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몰라요’의 가수 옥희 별세… 홍수환이 마지막 지켜
2026.06.21 11:31
히트곡 ‘나는 몰라요’ ‘이웃사촌’ 등으로 1970년대를 풍미한 가수 옥희(73)가 20일 오후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유족과 지인 등에 따르면 옥희는 그간 신장암 투병을 해왔고, 이날 경기 수원시의 한 호스피스 병동에서 남편 홍수환과 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고인과 절친했던 가수 장미화는 본지 통화에서 “전날 옥희 딸이 ‘엄마가 위독한데, 이모를 기다린다’고 전화를 해 면회를 갔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옥희가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면회 당시 옥희 노래들을 함께 들으며 귓속말로 우리 추억 이야기들을 해줬더니 잠시 상태가 호전됐었다. 며칠 더 시간이 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 허망하고 마음 아프다”고 했다.
옥희는 1953년 한국전쟁 도중 피란지인 부산에서 태어났고, 악극단 활동을 하던 부모 밑에서 자연스레 음악을 접했다. 휴전 후 가족과 함께 서울로 상경한 옥희는 배화여중 3학년 때 미8군쇼 무대로 처음 가요계 활동을 시작했다. 명동에서 의상실을 운영하던 고모의 소개로 가수 현미를 만나면서 쇼 공급업체를 소개 받은 것이 계기였다.
일찍부터 해외로 향해 우리 가요계를 세계에 알린 개척 세대이기도 했다. 1968년 5인조 걸그룹 서울시스터즈의 리더를 맡아 홍콩, 중동, 캐나다 등 세계 각지를 누볐다. 당대 해외 가수들 사이에서도 꿈의 무대로 불리던 미국 라스베이거스 호텔 쇼에도 입성하면서 이들의 출연 소식이 현지 매체와 미국 빌보드지에도 소개됐다. 옥희는 생전 방송에서 당시를 “원조 K팝 스타였다”라고 회상했다.
옥희의 전성시대는 귀국 후 솔로로 전향하면서 더욱 크게 열렸다. 출중한 외모와 뛰어난 가창력을 앞세운 그의 스타성에 유명 작곡가 김희갑의 멜로디가 더해진 노래 ‘나는 몰라요’(1974)가 MBC ‘10대 가수상’을 거머쥐었다. 이후 옥희는 ‘눈으로만 말해요’(1975) ‘어디에 있을 것 같아’(1976) ‘아 그날이’(1976) ‘이웃사촌’(1977) ‘두 손을 잡아요’(1977) 등 다수의 히트곡을 내며 인기를 이어갔다.
1970년대 후반 옥희와 복싱 세계 챔피언 출신 홍수환과의 열애설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것도 당시 누리던 큰 인기를 반증한 장면이었다. 두 사람은 1977년 딸을 낳으며 동거 생활을 시작했지만 1년 만에 결별했고, 1995년 16년 만에 재결합하면서 대중에게 놀라움을 안겼다. 이후 두 사람은 2000년 ‘옥희&홍수환 찬양 앨범’을 내거나 자선음악회 무대에 함께 서며 돈독한 부부 사이를 드러냈다. 홍수환씨는 최근까지도 옥희의 곁에서 간병을 맡은 것으로 전해졌다.
옥희는 지난해 신장암 진단을 받은 후 투병 생활 중에도 노래와 무대의 끈을 놓지 않았다. 올해 3월에도 KBS1 음악방송 가요무대에 출연, 노래 ‘정열의 꽃’(원곡 가수 이금희)을 열창하며 노래 혼을 불태웠다. 장미화는 “가요무대 연습 도중 계속 상태가 안 좋아져서 주변에서 다 말렸지만 끝까지 무대를 고집했고, 출연 직후 응급실에 실려갔다”며 “암에 걸리기 전에는 자기 노래를 홍보하겠다며 전국 방방곡곡의 노래교실을 돌아다녔다. 그만큼 몸 바쳐 노래하는 열정적인 친구였다”고 회상했다. 옥희는 재작년 미8군 무대 출신들이 다수 포함된 원로가수 음악 동인 ‘예우회’와 함께 앨범 ‘전설을 노래하다’를 발매하기도 했다. 수록곡 ‘인생 열차’가 고인의 목소리로 취입한 마지막 노래가 됐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는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으로는 남편 홍수환씨와 1남 1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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