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아무것도 모르는 기성세대
2026.06.20 07:01
2030 우경화 주장은 '독선'
청년은 재정 확대 반대하는데
탈모에 건보 적용한다는 정부
"앞길 막지 말라"는 미래 세대에
나랏빚 부담 넘기지 말아야
유승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이 노래 가사를 기억한다면 최소 40대 중반이다. 1988년 개봉한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의 주제가다. 이 노래를 따라 부르던 아이들이 40~50대가 됐다. 하지만 어른들이 아무것도 모르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20~30대 청년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투표용지 부족 항의 시위에 대한 기성세대와 정치권의 반응이 그렇다.
청년들이 보수화 혹은 우경화했다는 일부의 진단부터 따져보자. 리얼미터가 지난 15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18~29세와 30대, 60대, 70세 이상에서 모두 국민의힘 지지율이 더불어민주당을 앞섰다. 40대와 50대에서만 민주당 지지율이 높게 나왔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지만 이념 성향이 유별난 세대를 굳이 꼽자면 20~30대가 아니라 40~50대다. 6·3 지방선거 결과와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40~50대의 좌경화지 20~30대의 우경화가 아니다.
일베, 펨코 등 ‘극우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젊은이들이 민주화운동을 폄하한다고 혀를 차는 사람도 있다. 이것 또한 우리 편이 하는 혐오는 착한 혐오고, 상대편이 하는 혐오는 나쁜 혐오라는 독선에 지나지 않는다. 40~50대야말로 혐오와 조롱의 원조다. 이 세대가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됐을 때 전국 어디서나 초고속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게 됐다.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이 광장이 아니라 인터넷 게시판과 채팅방에 모여들었다. 모니터 앞에 앉아 우파 정당과 우파 언론에 친일이니 독재니 온갖 안 좋은 말은 다 갖다 붙이며 날밤을 새웠다.
그 시절 그들에게 ‘수구 꼴통’은 우파의 동의어였다. 속된 말이지만 이 표현도 점잖은 축에 속한다. 우파 정당을 지지하는 산업화 세대는 ‘틀딱’(틀니 딱딱)이라고 불렀다. 40~50대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칭할 때 쓰던 표현은 그대로 옮기기조차 민망하다.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어찌 보면 ‘기술적 실수’가 재선거 요구로 비화한 데 대해 성원용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명예교수는 “기름이 흥건하니 불씨 하나에 폭발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평균 70만원이 넘는 서울 원룸 월세, 부모 찬스가 결정하는 자산 격차, 씨가 마른 대기업 공채, 도를 더해만 가는 기업 규제, 이 모든 것이 기름이다. 사방에 뿌려진 기름을 걷어내지 않는 한 누구 말처럼 몽둥이를 들고 탱크를 동원해도 청년들의 불만을 가라앉힐 수 없다.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해 국정조사를 하고 선관위법을 개정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사태가 길어지자 정부와 정치권도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실 그래서 더 걱정이다. 보건복지부는 20~34세 탈모 치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고 했다. 왜 하필 20~34세인지 속이 훤히 보이는데 뭘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런 정책이야말로 청년들이 딱 질색할 정책이다. 한국외국어대 학생 고은강 씨는 6·3 지방선거 직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20대는 남녀 할 것 없이 나랏돈은 펑펑 쓰면 안 된다는 명제에 동의한다”며 “그에 반대하면 멍청하다고 찍힌다”고 말했다. 청년들은 복지 정책을 선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기들이 부담해야 할 세금 고지서, 카드 대금 청구서로 받아들인다. 날로 불어나는 국가채무와 불 보듯 뻔한 미래의 세금·연금 부담이 청년들에게 얼마나 큰 공포로 다가오는지 기성세대는 모른다.
복지, 분배, 부자 증세, 이런 것이 정의롭다고 믿었던 기성세대 입장에선 당혹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인정해야 한다. 40~50대 다수가 옳다고 생각한 가치가 이미 모순과 한계를 드러냈다. 40~50대가 아직도 잘 모르는 걸 20~30대는 벌써 알고 있다. 그러면서 청년들을 가르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오만이고 착각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청년들에게 무엇을 해 줘야 할까. 청년들은 가르침은커녕 도움조차 필요 없다고 말한다. 그저 자기들의 앞길을 막지만 말아 달라고 요구한다. “청년들에게서 빼앗은 것만 돌려주면 된다.” 온라인 지식 커뮤니티 서비스 ‘홀릭스’를 운영하는 1991년생 박태영 대표의 얘기다. 이 와중에도 기성세대는 획일적인 정년 연장과 최저임금 대폭 인상 등을 추진하며 청년들 앞에 놓인 문턱을 높인다.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청년들을 도와주는 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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