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甲濟 칼럼] 한민족이 치러낸 다섯 번의 세계사적 결전
2026.06.22 00:22
598~645년 : 고구려는 약 370년 만에 중국 대륙을 통일한 수(隋)와 당(唐)의 대규모 공격을 막아냈다. 수 왕조는 패전 후유증으로 망했다. 이때 고구려가 졌다면 한반도의 방벽이 무너져 백제와 신라도 먹히고 우리는 지금 중국인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
670~676년 : 당이 신라와 동맹,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신라마저 삼키려 할 때 문무왕과 김유신의 신라 지도부는 싸움을 결단했다. 대당(對唐) 결전이다. 신라는 전성기 제국의 정예군을 상대로 7년 간 육지와 바다에서 싸워 이겼다. 그리하여 한반도를 민족의 생존 공간으로 확보, 그 뒤 300년 간 지속된 동아시아의 황금기를 열었다. 한민족과 한국어가 이 승리의 산물이다.
1231~1270년 : 고려의 대몽항전(對蒙抗戰). 세계 최강 몽골 기마군단이 아홉 차례나 침략하였으나 고려 무신(武臣)정권은 강화도로 들어가 38년을 버텼다. 몽골도 이런 투지를 높이 사 항복한 고려 왕조를 우대, 몽골세계의 일원이 되게 하였다. 1281년 고려-몽골 연합군 15만 명(함선 약 5000척)의 일본 침공은 세계 최대의 상륙전이었다.
1592~1598년 : 조총(鳥銃)으로 무장한 세계 최강의 일본 육군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조선은 수군(水軍)과 의병이 버티는 사이 명(明)의 파병을 이끌어내어 침략군을 쫓아냈다. 당시 한반도에 상륙한 일본군은 연인원으로 약 40만 명, 명나라 군대는 약 20만으로 16세기 세계 최대 규모의 전쟁이었다. 일본군이 개량한 조총은 성능이 유럽을 능가했다. 만약 일본군이 그런 규모로 유럽에 상륙했더라면 연전연승했을 것이다.
다섯 차례 결사 항전은 프로 군대끼리 싸우는 유럽이나 일본식 전쟁이 아니라 국민이 애국·애족의 마음으로 한 덩어리가 되어 싸운 총력전이었다. 전선이 한반도로 설정되어 우리는 익숙한 지형과 짧은 보급선을 이용, 침략군을 격파할 수 있었다.
국가 지도부가 주체적으로 전쟁을 결단, 선제공격으로 시작한 전쟁은 신라가 당군(唐軍)을 친 경우가 유일하다. 신라가 치욕과 고통을 견디면서 이 결전을 준비해간 과정은 문무왕이 당나라 장수 설인귀에게 보낸 천하 명문 ‘답설인귀서’(삼국사기)에 르포 기사처럼 생생하게 적혀 있다. 문무왕은 당군이 백제 땅에 주둔할 때 신라 사람들이 고생한 이야기를 하면서 '1만 명의 병정이 4년 간 신라에 의지하여 먹고 입었으니 당신들의 가죽과 뼈는 비록 당나라 것이라 해도 피와 살은 신라 것이다'고 했다. 신라는 당과 결전하기 위한 포석으로 일본과도 화해, 배후를 안정시키고, 백제·고구려 유민들을 포섭하였다. 정보에도 밝아 지금 티베트 지역의 토번(吐蕃)이 당을 공격할 때 같이 쳤다.
이번 지방선거에선 북핵 등 안보 문제는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김정은은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고 우크라이나 파병을 매개로 러시아와 동맹국 수준으로 밀착한 바탕에서 중국을 핵3각 동맹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한 미국 전문가는 김정은이 ‘국제 왕따’에서 ‘글로벌 파워 플레이어’로 승급(昇級)했다고 평가했다. 북한이 강화된 핵 무력을 배경으로 서해에서 전략적 도발을 할 것이란 말도 나온다. 한국군이 보복 작전에 나설 경우 김정은이 “그러면 우리는 핵을 쓰겠다”고 한다면 이재명 정부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도 북한 지역을 폭격, 핵전쟁의 위험을 무릅쓸 것인가. 아니면 얻어맞는 쪽을 선택, 종속화할 것인가? 어느 쪽이든 악마의 선택이다.
이란 전쟁은 새삼 한국인의 전쟁 의지를 묻고 있다. 민족적 유전자로 내려오는 군·관·민 일체의 결사 항전 의지를 동원하고 조직하여 핵 없이도 핵을 억제할 수 있는 슬기로운 대전략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오늘 밤 우리가 발 뻗고 잘 수 있는 건 김정은이 아직 핵 발사 단추를 누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5000만 생명이 그런 요행수에 기대어 살 순 없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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