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시간 전
[통일로 미래로] 책 대신 총 들고 전장으로…6.25 학도병의 이야기
2026.06.20 08:43
[앵커]
교정이 아닌 전장에 서서, 책이 아닌 총을 손에 들었습니다.
6.25 참전 학도병들의 이야기입니다.
그 흔적이 오래된 학적부와 참전 수기 속에 남았는데, 여학생 학적부에서도 입대 기록이 나왔습니다.
경북교육청이 이 기록들을 발굴하고, 학도병을 만나 그 입에서 나온 이야기를 채록했습니다.
앳된 나이에 나라를 지켰던 학도병의 기록들을 정미정 리포터가 찾아봤습니다.
[리포트]
빛바랜 학적부에 적힌 단어, ‘종군’.
학생이 전쟁에 참여해 학도병이 됐음을 말해줍니다.
한창 꿈을 키워야 할 나이에 학교를 떠나 조국을 지켜야 했던 학생들.
그들의 이름과 기억을 마주하는 공간이 경북교육청에 마련됐습니다.
[임종식/경북교육청 교육감 : "나라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우리 아이들의 선택이 참 힘들었을 겁니다. 오늘의 우리가 있게 한 소중한 기억들을 우리 아이들에게 전해주기 위한 것이고 실제 사례를 통해서 나라 사랑 교육을 익힐 수 있도록 이런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교실을 떠나 전장으로 향한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연필 대신 총을 쥐어야 했던 이들, 바로 학도병입니다.
이곳 전시장에는 ‘그들의 시간’이 남아 있는데요.
70여 년의 세월을 넘어 다시 꺼내진 소년들의 이야기에는 어떤 기억이 담겨 있을까요.
한 장의 사진, 짧은 글자 속에서 발견한 학도병들의 기록.
이곳에서 공개한 자료들은 학도병의 존재를 증명하는 귀한 자료가 되고 있는데요.
[정현규/경북교육청 기록연구사 : "이 학생들이 ‘어느 학교에 다녔었다’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고 학적부에 ‘종군’ 그다음에 ‘상이제대’, ‘학병’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이분들이 학생 당시에 전쟁에 참전하셨다는 내용까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학적부는 원래 한 학생의 학교생활을 기록하는 문서인데요.
하지만 여기엔 학교생활과는 어울리지 않는, 아픈 단어가 등장합니다.
[정현규/경북교육청 기록연구사 : "이분 학적부를 보시면 1950년 12월에 휴학을 하고 포병으로 들어간 것을 볼 수 있고 53년에 7월달에 전사를 했다는 내용이 확인됩니다."]
가족과 선생님, 친구들을 뒤로한 채 생사가 오가는 전쟁터로 향했던 학생들의 기록은 보는 이들의 발걸음을 오래도록 붙잡았는데요.
[권진현/경북교육청 주무관 : "참전하면서 어떤 마음이었는지 어떤 경험을 하셨는지 실제 인터뷰나 (자료를) 통해서 이분들의 희생이 얼마나 숭고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참전 수기에는 당시의 상황이 생생하게 적혀있습니다.
교복을 벗고, 군복을 입었던 학도병들은 한겨울 혹독한 추위도 견뎌야 했습니다.
["영하 27.8도까지 내려가는 밤 추위는 노지에서 잠복근무에 임하는 우리 수색대에겐 큰 적이었다."]
경북교육청에선 종이로 보관돼 온 1950년대 학교 기록물들을 스캔하고 분류해 디지털로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문서고 안으로 들어서자, 오랜 세월을 품은 기록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요.
모두 연구사들이 발품을 팔아, 학교와 참전용사, 유가족을 통해 찾아낸 자료입니다.
[정현규/경북교육청 기록연구사 : "고등학교 전체 약 30개의 학교 중에서 약 만 오천 건의 학적부 조사를 마친 상태이고 그중에서 학도병의 흔적을 발견한 기록이 615건 확인되었습니다."]
한자가 섞인 오래된 문서 속에서 학도병과 관련된 내용을 찾아내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는데요.
조사 과정에서는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기록도 발견됐습니다.
여학생의 학적부에서도 참전의 흔적이 확인된 겁니다.
[정현규/경북교육청 기록연구사 : "이 어르신은 김천여자중학교에서 졸업하신 분인데 전쟁 참전으로 인해서 흠석(결석)이 많다, ‘그만큼 자리를 많이 비웠다’라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70여 년 전, 선배들의 이야기는 학생들에게 또 다른 배움이 될 수 있다고 하는데요.
[조현승/경북교육청 장학사 :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학생들이 직접 (전쟁에) 참여했다는 것을 보면서 좀 더 몰입하고 실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기라든지 졸업장, 이런 실제 자료를 직접 보면서 그런 부분들에 있어서 감정 이입할 수 있는 그런 교육자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학생들이 전시를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전쟁과 평화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소중한 교육으로 이어질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도 이어졌습니다.
경북교육청은 그 답을 찾기 위해 실제 학도병으로 참전했던 90대 참전용사 21명의 구술채록 영상을 공개했는데요.
학교에 있어야 했던 학생들은 왜 어떻게 포화 속으로 향했을까요.
학도병들의 증언은 문서에 다 담기지 못한 ‘그날의 기억’을 생생히 전하고 있습니다.
경북교육청이 있는 안동에서 한 시간여를 달려가 구술 채록에 참여한 한 참전용사를 만났습니다.
전쟁이 시작됐을 때, 앳된 학생이었던 우재철 참전용사.
["(나이가 그때 몇 살이셨어요?) 17살이지. (그때 당시 다녔던 학교 이름 기억하세요?) 나지. 내 모교인데, 안계, 지금은 안계고등학교."]
그는 선배들을 따라 학도병에 지원했습니다.
이른 나이에 결혼해 새신랑이자 학생이었던 그는 전장의 한복판에 서야 했습니다.
[우재철/참전용사 : "보직은 학도병으로서, 의용군으로서 현역을 돕는 입장에서 첩보 역할을 하든지 첩보대 역할을 하든지 아니면 실탄도 갖다주고 심부름도 하고 이런 것을 하고."]
그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함께 했던 친구들은 이제 대부분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재철/참전용사 : "학도병이라고 의성군에서는 나 혼자밖에 안 남은 것 같은데 다 죽었어."]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당시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우재철 참전용사.
[우재철/참전용사 : "(다시 옛날의 학생으로 돌아가신다면 다시 학도병 지원하실 거예요?) 전쟁한다면 지원해야지. 지금 현재 평화롭게 지내는 것 같지만 아직도 우리는 전쟁터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야 돼요."]
지금의 평화가 얼마나 어렵게 지켜진 것인지 잊지 말라는 당부이기도 했는데요.
75년 전, 소년들의 시간에는 그들의 희생과 돌아오지 못한 친구들의 이름이 남아 있습니다.
[정현규/경북교육청 기록연구사 : "제일 많이 와닿았던 것은 전사, 사망. 어떻게 보면 그 단어 하나에 실린 무게가 그 한 사람의 인생뿐만 아니라 가족과 주변인의 인생도 많이 바꾸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먹먹해지는 것 같습니다."]
책 대신 총을 들어야 했던 소년들.
분단과 전쟁의 시대를 온몸으로 겪어낸 이들의 기억과 역사는 오늘 우리에게 평화와 자유의 의미를 다시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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