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등급 경주교, 관악구 반지하 … 집중호우에 무너질라, 잠길라
2026.06.20 00:02
다가온 장마철…현장 안전 총점검
올여름은 이런 걱정이 유난하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 2일 ‘엘니뇨에 대비하라’는 보고서를 통해 ‘최소한 중간, 아니면 강력한’ 엘니뇨가 온다고 예고했다. 엘니뇨는 폭염과 폭우를 부른다. 예상욱 이화여대 기후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는 “강한 엘니뇨는 이상기후의 발생 빈도와 변동성을 크게 높인다”며 “여름철 재난에 각별히 대비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산사태, 교량 붕괴, 싱크홀, 침수·범람 등 우리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크고 작은 위험이 올여름에도 반복될 우려가 크다는 얘기다.
그런 가운데 올해도 어김없이 장마가 찾아왔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부터 기상청은 ‘장마 기간’을 특정하지 않고 있다. 이상기후에 의한 극한 호우가 일상화되면서 장마철이 사실상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국기상학회도 최근 ‘장마’의 개념을 바꿨다. 기존의 ‘정체전선에 의한 장기간의 많은 비’에 ‘저기압성·대류성 강수’ 등 다양한 현상을 포함했다. 이른바 ‘신(新)장마’다. 폭염과 폭우가 뉴노멀이 된 시대. 중앙SUNDAY가 여름철 재난의 현장으로 달려가 봤다. 경남 산청 주민들은 또 산이 쏟아져 내릴까 불안해했고, 버스는 E등급(불량) 판정을 받은 경북 경주시 경주교 위를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반지하에 첫 집 장만 20대 “물막이판 없어 장마 걱정…내년엔 고지대 반지하 목표”
지난 11일 경남 산청군 산청읍 부리 내부마을. 그들은 ‘산사태’라는 명사를 쓰지 않았다. “산이 팍하고 터졌다”(박숙이·70)거나 “저쪽도 봐봐. 산이 억수로 쏟아진 거”(박순병·75)처럼 동사를 썼다. 바로 눈앞에서 벌어진 참사가 잔상으로 굳고서야 동사로 다시 떠오르는 듯했다.
지난해 7월 19일. ‘우우’ 소리를 내던 산청읍 부리의 와룡산(417m)이 ‘쏟아졌다’. 그 전날 산청엔 시간당 100㎜의 폭우가 내렸다. 단성면 진자마을 일대에는 전시 상황에서나 발송되는 위급재난문자가 울리기도 했다. 이때 산청군에선 크고 작은 산사태가 무려 266곳에서 일어났고 14명이 사망했다. 주민 박영순(79)씨는 “50여 년 전에도 산이 내려오더만 내 사는 뒤까지 덮쳤어. 그때 초등학생이랑 20대 처녀도 죽었지, 등교 직전에. 이번에도 20대 처녀랑 아빠가 함께 세상을 떠났지”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해 산청에선 부리와 내리 등 6곳에서 산사태가 났다. 그런데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된 곳은 단성면 방목리 단 한 곳이었다. 어느 곳도 안심할 수 없다는 방증이다. 산림청은 올해 산사태 취약지역을 4000여 곳 늘려 3만8000여 곳을 관리한다는 계획이다. 대응 인력도 지난해 전국 760명에서 9272명으로 대폭 확대한다. 산림청이 제공하는 산사태 위험지도를 보면 두드러진 곳이 있다. 대형산불이 발생한 경북 의성~영덕과 울진-삼척 일대인데, 벌목으로 민둥산이 되다시피한 곳 이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는 “산사태가 난 와룡산도 10여 년 전 산불이 났는데, 당시 벌목한 나무는 뿌리가 문드러지는 시기였고 새로 심은 나무는 뿌리가 토사를 버티고 비를 우산처럼 막아줄 정도까지 자라지 못한 상태였다”고 진단했다. 산불 벌목 뒤 10년이 위기라는 얘기다.
지난해 산청에서도 대형산불이 발생했고 곳곳에서 벌목이 이뤄졌다. 박영순씨는 “내 생에 세 번째로 산이 내려오는 꼴은 못 본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교량
지난해 7월 경남 산청군 집중호우는 산사태와 함께 교량 파손도 일으켰다. 산사태로 한 명이 사망한 병정마을 앞 정부교는 1년 가까이 통행이 막힌 상태다. 주민 김모(59)씨는 “일주일에 한 번은 진주 시내에 가야 하는데 언제까지 망가진 다리를 놔둘 셈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1977년 세운 정부교는 도로와 연결된 부위가 25㎝가량 어긋났고(단차) 균열이 심해 언제라도 주저앉을 모양새였다.
단차는 교량 붕괴의 전조다. 지난달 26일 서울 서소문고가가 무너지기 직전에도 2.9㎝의 단차가 발견돼 긴급 안전진단 중이었다. 근처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던 서동준(55)씨는 “식당에서 100m 떨어졌는데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 같더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지난달 20~21일 내린 80㎜의 많은 비가 서소문고가 사고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국내 교량은 총 3만7915개. 그중 서소문고가처럼 D등급(미흡)은 104개로 결함이 발생해 긴급한 보수·보강이 필요한 상태다. E등급은 13개. 심각한 결함으로 즉각 사용 금지하고 보강·개축해야 하는 상태인데 3곳은 현재도 통행 중이다. 경북 경주시 경주교와 강원 횡성군 춘당교, 경기 이천 앵산교(이달 말 전면 통제 후 공사 예정) 등이다.
경주교는 안전진단에서 교각과 받침·바닥판에 심각한 균열과 손상이 발견됐다. 2009년엔 교량이 20cm가량 내려앉기도 했다. 경주시는 지난 1일 내년 1월부터 2029년 12월까지 경주교 철거 후 새로운 교량을 세운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임씨는 “재가설 계획은 이전에도 나온 것인데 늑장 행정 아닌가. 실제 공사 착수까지 폭염과 폭우를 버텨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싱크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8~2025년 8년간 발생한 싱크홀은 총 1577건. 하루걸러 하나꼴이다. 전임 국토부 장관이 ‘위드 코로나’를 패러디한 ‘위드 싱크홀’이란 표현을 썼을 정도다. 2020년 이후 감소세였던 싱크홀은 지난해 179건으로 다시 급증하며 최근 5년 새 최다를 기록했다. 게다가 집중호우가 쏟아지는 6~8월에 절반가량(763건·48.4%)이 집중됐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어느 하나를 싱크홀의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보다 유효성이 큰 원인을 통계화한 것으로 보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싱크홀은 지하수나 노후 하수관에서 샌 물이 토양으로 침입한 상태에서 지하 공사로 인해 이미 땅속에 만들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하중이나 폭우·폭염이 기폭제처럼 도로를 손상시키고 물렁물렁하게 만들면서 지하의 싱크홀이 순식간에 드러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7월 하순 서울 도심에서 2~3일 간격으로 발생한 지름 2m 안팎의 싱크홀이 대표적이다.
서울시내 하수도(1만740㎞) 중 54.2%는 사용 연수 30년을 넘겨 노후 시설로 분류돼 있다. 아파트라면 재건축 대상이다. 조 교수는 “비가 많이 오면 땅속에 많은 물이 흘러 모래와 자갈을 끌면서 노후화된 하수관의 누수가 만들어놓은 구멍을 더 크게 만들어 싱크홀이 발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 번 싱크홀이 있었던 곳이나 지하철·상하수도가 지나가는 곳은 지속적으로 체크해야 한다”며 “시민들이 땅 꺼짐으로 인한 물 고임 등 전조 현상을 조기에 포착해 신고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싱크홀 지도 공개를 거부한 적이 있다. 당시 “시민 안전보다 집값 때문”이란 비판이 거셌다.
대명초 사거리 인근의 한 주민은 “9호선 만들다가 난 사고인데 집값은 전철역 들어선다고 뛰고 있으니 뭐라고 해야 할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침수
사회 초년생 김경림(26)씨가 지난 3월 마련한 생애 첫 집은 서울 관악구의 다세대주택 반지하다. “집주인이 물막이판을 설치하지 않고 있어요. 그렇다고 지상으로 올라가려면 월세를 2~3배는 더 줘야 하거든요. 걱정을 넘어 불안합니다.”
2022년 8월 8일. 현재 김씨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관악구 신림동. 발달장애인 등 일가족 3명이 반지하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숨졌다. 같은 날 동작구 상도동에서도 반지하가 침수돼 5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동작구엔 1시간 최대 141.5㎜, 하루로는 최대 435㎜의 폭우가 쏟아져 서울 지역 강우량 기록을 갈아치웠다. 물이 스며들지 못하는 콘크리트 재질의 아파트·도로·인도 등 불투수면 증가가 폭우 피해를 키운 것으로 분석됐다.
그런데, 김씨 집주인은 왜 물막이판을 설치하지 않을까.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의 재해 취약 지하층 주택은 18만5518동으로 서울이 10만7266동으로 가장 많다. 서울도 관악구(7729동)·강북구(7100동)·은평구(7063동) 순이다. 서울시는 2023년 물막이판이 필요한 반지하 가구를 2만4842호로 잡았는데 9440호(38%)가 설치하지 않았다. 집주인이 원치 않았다는 이유가 절반이 넘었다. 2023년 12월 반지하 침수 방지 시설을 의무화한 자연재해대책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자연재해위험지구로 지정된 지역 내 신규·대형 건축물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다. 주변의 한 공인중개사는 “물막이판을 설치하면 침수 주택이란 걸 알리는 꼴이 되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침수 사고는 대책을 마련해도 반복된다. 2020년 7월 23일 부산 초량 지하차도를 지나던 차량 6대가 시간당 80㎜의 호우로 순식간에 밀려든 물에 잠겨 3명이 숨졌다. 정부는 차단시설 구축 및 원격 차단 등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3년 뒤 오송 지하차도 참사(14명 사망)를 막지 못했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이젠 이상기후가 상시 기후가 됐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폭우는 일상다반사가 됐다”며 “과거 치수 정책이 비가 오면 물을 한군데 모아놨다 한꺼번에 버리는 것이었다면 앞으론 비가 오면 바로바로 물을 흘려버릴 수 있도록 구조를 바꾸고, 물막이판으로 반지하 거주자들이 대피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올여름은 이곳 반지하에서 버티지만 내년 여름은? “같은 반지하라도 지대가 높은 곳으로 가는 게 1차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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