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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잃은 슬픔, 펫 피겨로 덜어내세요” 펫 로스 치유 돕는 이건학 작가

2026.06.21 20:31

이건학 작가가 지난 17일 경기 일산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반려동물 사진은 물론 특징 취재
정밀하게 생전의 모습 부활시켜
주문 판매 외에 고객 참여 제작도
“내 펫에 대한 이야기와 그리움에
귀 기울여줄 사람을 바라는 듯”

“사람 하나 살리셨어요, 작가님…”

‘조그마한 피겨 하나에 수십만원이라는 큰돈을 지불하는 고객들의 심리는 뭘까?’라는 질문에 이건학 작가(47)는 한 고객의 지인에게 들었던 말을 전했다. “당시 고객이 펫(반려동물)을 잃은 슬픔에 끼니도 걸렀던 것 같았어요. 동행한 지인분께서 고객분께 ‘여기 온 덕분에 이렇게 밥도 먹고 있잖아’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는 “처음엔 수십만원을 선뜻 지불하는 의뢰인들이 잘 이해가 안 됐다”며 “의뢰인들에게 펫은 ‘애완동물’이 아닌 ‘반려동물’, 즉 반려자였기 때문 아닐까”라고 했다.

지난 17일 경기 일산 작업실에서 만난 이 작가는 최근 책 <위로가 되신다면 잠시 시간을 멈출게요>를 냈다. 그가 피겨를 제작·판매하며 겪은 일과 소회를 담았다.

그는 특정 동물을 피겨로 재현한다. ‘펫 로스’(반려동물을 잃은 상실감)를 겪는 이들이 이 작가의 주요 고객이다.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거나, 병 또는 사고로 세상을 떠난 펫을 피겨로 만들어 판매하는 게 그의 일이다.

펫 피겨의 공 소품(왼쪽)은 의뢰인이 ‘나만의 반려동물 피겨 만들기 수업’에 참여해 직접 만들었다. 본인 제공

“펫을 잃은 직후 의뢰 전화를 하신 고객분들은 대개 울먹이십니다. 그런데 제가 개인적으로 더 놀라는 건 펫을 잃은 지 몇달, 심지어 수년이 흐른 고객분들도 종종 의뢰를 하신다는 거예요.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잊지 못하시더라고요.”

제작은 의뢰인들로부터 펫의 사진들을 받고, 특징 등을 자세히 취재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우선 유토(기름흙)로 가모형을 만들어 이후 발생할 시행착오를 줄인다.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면 철사로 뼈대를 만들고 시바툴(송진의 일종)로 살을 붙인다. 그 뒤 정밀묘사가 쉬운 스컬피(조형 재료)로 마감해 세부묘사와 도색을 거쳐 펫을 ‘부활’시킨다.

이 작업에 보통 3주가량이 소요된다. 재료도 고가이다 보니 가격이 높아진다. 그래서 기성품을 활용해 단기간에 저렴한 금액으로 제작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기성품과 실제 펫 간에 다소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절충안으로 고객이 직접 제작 과정에 참여하는 ‘나만의 반려동물 피겨 만들기 수업’을 별도로 진행한다.

“이 수업에선 고객들과 실제 대면하게 돼요. 형식적으로는 고객이 제 도움을 받아 직접 만드는 것이지만 실상은 거의 제가 다 해드리죠(웃음).”

그는 이 과정의 가치는 다른 데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고객들은 자신의 펫이 어땠는지 제게 설명을 할 수밖에 없어요. 전 그걸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귀 기울일 수밖에 없고요. 점점 말씀이 많아지시고 표정도 밝아지세요. 그러다 피겨가 제 모습을 갖추어가면 눈시울을 붉히시곤 합니다.”

그는 이 과정이 일종의 치유인 것 같다고도 했다. “‘펫을 잃어서 식사를 거를 정도’의 얘기는 아무에게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내 펫에 대한 얘기나 그리움을 말할 수 있고, 그걸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있는 기회’가 그분들에겐 필요한 것 같았어요.”

그는 대학에서 의료경영학을 전공했다. 이후 직장을 3~4곳 다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도 했다. 적성에 맞지 않았다. 문득 어렸을 적 건담 프라모델 만들기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피겨를 만들어 팔아보자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조소 학원에 등록했다. 1년6개월의 교육 과정을 마치고 2014년 상품을 쇼핑 사이트에 올렸다.

그중엔 고양이도 있었다. 그 상품을 본 한 고객이 자신의 반려동물을 재현해줄 수 있느냐고 문의를 해온 게 시작이었다. 2016년에는 미국 온라인 쇼핑몰에도 진출했다. 지금은 국내 고객과 해외 고객의 비율이 2 대 1 정도다.

“굳이 먼 나라의 저에게까지 의뢰하시는 걸 보면 이젠 ‘사람만 가족인 시대’는 지난 것 같기도 해요. 사람에게 치이고 상처받는 일이 늘면서 온전히 내 편이 돼주고 필요할 때 묵묵히 곁에 있어주는 존재에 대한 갈증이 있는 것 같아요.”

그는 다만 “‘사람도’ 있어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제가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모르지만, 그래도 사람 곁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사람만이 줄 수 있는 뭔가도 있는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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