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70억 인류의 생존 모델이 되다... 쿠키런, 글로벌 IP 분투기
2026.06.20 06:02
500종의 다양한 쿠키가 인간의 운명 싣고 달려
게임 너머 메시지 ‘내 손을 잡고 달려줘서 고마워’
“너의 인생 이야기는 뭐야? 어떤 장면을 보고 싶어?”
꿈과 문장의 크기가 구성원의 포텐셜 끌어올려
한국 창작자들 다 세헤라자드, 이야기 생존력 높아
콘텐츠 업계는 지금 IP(Intellectual Property) 전쟁 중이다. IP가 있느냐 없느냐에 업의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IP는 단순히 지식 재산권을 넘어선다. 해리포터, 포켓몬, BTS, 톰 크루즈, 아기상어, 쿠키런을 상상해 보라. IP는 독창적 세계관을 가진 장르로 스토리를 변주하며 뻗어나간다.
샤넬과 애플은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한 메가 브랜드지만, IP는 될 수 없다. IP와 팬덤의 관계는 이미지와 라이프스타일을 사고파는 브랜드와 소비자의 관계의 밀도를 넘어선다. 팬덤은 IP가 펼치는 이야기 세상에 자기 인생을 얹기 때문이다. 그래서 IP 세계관에 입성한 시민들은 세대와 성별을 초월해 IP 유니버스에서 연대하고 공명하며 뭉클한 장면을 만들어 간다.
그 IP 산업의 최전선에 게임이 있다. ‘오징어 게임’ ‘K팝 데몬 헌터스’ 등과 함께 2025 유튜브 글로벌 컬처&리포트 트렌드 토픽 TOP10에 오른 대표적 게임 IP가 쿠키런이다. 쿠키런의 스토리가 본격적으로 시야에 들어온 건, 지난봄에 있었던 두 개의 전시 때문이었다.
덕수궁 돈덕전에서 열렸던 국가유산의 날 특별 기념 전시 ‘쿠키런; 사라진 국가 유산을 찾아서’와 전통 공예 장인들과 쿠키런 킹덤이 협업한 전시 ‘위대한 왕국의 유산’. 전시가 열린 덕수궁과 인사동 아라아트센터는 나이와 성별을 초월한 다양한 관객들로 북적였다.
그것은 그냥 작은 쿠키들의 아기자기한 동심의 세계가 아니었다. 전통 질료로 몸을 얻은 게임 캐릭터는 파괴와 허무, 야망과 풍요, 나태와 열정 등 묵직한 게임 세계관을 오가며 문예적 극치감을 자극했다. 대한제국과 한성, 경성, 현대의 서울에 이르기까지 선조들의 용기와 자취가 섬세하게 복원된 꿈의 지도가 거기 있었다.
현실의 역사와 희망의 역사를 아우르는 쿠키들의 ‘낄끼빠빠’, 사라진 국가유산을 복원한 조형의 완성도에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글로벌 IP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동서고금을 울리는 보편적인 세계관, 독창적인 캐릭터, 악마의 디테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2억 5천 명으로 추산되는 한류 팬을 넘어서는 3억 명의 팬덤을 보유한 대한민국 대표 글로벌 IP. 데브시스터즈 쿠키런의 IP최고 책임자 이은지(데브시스터즈 CIPO)를 만나서 그 고유한 ‘성장 서사’를 들어보았다.
이은지는 스물한 살에 콘셉트 아티스트 아르바이트생으로 데브시스터즈에 합류한 뒤, 쿠키런을 탄생시켰고 17년 동안 생사고락을 함께했다. 용맹한 쿠키들이 달리고 넘어지고 마침내 위대한 왕국을 이뤄가는 동안 단 한 번도 지루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어떻게 17년 내내 계속 새롭죠?
“(눈을 빛내며) 원석에 빛을 비춰 보면 계속 다른 빛깔 다른 레이어가 발견되잖아요. 쿠키런의 쿠키들이 제겐 그래요. IP를 키우는 건 자식을 키우는 것과 비슷해요. 말썽을 일으키고 우여곡절을 겪고 아프기도 하고 맞고 들어오기도 해요. 무럭무럭 잘 자라 3억 명의 사랑을 받게 됐어요.”
-거두절미하고 3억 팬덤을 만들어낸 힘이 뭐죠?
“(미소지으며) 이야기요! 모든 게 이야기의 힘이었어요. 인간이 좋은 이야기에 빠져든다는 건 진리예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요.”
인터넷 황금기에 다양한 서브 컬처를 경험한 이은지에게 ‘콘텐츠는 모든 인간이 세상에 보내는 아름다운 생존 편지 같은 것’이었다고 했다. 그 자신, 넘어질 때마다 ‘세상은 살만하다’고 반짝이는 수많은 이야기 덕에 이야기 중독자로 생존할 수 있었다고.
“누군가 ‘당신은 누구입니까?’라고 물으면 저는 단숨에 대답했어요. ‘나는 이야기의 힘을 믿는 사람입니다’. MZ 세대는 자아 탐구와 일의 내용이 하나로 꿰어져 있어요. 내 삶과 커리어에 어떤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가, 그걸로 일의 퀄리티가 결정됐어요.”
모든 생존자들은 이야기에 빚이 있다고 했다.
-당신의 삶과 커리어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나요?
“제가 회사에 입사했던 2009년, 이곳은 15명 규모의 신생 스타트업이었어요. 아이폰이 2007년에 세상에 나왔고, 바다 건너에서는 인류 생활을 바꾼 모바일 혁명으로 난리가 났는데, 이상하게 한국은 조용했어요.
2년도 안 된 작은 게임 회사가, 그때 엄청난 선언을 합니다. ‘앞으로 가장 많은 오디언스가 만나는 곳은 모바일 플랫폼이다, 데브시스터즈는 모바일에서 전 세계인이 플레이하는 게임 세상을 만들겠다…’ 꿈의 크기만큼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스마트폰 개념이 희박하던 시절에 아이폰4가 상륙했고, 모바일은 단숨에 전 세계인을 연결했다. 모바일 게임은 실시간 인터렉티브였다. 닌텐도, 플레이스테이션과 달리 모바일은 2주에서 한 달 단위로 새로운 이야기를 계속 유저들에게 던져줘야 했다.
-세헤라자드처럼?
“세헤라자드처럼! 밤마다 천 개의 이야기를 주지 않으면 목을 내어줘야 하는 운명이죠. 재미있는 이야기를 주지 않으면 죽는다는 감각이 세포 안에 있었어요.”
-쿠키런은 어떤 이야기로 살아남았나요?
“본질은 ‘먹히지 않기 위해 스스로 오븐을 탈출한 쿠키들의 이야기’예요. 생존담, 그 자체죠.”
-대한민국 대표 IP가 된다는 건 어떤 의미입니까?
“쿠키런은 2009년 글로벌 무료 게임 1위에서 시작해서 글로벌 유저가 70%가 넘어요. 게임을 넘어서서 다양한 문화상품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죠. 게임 인구 이상의 이미지로 플랫폼도 무한히 넓어지고 있어요. 스테디셀러 쿠키런 어드벤처, 도시 여행, 한자 탐험 시리즈, 굿즈와 카드 게임… 작년 유튜브 트렌드 리포트에서는 미국 TOP10에 케데헌, 로블록스와 함께 이름을 올렸어요.
뉴욕 코믹콘 오프라인 행사에서도 2만 명이 몰려든 강력한 팬덤 컬처가 됐죠. 그 저력으로 덕수궁 돈덕전에서 대한제국의 사라진 문화유산을 찾는 협업 전시를 하고 공예 장인들과 진지한 콜라보 제품도 만듭니다. 국가유산청과 함께 한국 내 세계문화유산 정리 작업도 마무리 단계에 있어요.”
-세계관은 어디까지 나아갔습니까?
“핵심 세계관은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기 위해 달리는 존재들입니다. 그 점이 국경, 성별, 세대를 초월해서 공감을 불러일으켜요.”
-‘반짝반짝 빛나는’ ‘가볍고 수많은’... 이미지가 떠오르네요.
“(반색하며) 맞아요. 가볍고 수많은, 반짝반짝 빛나는… 70억 인류가 다 쿠키의 모델이에요. 이 로그 라인이 쿠키런의 미래와 수명을 결정지었어요. 저는 중요한 문장이나 스토리는 지금도 직접 써요. 최근에 쿠키런 킹덤 5주년 대서사를 정리하면서 이런 문장이 떠올랐어요.
‘우리는 유한한 존재지만 밤하늘의 별처럼 한 번에 보면서 세상을 느낀다. 서로 다른 공간과 시간 속에서 빛나는 별이 밤하늘을 수놓듯, 우리가 함께하는 이 세상이 반짝임으로 가득하길.’”
-시작은 진저 브레드맨이었다지요?
“맞아요! 21살에 키비주얼을 만들 때였어요. 세계인들이 플레이하는 게임이 목표였으니 전 세계인들이 아는 걸 만들어야 했어요.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이 좋고 익숙하고 부드러운… 그게 쿠키였어요. 생명력을 가지려면 단순해야죠. 그게 진저 브레드맨이었어요.
모바일 게임 수명이 3개월이던 시절이라, 사람들은 다음 신작을 궁금해했어요. 하지만 제 생각은 달랐어요. “신작? 난 이걸로 끝장을 볼 거야.” 그러고는 이 쪼끄만 쿠키를 계속 빛을 비춰봤어요. 마녀의 부엌, 고슴도치 숲처럼 야생은 거대한데 쿠키는 왜 이리 작고 연약할까…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 보니 제가 쿠키의 뒷모습을 그리고 있었어요. 제 몸이 쿠키 속으로 들어가 버린 거예요!
그때 질문이 터졌어요. 진저브레드맨의 본질이 뭘까? 왜 굳이 인간 모양의 쿠키를 만들었을까? 어떤 무생물도 눈 코 입을 그려 넣는 순간, 감정이 새겨요. 인간은 자기를 투영하며 사는 생물이잖아요.
크리스마스 때 주고받는 진저브레드맨, 이 쿠키에 생명 가루를 넣으면 피조물의 메타포가 되겠구나. 이게 인간의 오마주겠구나. 이걸 콘텐츠 베이스로 IP를 키우면 100년은 가겠구나. 그 상상을 하니 심장이 두근거렸어요. 이전의 오디언스는 귀여운 쿠키가 달리는 런게임의 유저였지만, 이게 너와 나의 이야기가 되는 순간…”
-유저에서 팬이 되는군요?
“네. 모든 인류가 생존자로 쿠키와 동일시가 되는 거예요. 우리 모두 갑자기 지구로 던져졌는데 태어나 보니 세상은 너무 거대하고 잔혹하고 무심하죠. 약하고 부서지기 쉽고 유한한 존재지만 무의미에 먹히기는 또 싫어요.
운명이라는 한계에 이대로 먹힐 순 없다… 그러면서 오븐을 박차고 뛰어나온 쿠키, 거기에 인생이 있는 거예요. 쿠키의 서사에서 자기를 발견하는 거죠. 그렇게 시작된 팬덤은 응집력이 커요.”
-보편성이 생기면 그 기세는 걷잡을 수 없어지죠.
“맞아요. 이게 인류의 이야기가 되면서 남녀노소, 국경, 세대, 성별을 초월해요. 일종의 우화로 포지셔닝되면서 모두의 이야기가 되는 거죠. 그래서 글로벌 팬이 70%가 됐고 그중 북미 팬덤이 제일 큽니다.”
-BTS보다 큰가요?
“하하. 그렇진 않겠죠. 하지만 한국산 IP 중 북미에서 이 정도 신드롬은 드물어요. 뽀로로, 아기상어, 티니핑도 있지만 유아용 콘텐츠는 오디언스가 한정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뽀로로의 ‘노는 게 제일 좋아’ 이런 노래를 들으면 정말 철학적 깊이가 대단하다고 느껴요. 쿠키도 귀여운 캐릭터에서 출발했지만, 인간으로 설정하면서 세계관이 확 넓어졌어요.”
-아역 배우가 성인식을 치르듯… 통과제의가 필요했을 텐데요.
“(눈을 빛내며) 흑화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쿠키를 인간으로 설정하고 오븐 위의 마녀를 신으로 설정하면서, 쿠키런은 신과 인간의 이야기로 나아갔어요. 마녀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들처럼 폭력적이고 불완전한 존재예요. 그리고 어느 날 달리던 쿠키 중 하나가 자기 태생에 의문을 품습니다.
‘왜 우리 몸은 달콤할까? 약하고 부서질까?’
금기의 질문을 안고 마녀의 연회, 다과회 광경을 훔쳐봐요. 창조주 마녀들이 쿠키를 먹는 광경을… ‘아! 나는 먹히는 존재였구나!’ 그 순간 각성을 시작합니다. 나는 자아를 갖고 있고 꿈을 꾸는 존재다. 나는 마녀보다 더 강력한 존재가 되겠다.”
-빌런의 탄생이군요. 다크 히어로 같은…
“네. 먹힌다는 개념을 부수는 ‘궁극의 쿠키’를 만들기 위해, 결국 많은 쿠키를 희생시키는 다크 히어로의 탄생이죠.”
-수많은 다크 히어로를 만들어냈던 마블은 메타버스까지 나아갔지만, 현재는 산만하고 올드한 느낌으로 정체됐습니다.
“초대형 세계관을 가진 IP는 신선도 유지가 어려워요. 중요한 건 그 세계를 얼마나 확장하느냐가 아니에요. 얼마나 디테일하게 만들어내느냐죠. 뻔한 세계관처럼 보여도 감정과 의미가 세밀하고 촘촘하면 세계인이 공감해요. ‘케데헌’이 증명했죠. 어쩌면 한국의 이야기꾼들은 다 세헤라자드같아요. 재미없으면 죽는다는 생존 감각이 장착돼 있어요(웃음). 매번 조금씩 비틀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죠. 다양한 플랫폼에 정확히 핏을 맞춰서.”
-글로벌 IP의 핵심은 밝고 희망적인 이야기입니다. BTS도 성장 서사를 밝고 진정성 있게 펼쳐내서 성공했죠. 쿠키런은 어둠과 빛, 선과 악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고 있나요?
“BTS는 기존의 팝스타들처럼 선정적이거나 퇴폐적인 이미지가 전혀 없어요. 스타일리시하게 인류 보편의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사랑과 신뢰를 끌어냈죠. 필터 없이 자기를 드러내고 실수까지도 라이브로 공유하는 모습, 대중들은 이런 진정성 있는 소통에 열광했어요.
‘러브 유어셀프’가 모든 걸 함축하고 있죠. BTS 이후로 이런 모델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쿠키런 사가(거대 서사의 단위)의 대주제를 삶과 생명의 이야기라고 해요. 굳어 있던 달콤한 쿠키에 생명 가루가 뿌려지면서 살아 움직이게 됐잖아요. 그리고 쿠키런 빌런은 자신의 생명에 의문을 품어요. “나는 왜 이런 몸으로 태어났지?” “뭘 위해 살지?” 근원적인 질문을 하면서 악에 물들지만, 정답은 없어요.
왜냐하면 정답을 찾으려고 태어난 게 아니기 때문이죠. 우리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에요. 우리는 옆 사람의 손을 잡기 위해 태어났어요. 어둡고 잔혹한 세계에서 옆 사람에게 “내 손을 잡고 달려줘서 고마워”라고 말하기 위해서 태어난 거예요.”
-옆 사람에게 “내 손을 잡고 달려줘서 고마워”라고 말하기 위해서 태어났다”...
“네. 그 메시지를 게임에 구현하기 위해서 적을 무찌르고 스테이지를 깰 때마다 스토리를 줘요. 결국 쿠키런은 용감한 쿠키가 기상천외한 친구들을 만나고 떠나는 모험 이야기예요.”
-왜 문득 ‘은하철도 999’가 떠오를까요?
“(손뼉을 치며)오호! 제가 ‘은하철도 999’의 원형 소설인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꿈’을 정말 좋아해요. 애니메이션에서 철이는 맨몸으로 기차에 몸을 싣고 오직 엄마를 만날 거라는 희망으로 우주를 헤매요. 만날지 못 만날지도 모르지만, 희망을 품고 우주를 여행하잖아요. 저는 그게 ‘고도를 기다리며’ 같다고 생각했어요.”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몰라도 희망을 품은 이야기를 코믹콘, 영상, 글… 다양한 플랫폼으로 형태를 바꿔서 전달하고 싶다고 했다.
-게임을 넘어서…?
“네. 게임을 넘어서. 우리의 본질은 이야기니까요. 이야기로 구석진 곳, 아프리카 오지까지 최대한 연결되고 싶어요. AI시대에 기술이나 포맷 싸움은 오래가지 못해요. 얼마나 고유한가, 얼마나 포용적인가만 중요할 뿐.”
-세계는 지금 시간 파이를 나눠 먹기 위한 전쟁이 한창이지요. 경쟁자는 누군가요?
“가장 치열한 경쟁자는 숏폼이에요. 게임은 플레이를 하고 이야기를 만나는 행위라 롱폼에 가까워요. 짧고 강한 도파민으로 시선을 빼앗는 숏폼과 싸워 어떻게 시간을 점유할까, 고민이 많습니다. 숏폼은 중독성이 심각해요. 일단 저희는 일방향이 아니라 인지 향상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설계하고 있어요. 공간 지각력, 판단력 등이 두루 필요한 철학적 플랫폼으로.
숏폼처럼 재미를 주는 롱폼이랄까요. 사실 미들 섹션의 애매한 콘텐츠는 살아남기 어려워요. 빠르게 도파민을 제공하는 쉬운 콘텐츠나 아니면 정말 좋은 이야기로 다른 세계로 데려다주는 에픽한 경험…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나와 바깥세상에서 찾고 싶은 것도 그런 유니크하고 웅장한 경험들이죠.”
-쿠키런 킹덤을 개발할 때, 초대형 도화지를 바닥에 펼쳐서 대륙부터 그리기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유니크하고 웅장한 경험 세계는 어떻게 창조됩니까?
“시작은 ‘예쁜 쿠키 성을 그려달라’는 요청이었어요. 그런데 디자이너가 거절했어요. ‘그냥 예쁜 쿠키성은 그릴 수 없다’고. 왜? 성은 인류 문명의 꽃이라 깃발, 벽돌, 문장 하나 허투루 그릴 수 없답니다. 가문의 문장도 역사와 맥락이 쌓인 것이니, 마냥 예쁜 건 의미가 없었어요. 이 성의 주인이 누구고 어떤 주민이 사는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스토리가 필요했어요.
그 길로 오피스디포에 가서 전지와 색연필을 사고 회의실을 한 달간 부킹했어요. 아티스트와 스토리작가와 머리를 맞대고 선언했죠. “우리는 쿠키 세계의 나관중(‘삼국지’의 저자)이고 헤로도토스(그리스의 역사가)고, 김정호(조선의 지도 제작자)다. 이제부터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 보자! 일명 세계관 바이블 프로젝트였어요.”
-창조주의 선언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하하. 누군가가 전지에 빨간 선을 하나 그었어요. “이걸 적도라고 합시다!” “위는 북반구 아래는 남반구!” 그게 빛이 됐어요. 적도를 기준으로 지구의 기후로 문화, 식생을 나눠 가상 세계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아열대, 사막 기후, 온대, 툰드라, 빙하 지대… 솟아오른 산을 빵칼로 자르면 대륙의 층이 보여요. 초코 시트 층, 생크림 층, 시럽 층.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산맥은 자이언트 아이싱 산맥으로, 적도의 아마존은 그린 샐러드 숲으로, 강은 드레싱 강으로, 젤리 꽃, 사탕 나무로 사랑스럽게 디저트 식생을 채워갔어요. 회의실 구석에서 자고 일어나면 다들 눈곱도 안 떼고 붙어서 지도를 그렸어요. 미치도록 신나게 일했어요. 정말 창조주가 된 것처럼… 창작의 열기와 고양감이 대단했어요.”
-쿠키런 킹덤이라는 가상 세계를 창조했던 노하우가 덕수궁 프로젝트로 이어졌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덕수궁 전시회에서 ‘한성, 경성, 서울’이 같이 있는 상상의 지도에 감동했습니다. 오늘의 꿈이 내일의 꿈으로 이어지는 너무나 사실적이고 낙천적인 상상화였습니다.
“실제로 파괴된 돈의문도 복원해서 넣었고 사대문 사소문도 다 살려냈어요. 고종이 처음 세운 협률사라는 연극 무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려고 공업인들을 키웠던 공업전습소(현재 방송통신대학)도 지도에 다 있어요.
광화문도 육조거리로 꾸미는 등 도성 안은 옛 한성의 모습을 살리고 강남이나 마포는 현대의 서울을 재현했죠. 롯데월드타워, 한강 유람선, 한강 라면도 깨알같이 다 그려 넣었어요(웃음).”
국가유산청이 덕수궁 돈덕전에서 의미 있는 전시를 하자고 했을 때, 3시간 동안 궁의 마당을 거닐면서 그 정서와 심상을 떠올렸다고 했다.
-쿠키런 아티스트들이 서울의 상상화를 완성하는 동안, 공예 장인들은 쿠키런 캐릭터를 재해석해서 내놓았더군요. 혼종과 근본이 교차하는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나전칠기 장인, 자수장인, 화각장인 등 10명의 전통공예 장인 분들과 함께했어요. 각 장인 분이 1년 동안 캐릭터 하나를 가지고 전통공예로 재해석하고 미디어 아트까지 연결했어요. 다들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저는 전통문화야말로 슈퍼 IP라고 생각해요. 그냥 사라져가는 옛것이 아니에요. 당대에 가장 핫했던 콘텐츠 중에 엄선된 것들이죠.
전통문화가 100년의 시간 동안 살아남은 콘텐츠라면, 쿠키런과 같은 라인의 타임리스 스토리일 수 있겠다… 그렇게 쿠키런은 과거의 유산을 빌리고, 전통문화는 쿠키런의 오디언스를 빌리는 아름다운 교환,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겠구나… 이게 우리의 삶이로구나…”
-그런 장면이 쌓이면 클래스가 달라지죠.
“(미소 지으며) 그러길 바랐어요. 요즘 한류가 정말 대세잖아요. 드라마, 영화, 음악이 전 세계인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지만 국경, 세대, 성별을 아우르는 캐릭터 IP는 없어요. 그런데 미키마우스처럼 캐릭터가 있으면 다양한 산업과 문화를 이어줄 수 있어요. 캐릭터가 문화의 앰배서더 역할을 해요.
그래서 꿈을 꿨어요. 쿠키런이 100년을 이어가면 한국은 IP 유산 보유국이 되는 거라고.”
국가유산청, 장인들과의 협업이 그 시작이라고 했다.
-철학과 메시지를 만들기 위해 따로 공부를 하나요?
“이야기의 길에 답을 찾고자 할 때 서브컬처, 미디어 팝 그리고 고전문학을 팝니다.”
-고전문학을?
“네. 카프카의 소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허클베리 핀, 맥베스, 햄릿, 설국, 라쇼몽… 문학 작품을 읽으면 알게 돼요. 인간은 다 똑같구나! 다른 환경, 이념 속에 놓여 있어도 인간의 욕구, 희망은 세대를 건너 똑같구나. 그걸 발견하는 희열이 있어요.
몇백만 년 떨어진 별빛을 제가 지금 보는 것처럼 단번에 시대를 건너 과거 사람들과 연결되는 그런 흥분감이 좋았어요. 특별히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정말 좋아해요. ”
-‘고도를 기다리며’는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기다리다 끝나죠. 짜임새 있는 이야기라기 보다는 부조리극인데요.
“그 점이 좋았어요. 해답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봤어요, 저는. 구원도 없고, 의미 부여도 해주지 않고, 영문도 모른 채 살아갈 수 있다… 아름다운 완결이 아니어도 된다는 그 끝이 역설적으로 저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느껴졌어요. 기승전결이 없어도 괜찮다, ‘온고잉’ 그 자체, 그 건조함이, 이야기가 없어도 괜찮다는 이야기가 제게 큰 위로를 줬달까요.”
-포용력의 사이즈가 크다는 게 게임 스토리로서 장점인가요?
“숫자로 증명된다고 생각해요. 누적 이용자 3억 명, 누적 매출 10억 달러. 메가 히트 대형 프랜차이즈. 최상위권에 배틀그라운드가 있고 내수 시장에는 메이플 스토리가 있지만, 게임 태생 IP로 쿠키런은 드물게 영유아부터 청소년, 50대까지. 엄마, 아빠, 아기, 청소년, 대학생까지 다 좋아해요.
핫한 팬덤 문화를 가질 수 있었던 건 이야기의 포용력이 크기 때문이죠. 남녀 비율도 기적의 분할이라는 50대50이에요.”
-포켓몬은 어떤가요?
“포켓몬도 무한 확장이 가능한 구조예요. 포켓몬은 올해로 30주년이 됐는데 캐릭터가 1,200종이에요. 쿠키런은 17주년에 500종이니, 포켓몬이 쿠키런의 큰 형님이죠. 포켓몬도 동물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생물학적으로 지속가능한 IP예요.”
-특별히 더 애정을 느끼는 캐릭터가 있을까요?
“첫 번째는 용감한 쿠키요. 저를 투영한 캐릭터예요. 용기를 기반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페르소나예요. 두 번째 세인트릴리 쿠키. 이 친구가 빌런입니다. 마녀들의 다과회에서 ‘이렇게 먹힐 순 없다’고 흑화하는 캐릭터죠.
세 번째는 바다 요정, 네 번째는 바람 궁수. 둘 다 제가 콘셉트 아티스트 시절에 그려서 애정이 남달라요. 바람 궁수는 바람을 다루는 정령인데, 덕수궁 프로젝트에서 대화재로 덕수궁이 전소되었을 때 바람 부채의 힘으로 불을 끄는 ‘대체 역사’의 주인공이에요. 부채 장인과 콜라보 작업도 했고요. 다섯 번째는 좀비맛쿠키. 쿠키런의 소울 중 하나를 담당하는 캐릭터예요. 뼈도 드러나고 뇌수도 흘러나와요.”
-이즈음에서 리더와 기업문화, 동료에 대해서 얘기해 볼까요? 스토리 세계의 리더는 전통적인 리더와 어떻게 다른가요?
“제가 생각하는 리더는 몰입할 수 있는 아름다운 문장을 찾아서 팀원을 설득하는 사람입니다. 제 나이 24살, 쿠키런 카카오를 만들던 시절이었어요. 10명 정도 되는 작은 팀이었고 실패할 확률이 더 높았기에 월급도 복지도 형편없었어요. 컨테이너 옥상에 텐트를 치고 전기밥통에 밥해 먹던 청년들의 머릿속엔 무엇이 있었을까요?
‘우리가 정말 특별한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 자기만의 인생 이야기를 쓰고 있다는 감각이었어요. 이야기는 몰입을 만들고, 몰입하면 보고 싶은 장면들이 떠올라요. 그때는 10명이었지만, 지금은 8백 명 정도가 그 장면을 상상해요.
20대에 제가 배운 건 문장과 꿈의 사이즈가 중요하다는 사실이었어요. 2009년 쿠키런 카카오 때는 ‘전 세계인이 플레이하는 모바일 게임을 만들자’는 허황돼 보이는 문장이 우리를 하나로 묶었어요. 지금은 ‘100년 가는 IP 유산을 만들자’예요. 불가능해 보이지만 멋있는 문장을 설득력 있게 뽑아내면, 그 문장으로 다 같이 움직일 수 있어요. 강한 이야기가 조직력을 만들어냅니다.”
-유능한 동료들은 어떻게 모입니까?
“저는 면접 과정에서 질문해요. 당신의 인생을 바꾼 이야기가 있나요? 게임, 애니, 만화, 소설 불문하고 당신의 인생을 바꾼 콘텐츠를 들려주세요. 즉답하는 사람도 당황하는 사람도 있어요. 자기를 구원한 이야기를 설파하는 얼굴은 아름다워요. 저는 계속 묻죠. 또요? 또요? 장르는 달라도 대체로 희망적이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주는 이야기들이었어요.”
-데브시스터즈는 어떤 회사인가요?
“삶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고리타분할 정도로 계속하는 사람들이 모여 집단 창작을 하는 회사. 한 명 한 명이 천 개의 이야기를 하는 세헤라자드가 되는 회사.”
-70억 인류를 대신해서…
“네. 게임이라는 플랫폼은 민주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한 사람이 17년을 끌고 갔으면 자기 복제가 되지만 다 같이 만들면 희망이 있어요. 개발자 PM 스토리 사운드 텍스트 쓰는 팀원들, 한 명 한 명의 경험과 인생, 구원 서사가 다 녹아들어 가요. 그러려면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문화가 중요합니다.
일례로 쿠키톤이라는 행사는 70명 아티스트가 다 모여서 5일 정도 업무를 중단하고 쿠키 창작을 하는 마라톤이에요. 여기서 보통 200개 정도의 캐릭터가 나와요. 어떤 특징을 가진 친구인지 배경, 소망, 결핍, 양보할 수 없는 것들을 참가자들이 발표하고, 마치 프로듀스101처럼 오디션을 거쳐 10% 정도를 뽑아요. 매력적인 이야기와 감정을 가진 친구들이 살아남죠.”
-큰 위기를 만났을 때는 어떤 방식으로 한계 지점을 돌파했나요?
“2020년은 쿠키런이 국민 런게임으로 크게 성공한 후에 새 활로를 찾지 못하던 시점이었어요. 구성원은 늘었는데 포텐셜은 떨어졌어요. 여기까지가 끝인가? 여기까지가 수명인가? 30년 더 갈 수 있는 기초체력을 만들 수는 없나? 구성원들과 ‘백투더코어’ 해야한다는 결의로 모였어요. 그때 했던 질문이 “너는 무슨 장면을 보고 싶어?”였어요.
누군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쿠키들이 다 모여서 농사짓고 건물도 세우고 더불어 살아가는 장면을 보고 싶어요.” 일방향으로 각개전투로 뛰는 런게임이 아니라… 더불어 살다가 터전을 벗어나 다양한 적과 만나고 새로운 모험을 한 후 다시 돌아오는 그런 쿠키!
장르로만 보면 ‘마을꾸미기’와 ‘전투 게임’이 섞여 있는 형태인데, 꾸미기는 여성이 좋아하는 장르고 전투는 남성 장르예요. 게임은 너무 많은 자본과 시간이 투여되는 비즈니스라 타깃이 분명하지 않으면 다 잃을 수도 있어요. 당연히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설계부터 5년의 청춘을 송두리째 갈아 넣었으니, 저도 왜 불안하지 않았겠어요?”
-어떻게 불안을 다스렸나요?
“본질을 들여다봤어요. ‘남녀, 나이 다 떠나서 보금자리를 만들고 자원을 채굴하고 그걸 바탕으로 밖으로 나가 정벌하고 모험하고 다시 돌아오는 행위는 인류 보편의 본능이다’... 그렇게 구성원을 설득했고 2021년 1월에 쿠키런 킹덤 게임을 오픈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서버가 다운되는 일도 벌어졌다. 코로나 시기였고 다들 집에 고립되어서 게임으로라도 연결되고 싶어 했다. 유사 장르인 닌텐도의 ‘동물의 숲’도 대박을 터트렸다.
“내 마을을 가꾸고 친구들이 세운 마을도 들여다보고 싶어 했어요. 서버 불안정으로 접속이 안 되면 ‘문 열어. 내 쿠키가, 내 인생이 거기 있단 말이야’라고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앞으로 ‘K팝 데몬 헌터스’처럼 극영화도 가능한가요?
“물론이죠! ‘다크카카오 왕국’을 조선으로 설정하고 전사들의 고독한 나라로 설계하고 있어요. 팬들이 지금 장편 애니메이션을 엄청 기다립니다. 일단 지금은 다른 작품 캐릭터 IP들과 콜라보 작업을 해서 트렌드 신 안에 계속 노출되고 있어요. 케데헌 캐릭터들, ‘위키드’ ‘오즈의 마법사’ 등 디즈니 전체 IP, BTS의 RM쿠키, 진쿠키 다 나와 있답니다.”
-끝없는 가지치기로군요!
“뉴미디어의 유저들은 고인 이야기엔 관심이 없어요. 다음 이야기, 그다음 이야기로 계속 여정을 따라가죠. ‘흑백요리사’를 보고 ‘안성재TV’로 넘어가듯이 이야기들은 외따로 떨어져 있지 않아요. 완결되지 않고 계속 살아있는 서사로 확장해야 해요. 다행히 쿠키런 IP는 몸이 부드럽고 귀여워서 다른 캐릭터로 변주가 쉬워요. 다들 호의적이라 다양한 세상 이야기에 스며들고 있어요.”
-궁극적으로 어떤 장면을 보고 싶은가요?
“저희 캐치프레이즈가 세상을 즐겁게, 더 넓은 곳에서, 더 많은 사람에게, 오랜 시간 동안’이에요. 같은 세상이라도, 이야기를 들으면 더 살만한 곳이라고 느끼는 그런 세상을 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최전선에서 한류 콘텐츠를 만들며 고군분투 중인 한국의 플레이어들에게 조언을 부탁합니다.
“한국의 창작자들은 정말 특별합니다. ‘내가 느낀 아름다움을 당신에게 전하고 싶다’는 순수한 열망이 전 세계 톱이에요. 그래서 한류 콘텐츠의 힘은 K 스피릿, 그 자체예요. 한국인은 타인의 삶에 정말 관심이 많아요. 가족, 공동체에 대한 간섭, 참견, 공감, 몰입이 엄청나서 세계인들이 놀랄만한 장면을 많이 만들어냈어요. 광장 문화에서 독특한 눈치문화까지. 세계인들이 놀라는 지점은 그런 ‘정서적 밀도’예요.
K콘텐츠의 바탕에는 그런 기름진 토양이 있어요. 그래서 당신이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국경을 넘어서 통할 거라는 걸 믿어도 됩니다. 아이디어나 기술만으론 안 돼요. ‘지금 세상에 왜 내가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이유를 먼저 찾아내세요. 고유의 관점으로 나를 들여다보고, 자아 형성의 뿌리에서 나온 이야기를 밀고 가세요. 당신의 훌륭한 콘텐츠와 IP를 기다리겠습니다. 서로를 구원할 이야기를 갖고 미래에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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