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튼 하나로 딸깍, 'AI 월드컵 미녀들' 홍수… "예쁘지만 불편해"
2026.06.21 07:00
"누구나 손쉽게 제작"… 프롬프트 유료 거래도
여성의 성적 대상화 연장선… "이젠 AI도 가동"
"AI 이용자 규제도 필요" "윤리적 사용 고민을"
"누가 월드컵에서 우승할까요?" 영상 속 질문에 이어 등장하는 건 축구 강호로 꼽히는 나라의 대표팀이 아니다. 아르헨티나, 독일, 멕시코, 네덜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 영국, 브라질, 미국, 포르투갈 등 9개국의 젊은 여성 관중이다. 모두 각국 시민들의 인종적 특성이 반영돼 있는데, 놀라울 만큼 아름답다. 이달 11일 외국인으로 추정되는 누리꾼이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공개한 영상 얘기다. 조회수 1억 회를 넘기는 등 온라인에서 큰 화제가 됐다.
하지만 전부 인공지능(AI)으로 빚어낸 'AI 미녀 관중'이다. '진짜 사람 맞나' 싶을 정도로 완벽한 외모,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것처럼 생생한 표정과 동작, 옆자리에 앉은 다른 관중과 대화하거나 응원 구호를 외치는 모습 등은 'AI 생성'이라는 별도 설명이 없었다면 실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채지 못할 정도다. 12일 개막한 2026 북중미 월드컵을 맞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일고 있는 'AI 미녀 관중 범람' 현상을 보여 주는 단적인 사례다.
AI에 명령어 몇 줄… 순식간에 '미녀' 등장
"당신도 만들 수 있어요." SNS에서 활동하는 AI 창작자들은 이렇게 광고한다. 누구든 AI를 이용해 완벽에 가까운 미녀 이미지와 영상을 생성하고, 높은 조회수도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녀 이미지·영상을 만들 수 있는 AI 프롬프트(명령어) 20개를 47달러(약 7만 원)가량에 '묶음 판매'하기도 한다.
기자도 이런 프롬프트를 직접 구매한 뒤 챗GPT와 제미나이로 '월드컵 미녀'를 생성해 봤다. 온갖 수식어를 활용해 미녀를 묘사한 문장들로 구성된 프롬프트를 '복사+붙여넣기'하자, 순식간에 '딱 맞는' 미녀가 탄생한다. 버튼 한 번만 '딸깍' 누르면 끝날 정도로 손쉽다.
프롬프트 몇 줄로 아름다운 여성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현상은 단지 '월드컵 미녀'에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여성 관중이 크게 늘어난 한국 프로야구 리그 중계 화면을 배경으로 생성된 젊은 여성 관중, 이른바 '야구 여신' 영상도 온라인 공간에서 확산하고 있다. 또 패션·뷰티 업계에서도 '무결점 외모'를 갖춘 데다 시공간 구애도 받지 않는 AI 모델이 실제 인간 모델 대신 점점 더 많은 선택을 받는 분위기다. 비판적 반응도 꽤 많지만, '간편함'과 '아름다움' 앞에선 역부족이다.
결국 '저비용 고효율', 곧 경제의 논리다. 임소연 동아대 융합대학 교수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AI 기술이 발전하기 전에는 아름다운 여성 모델을 직접 촬영하거나, 경기장 내 수많은 관중 속에서 젊은 여성을 찾아내는 등 비용과 노력이 소요됐다. 소위 품이 많이 들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제는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고 상품화하는 거대한 흐름에 AI까지 가동되고 있는 셈"이라며 "(마치)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AI 기술을 통해 대량으로 싼값에 여성 이미지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고 짚었다.
조회수 증가+수익 향상 노린 '주목 경제'
이처럼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표현한 AI 이미지·영상이 확산하는 이유는 콘텐츠 조회수가 '수익'과 직결된다는 점에 있다. 월드컵 같은 메가 이벤트와 맞물려,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여성을 동원하는 '주목 경제'(정보 과잉 사회에서 대중의 주의를 끌고 관심을 받는 것을 경제적 성패의 주요 변수로 바라보는 이론)인 셈이다. 사람들이 이미지와 영상을 바라보는 '시간의 합계'는 광고 수익으로 이어진다. 최이숙 동아대 젠더어펙트연구소 특별연구원은 "월드컵으로 맥락만 바뀌었을 뿐, 여성의 외모와 신체가 어떻게 수익과 연결되는지를 보여 주는 현상"이라며 "디지털 경제에서 수익은 거의 모든 윤리를 집어삼키고, 그에 대한 제재는 자율에만 맡겨져 있다"고 꼬집었다.
사실 월드컵이나 프로야구 등 스포츠 이벤트와 관련, '남성은 선수, 여성은 관중'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문제 제기가 최근 일은 아니다. 성차별 관념을 강화할 수 있다는 비판은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예컨대 국제축구연맹(FIFA·피파)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때 방송사 카메라가 관중석의 젊은 여성들만 골라 반복적으로 비추는 행위에 대해 '성차별적'이라고 경고했다. 당시 사진 전문 에이전시인 게티이미지는 '월드컵에서 가장 섹시한 팬'이라는 제목으로 젊은 여성들 사진만 모은 갤러리를 만들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정희준 전 동아대 생활체육학과 교수는 "스포츠저널리즘에서 여성의 성적 대상화가 문제시된 건 20년 넘은 이야기임에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변화의 노력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정 전 교수는 "미국 프로야구(메이저리그)에선 조부모와 같이 관람을 온 어린이들을 (중계 카메라가) 조명하는 등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AI 사용자의 '기본 소양' 교육도 필요"
문제는 생성형 AI의 확산이 부작용을 다시 키우는 환경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AI 사용자들이 자유롭게 프롬프트를 입력해 영상과 이미지를 생성하는 행위를 규제하는 건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뚜렷한 불법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 한, 규제를 가하는 건 '표현의 자유' 가치와 충돌할 수 있는 탓이다. 김명주 인공지능안전연구소장은 "규제나 법률로 (미녀 이미지 제작 등) 이러한 현상을 막기는 어렵다. 초상권 침해나 아동 성착취물 생성 등 명백한 불법의 영역에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김 소장은 'AI 사용자 규제' 역시 일정 부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인공지능기본법은 AI 사업자 중심의 규제를 담고 있는데, AI를 사용하는 이용자 측면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형법,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등 개별법들을 AI 시대에 맞춰 개정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AI 시대를 반영하지 못한 현행법의 빈틈을 채워야 한다는 얘기다.
AI의 '윤리적 사용'을 위한 기본적 소양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혜숙 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 소장은 "AI도 다양성과 포용, 공정성 등을 익힐 수 있는 인간의 동반자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며 "과거 자동차 운전을 위해 운전 기술을 가르쳤던 것처럼, AI 사용자에게도 AI를 올바르게 쓰는 방법과 교양을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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