단 하나였다. “우리도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미등록 이주민은 약 40만 명에 육박한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인원까지 합하면 60만~7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기도 한다. ‘불법체류자’라는 낙인이 찍힌 이들은 어디에 있을까. 그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한국 경제의 가장 깊숙한 밑바닥을 지탱하고 있다. 인력난에 허덕이는 제조업 공장, 새벽을 깨우는 건설 현장, 그리고 농어촌의 비닐하우스와 어선 위에서 이들은 매일 땀 흘려 일하고 있다.

주권 국가로서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법의 잣대로만 이들을 절벽으로 내모는 정책은 이미 실패했다. 정부는 매년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들여 단속과 추방 중심의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매월 수천 명의 이주민이 새롭게 체류 자격을 잃고 미등록 상태로 내몰리는 악순환이 지속하고 있다.

진짜 문제는 이 법적 공백이 가져오는 인간 존엄성의 파괴에 있다. 미등록 이주민들은 임금체불을 당하거나 심각한 산업재해를 입어도 강제퇴거의 두려움 때문에 당국에 신고조차 못한다. 아파도 병원에 가기 어렵고,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숨어 지내야 한다. 심지어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를 쓰고 한국을 유일한 고향으로 여기는 아이들마저 부모의 신분 때문에 ‘있지만 없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이 국적과 신분증 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언제까지 외면해야 할까.

이제는 시선을 돌려 다른 세상의 결단을 바라보자. 스페인 정부의 전향적인 조치는 훌륭한 나침반이 되어 준다. 최근 스페인 정부는 약 50만 명에 달하는 미등록 이주민에 대해 전면 합법화를 단행하고 체류 자격과 노동허가를 부여했다. 일정 자격을 갖추면 영주권까지 주겠다고 발표했다.

스페인이 결코 인권 온정주의에만 치우쳐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니다. 이미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고 살아가는 이들을 제도권 안으로 포용하는 것이 사회 전체에 훨씬 유익하다는 정의로운 판단을 한 것이다. 이들을 양지로 이끌어 당당하게 세금을 내게 하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를 받으며 안전하게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통합과 경제의 지속 가능성에 훨씬 이롭기 때문이다.

공동체라는 감각은 국적이나 주민등록번호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미 그들은 우리 이웃이자 동료이다. 혐오와 차별은 결코 답이 될 수 없다. 정부는 이제라도 스페인 등의 이민 패러다임 전환 사례를 깊이 살펴보고, 장기체류 이주민들이 합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상설 체류 안정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인권 선진국을 자임하는 대한민국의 품격이자, 인구 소멸 위기 속에서 우리가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상생의 길이다.

6월 14일의 그 거센 비바람 속에서, 온몸으로 길을 열었던 이주노동자들과 종교인들의 간절한 외침이 아직도 귀에 선하다. 이제 우리 정부가 전향적인 결단으로 그들의 얼어붙은 삶에 희망을 열어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사람이 머물지 못하는 땅에는 우리의 미래도 머물 수 없기 때문이다.

원옥금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이주민센터 동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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