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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표 방송 보고 화 나" 우체국 앞에서 노래 부르기 시작한 남자

2026.06.21 11:36

[활동가, 전환을 말하다] 지역공동체 일꾼으로, 거리의 민중가수로 살아가는 손기문씨공익활동가가 되는 데 정해진 경로는 없습니다. 교사였던 사람, 광장에서 처음 마이크를 잡았던 사람, 기존 활동의 궤적 위에서 변화를 만드는 방식 자체를 '전환'해 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공익활동'이 더 많은 사람의 선택지가 되길 바라며, 다채로운 전환의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기자말>

한 곳에 눌러앉아 '엉덩이'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리'에 의지해 끊임없이 이동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서울과 강릉, 산내와 상주 등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닌 이력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손기문씨는 후자에 가까워 보인다. 그이 역시 자신을 '보헤미안'이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다. 생계와 그 밖의 책무로 인해 육체는 어딘가에 매여 있을 때조차 "정신만은 늘 자유를 갈망하고 좇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런 그에게 노래는 어디에 머물든, 혹은 어디로 떠나든 상관없이 자유의 날개를 달아주는 선물과도 같다. 대학 시절 학내 노래패에 가입한 것을 계기로 민중가요를 만나고 사회의 이면을 보게 되었다는 그는, 졸업 후 한동안 노래를 잊고 살았으나 지금은 전국 각지의 집회와 시위 현장을 누비는 '지리산 노래패' 가수로 활약 중이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부르는 노래의 메시지를 공공의 영역에서 어떻게 더 넓고 촘촘하게 적용할지 고민하는, 남원시공동체지원센터의 4년 차 일꾼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역할을 조화롭게 엮어가기까지 손기문씨는 어떤 여정을 밟아왔을까. 이야기의 시작은 '탈서울'을 시도한 어느 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원시공동체지원센터에서 만난 손기문씨.
ⓒ 임현택

서울은 위험해, 동쪽으로 튀어!

"사회초년생일 때 무역회사에 다니다가 그만두고 학원에 다니면서 IT 관련 기술을 익힌 다음 이직했어요. 그러고 나서 한 이삼 년 정도 경력을 쌓았을 때쯤인데 서울살이가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처럼 답답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별 보고 출근했다가 별 보고 퇴근하는 생활도 너무 싫었고요. 만약 서울을 떠난다면 어디로 갈 것인가 했을 때 가장 먼저 강릉이 떠올랐죠. 제가 서울 토박이이지만 대학은 강릉에서 다녔거든요.

어느 날 밤 가족들을 차에 태우고 무작정 강릉으로 달려가서 바다를 봤어요.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에 연차를 낸 다음 부동산에 가서 집을 계약했지요. 애 둘 딸린 가장이다 보니 두려움이 없진 않았지만 그래도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습니다."

지금도 강릉에서의 시간을 떠올리면 그의 입가엔 슬며시 미소가 걸린다. 바다를 옆에 끼고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오가는 출퇴근 길이 좋았고, 아이들과 텐트 안에서 종일 파도 소리를 들으며 뒹굴 수 있는 주말이 좋았다. 몸도 마음도 여유를 되찾아서였을까. 하는 일은 서울에서와 크게 다를 바 없었으나 그는 답답함 대신 해방감과 즐거움을 느꼈고, 이를 온전히 누리려 했다.

그렇게 강릉살이에 적응해갈 무렵. 그는 결혼과 취업 이후 "먹고사는 데 바빠" 손에서 놓았던 기타를 십 몇 년 만에 다시 쥐게 된다. 퇴근 후 카페에서 노래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이다. 아르바이트라고는 하지만 돈을 보고 한 일은 아니었다. 그는 "그저 노래가 하고 싶었"고, 오래도록 가슴 깊이 묻어 두었던 갈망을 자유로이 풀어놓았을 뿐이다.

 대도시 서울을 벗어나 강릉에서 보낸 시간은 손기문씨와 그의 가족에게 지금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 손기문

일과 노래와 가정생활 등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 보였던 강릉에서의 삶은 그러나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큰아이가 남원시 산내에 있는 실상사작은학교(아래 작은학교)에 들어간 것이 그 계기였다. 하고많은 대안학교 중 하필이면 거주지에서 멀리 떨어진 지리산 아래 작은학교를 선택한 데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서울에 살 때부터 대안학교를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그 당시 몇 가구가 모여 공동육아도 시도했었는데 잘 안 됐죠. 서울깍쟁이들이 공동체가 뭔지도 모르고 '깜'도 안 되면서 달려들었던 거예요.(웃음) 그러다가 남양주에 거주할 때 알게 된 분이 자녀를 작은학교에 보내고 있다며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시는데 왠지 모르게 끌리더라고요. 지리산에 한 번 가본 적도 없었지만 거기서 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 또한 있었고요."

지리산에 깃들어 '민중가수'가 되다

작은학교의 배려로 인근 마을 한옥에 살게 된 손기문씨에게 '산내'라는 지역은 "참으로 이상하면서도 환상적"으로 보였다. 저마다 개성은 강하지만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주민들, 수많은 모임과 토론으로 활기가 넘치는 동네, 생태화장실을 쓰고 자연에 무해한 방식의 농사를 짓는 절, 그 절을 중심으로 '함께' 살아가는 법을 고민하는 사람들, 교사보다는 수행자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학교. 서울은 물론 강릉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신세계를 보여주는 지리산 자락 마을에서, 그는 "먹고사는 게 삶의 전부는 아니"며 "공동체가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 것"이라는 믿음을 얻었다.

 산내에서 그와 가족들이 살던 집. 산내는 그에게 ‘공동체란 무엇인지’ 보여주고 경험하게 한 곳이다.
ⓒ 손기문

다만 그때는 아이 둘이 한창 배우고 자라나는 시기라 생계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기에 마을 공동체에 깊이 관여하거나 친밀한 관계로 엮이지는 못했다고 그는 고백한다. 강릉에서 다시 시작했던 노래와도 멀어진 상태였다. 가끔 작은학교에서 하는 행사 무대에 오르긴 했지만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전혀 없었다고. 이랬던 그가 자칭 타칭 민중가수로 거듭난 건 2012년 12월 대통령선거가 끝난 직후의 일이다.

"누워서 개표 방송을 보다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박근혜씨의 득표율을 보고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어요. 저건 말도 안 되는 숫자며 국민에 대한 기만이라는 생각에 화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다음 날 앰프를 사 들고 남원 시내로 나갔죠. 누가 도통동 우체국 앞에 사람이 많다고 하기에 무작정 그리로 가서 민중가요를 부르기 시작한 거예요. 부정선거가 당시 이슈도 아니었고 저 역시나 물증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튼 저는 뭐라도 하고 싶었어요. 지금 돌아보면 그냥 거리에서 크게 노래를 부르고 싶었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웃음)"

 남원시 도통동 우체국 앞에서 1인시위 겸 버스킹을 하는 손기문씨.
ⓒ 손기문

그날 이후 일 년간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남원시 도통동 우체국 앞 거리에는 손기문씨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어느 날인가는 누군가 다가오더니 <지리산2>라는 노래를 아느냐 묻고는 악보를 내밀었다. 그는 모르는 노래였지만 악보를 보며 열심히 불렀고, 이를 계기로 만남을 이어간 두 사람은 남원 시민들로 구성된 첫 민중가요 동아리인 '지리산 노래패'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2015년에 다섯 명으로 시작했어요. 장소가 따로 없어서 일주일에 한 번씩 공설시장 쉼터에 모여 연습했는데, 그때만 해도 다들 자녀가 어릴 때라 애들 손 잡고 하나둘 모였던 기억이 나요. 노래패 동료 한 명이 시민사회 쪽에 인맥이 넓어서 초반부터 공연 섭외가 꽤 많이 들어왔죠. 주로 집회나 시위 현장 아니면 시민단체에서 개최하는 행사였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어려운 이들이 우리의 노래를 듣고 힘을 얻으면 좋겠다는 마음 하나로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그의 표현을 빌리면 지리산 노래패는 전문 노래꾼보다는 "노래로 세상에 말을 걸고 싶은 이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지난 십 년간 회원이 들고 나는 등 여느 조직이 겪을 법한 크고 작은 부침은 있었으나 이 전제만은 변함이 없다. 그리하여 이들의 주요 무대는 여전히 '거리'이고 '현장'이다. 전국에서 탄핵 바람이 거세게 불던 2024년 10월에는 서울시청 앞 광장 무대에도 올랐다. "민주사회를 갈망하는 시민들의 열기와 엄청난 에너지에 압도당한" 그날, 그는 노래가 듣는 이뿐 아니라 부르는 이에게도 힘과 용기와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알았다.

 2024년 10월 26일 서울시청 앞 광장 무대에 올라 공연하는 지리산 노래패.
ⓒ 손기문

노래로 (세상에) 말 걸고, 활동으로 (세상을) 바꾸고

산내에서 상주로 건너가 오륙 년 살다 다시 남원 시내에 자리를 잡았다는 손기문씨는, 2023년부터 현재까지 남원시공동체지원센터(아래 센터)에서 일하는 중이다. 남원을 벗어나 있는 동안 그가 유일하게 놓지 않은 것은 노래였다. 주중에는 상주에서 기타 동아리 활동과 버스킹을, 주말에는 남원으로 건너와 지리산 노래패 활동과 공연을 이어갔다고.

"그러다가 상주보다는 남원이 저한테 잘 맞는 거 같고, 무엇보다 여기엔 지리산 노래패가 있으니까 다시 오게 된 거죠. 남원에 오고 나서 당장 일이 필요했는데 마침 센터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공고가 떴길래 바로 지원했어요. 솔직히 말하면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나 지역공동체에 이바지하겠다는 거창한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다만 산내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 노래 공연을 다니면서 깨달은 것들이 조금이나마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습니다."

센터 안에서 그가 속해 있는 '공동체지원팀'의 역할은 지역에 작은 공동체들을 만들고 그것이 활성화되도록 지원하며,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경제 활동을 수행할 수 있게끔 역량을 성장 강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데 주력한다. 공동체를 만들고 키우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그 안에서 중심이 되어줄 사람이기 때문이다. 센터에서는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을 '활동가'라 부른다.

"처음부터 '공익'적인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는 분들도 있지만, 목공이나 발효나 몸살림운동처럼 단순한 취미나 생활 모임으로 시작하는 분들이 더 많아요. 저희 역시나 지역사회가 건강하게 잘 유지되고 좋은 방향으로 변하려면 소규모의 다양한 공동체가 필요하고 그런 모임들이 결국은 공익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봅니다."

 공동체 지원사업 중 하나인 ‘예쓰장(예촌마당쓰레기없는시민장터)’에 참여한 지역 활동가들.
ⓒ 남원시공동체지원센터

별다른 "개념 없이" 가볍게 일을 시작했던 것과는 달리, 연차가 늘고 경험이 쌓일수록 그는 스스로 "생각과 질문이 많아지고 진지해지는" 것을 느낀다. 우리 사회에 왜, 어떤 공동체가 필요한지, 센터가 어떻게 하면 지역사회에 더 파고들 수 있는지, 활동가들이 지치지 않고 계속 성장할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스스로 묻고 답을 구하려 애쓰게 된다는 것. 아울러 초반에는 미처 몰랐던 중간지원조직의 어려움이 눈에 보이면서 고민이 깊어질 때도 종종 있다.

"중간조직은 아무래도 중간에서 눈치를 보게 되거든요.(웃음) 한편으로는 시민들에게 활동 권한을 주고 그것을 지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행정기관의 허락을 구하고 결정에 따라야 하니까요. 뭐든 자유롭게 해보시라 하고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고 싶어도 막상 행정으로 가면 안 되는 게 많아요. 특히 '안전'에 민감해서, 일례로 장터 하나 여는 데도 제약이 크죠. 가스 불은 위험하니까 쓰면 안 되고, 식중독에 걸릴 수 있다는 이유로 흔한 먹거리조차 제한되기도 하고요. 저희가 시민의 권한과 행정적 제약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하는데 그게 늘 쉽지만은 않은 거 같아요."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그가 있는 곳에는 늘 노래가 울려 퍼지고, 노래를 따라 그의 삶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 손기문

종종 어려움을 겪고 때론 큰 고비도 있었지만, 넓게 보면 "원하는 대로 흘러온" 삶이었다고 손기문씨는 생각한다. 수단이나 도구가 아닌 '사람'으로 존재하기 위해 서울을 벗어났고, 그 이후 줄곧 '사람 사는 세상'을 노래해 왔으며, 게다가 지금은 지역공동체를 위해 일하고 있으니 이만하면 행복하고 만족스럽다는 얘기다.

물론 보헤미안을 자처하는 그가 언제 또 짐을 싸 들고 훌쩍 떠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것 하나는 분명해 보인다. 거기가 어디든 그의 발길이 닿는 곳에서는 노래가 울려 퍼지리라는 것. 2024년 10월 지리산 노래패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부른 노래(<노래여 날아가라(윤미진)>) 가사처럼, 그는 여전히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땅"을 꿈꾸며 어느 거리, 어느 현장에서 세상을 향해 말을 걸고 있으리라는 것. 그리하여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힘과 용기를 얻게 된다면 그는 싱긋 웃으며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과거에 그랬듯 지금도 내 삶은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인터뷰어 : 자야
함양에 산 지 17년째. 새벽 산책과 새 관찰, 지치지 않을 정도의 텃밭일, 읽고 쓰고 노래하는 것, 용기 있고 다정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일을 좋아한다.

 세상의 변화에는 늘 공익활동가가 있습니다. '공익활동가주간'은 공익활동가들에 대한 존중과 지지를 바탕으로 사회적 인정 문화를 만들기 위한 전국 단위의 행사입니다. 2026년에는 6월 29일부터 7월 3일까지 일주일 동안 전국 곳곳에서 공익활동가를 응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연대의 장이 열립니다.
ⓒ 공익활동가주간추진위원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변화를만드는사람들 홈페이지, 소셜임팩트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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