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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걸 칼럼] 저기, 그들이 온다

2026.06.21 08:45

홍성걸 (재)문화영토연구원 이사장·국민대 명예교수
홍성걸 (재)문화영토연구원 이사장·국민대 명예교수


선거가 끝났지만 지금도 송파구 올림픽공원에 마련된 잠실 개표소는 시위대에 둘러싸여 있다. 처음엔 2030 세대가 주축을 이루어 성조기 사용을 자제한 채 태극기만 들고 '재선거'를 구호로 외쳤고 시위대의 규모도 3만 명 수준에 이르렀다. 6월 8일 경부터 고령층과 성조기 사용자가 늘어나더니 이젠 평일 기준 수천 명 수준으로 줄고 그 구성도 70~80%가 고령층이다. 그러자 일부 2030 시위대는 홍대 앞으로 자리를 옮겨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피로 쟁취한 대한민국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투표하지 못한 유권자가 발생했다는 게 말이 되는가. 국민은 명백한 참정권의 침해에 분노했고, 그 분노는 헌법기관이란 이유로 형식적인 회계감사 외에 어떤 외부 통제도 받지 않았던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를 향했다. 연일 보도되는 선관위의 어이없는 특권 의식과 세금 기생충적 작태에 분노가 극에 달하면서 선관위를 그대로 둘 수 없다는 국민적 합의에 이르렀다. 투표용지 부족도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본업인 투표 관리는 엉망이었고 결과 입력도 오류가 비일비재했다. 투개표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근본에서부터 훼손된 것이다. 그러면서도 몰디브, 피렌체로 해외 출장을 다녔고, 선거 때에 맞춰 휴직자가 대폭 증가했으며, 스스로 가족회사라 부를 만큼 친인척을 특채했고 선거관리에 필요한 용역의 80% 이상을 수의계약으로 진행해 부패의 온상이 됐다. 선관위를 해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대통령조차 원포인트 개헌을 고려해야 한다고 나섰다. 과연 그런가.

헌법 제7장 선거관리(제114조~116조)는 선관위의 설치와 구성, 조직 등을 규정하고 있다. 선관위가 헌법기관인 것은 맞지만 외부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조항은 어디에도 없다. 선관위가 그동안 주장해 온 외부감사 불가 논리의 근거 자체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선관위가 성역화되고 부패의 온상이 된 것은 정치권의 방임이 가장 큰 원인이다. 선거관리와 정당 지원, 선거운동 위법성 판단의 1차 권한이 선관위에 있으니 굳이 선관위를 자극하거나 통제하는 법을 만들지 않았다. 헌법은 선관위의 설치와 구성 외에 대부분의 내용은 법률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선관위를 해편(解編) 수준으로 개혁하기 위해 굳이 헌법을 개정할 필요가 없다.

이번 시위의 중요성은 참정권 침해에 저항하기 위해 2030 세대가 스스로 일어나 국민적 저항을 주도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특정 정파나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오직 공정과 상식, 정의가 훼손된 것에 분노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그들의 누적된 문제의식에 불을 질렀을 뿐이다. 과거 이태원 참사에 그들이 분노했던 이유는 참사 그 자체보다 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외면한 국가권력 때문이었다. 24차례나 거듭된 윤석열 정부 고위직에 대한 민주당의 탄핵도 그들의 공정과 상식에 부합하지 않았지만,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국민의힘의 무책임과 몰상식에도 분노했기에 행동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12·3 비상계엄이라는 위헌, 불법 사태로 그들의 분노는 한 층 더 쌓였다.

대장동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항소 포기와 대통령 범죄의 공소 취소를 위한 국정조사 및 특검 시도에 그들의 공정과 상식, 정의는 또다시 훼손됐고, 그것이 압승을 예상했던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 같지 않은 승리에 만족할 수밖에 없게 된 이유다. 그리고 마침내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촉발 기제로 정파와 이념을 넘어선 한국 정치의 새 세대가 등장했다.

물론 그들은 아직 완전하지 않다. 실업보험을 '시럽'보험으로 여겨 꿀 빨듯 남용하고 있다. 기업 이익이 커지자 기여에 상관없이 노동자들과 나누자거나 심지어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세대간 혹은 성별 갈등에 예민하게 반응하기도 하고 자신의 노력보다 코인이나 주식, 부동산으로 큰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강하기도 하다. 하긴 그것이 어찌 2030 세대만의 문제겠는가. 어쨌거나 이념에 좌우되어 내 편을 무조건 옹호하는 기득권 정치세력을 부정하고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 결과의 합리성을 중시하는 새 세대가 등장했다는 것 만으로도 이번 지방선거의 역사적 중요성은 매우 크다. 그래서 나는 희망 섞인 기대를 해본다. 저기, 그들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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