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골 내줬지만 두 골 막은 김승규, 다시 왕 될 수 있다”
2026.06.20 01:03
안정환의 테킬라 샷
멕시코는 월드컵 본선에서 13경기 연속 전반 무실점 기록을 이어갔다. 전반이 끝난 뒤 멕시코 팬들이 자국 선수들에게 야유를 퍼부었는데, 한국이 그만큼 잘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첫 경기 상대 체코와 달리 멕시코는 볼 접근 속도가 빨랐다. 우리는 측면에서 흔들렸다. 활동량이 좋은 왼쪽 풀백 헤수스 가야르도와 오른쪽 윙어 로베르토 알바르도를 제어하지 못했다. 체코전에서 맹활약했던 미드필더 황인범도 오늘은 잘 안 보였다.
하비에르 아기레 멕시코 감독의 전술은 영리했다. 마요르카(스페인)에서 감독과 제자로 인연을 맺어 이강인을 잘 아는 그는 에리크 리라와 태클이 좋은 루이스 로모를 전담마크 붙였다. 이강인은 주된 활동 무대로 삼아야 할 파이널 서드(상대 골문 근처 지역)를 벗어나 내려와서 공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후반 5분에 공중 볼을 잡으려던 골키퍼 김승규가 수비수 이기혁 위로 떨어지며 공을 놓쳤고, 로모에게 실점을 허용했는데, 콜 미스인지 자리를 잘못 잡았는지를 떠나 누구 한 사람의 실수가 아니라 팀 전체의 실수다. 화산 분화구를 모티브로 지은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은 경기 내내 4만 여 멕시코 팬들의 함성으로 폭발할 듯했다. 소음은 최고 149(dB)까지 치솟았는데, 근거리의 총 소리나 군용기 이륙 소음과 맞먹는 수준이다.
김승규는 비록 한 골을 내줬지만 두 골을 막았다는 걸 기억해주면 좋겠다. 하루아침에 ‘왕’이 됐다가도 다음 날 ‘거지’가 될 수 있는 게 축구다. 다음 경기 때 다시 왕이 되면 된다. 나도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해 이민 가야 되나 고민했지만 이후에 역전 골을 넣지 않았나.
한국 축구는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에게 기대를 걸지만 체코전 승리는 황인범, 오현규 같은 다른 선수들이 골을 넣어줘 가능했다. 2002년 월드컵 때도 팀이 골고루 살아나 (4강이라는) 성적이 난 거다. 흔히 사람들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를 비교한다. 메시 개인이 살아나는 건 팀이 잘 받쳐주기 때문이다. 반면 호날두는 홀로 겉도는 느낌이 있다.
한국축구를 짊어진 부담감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매일 악몽을 꾸는 기분”이라 답하고 싶다. 5000만 국민이 모두 지켜보며 기대를 걸기 때문에 매일이 불안하다. 멘털을 잡기 힘들다. 초반 두 경기에선 득점이 없었지만, 이번 대회에서 손흥민이 나와 (박)지성이 보유한 한국인 월드컵 최다골(3골) 기록을 넘어줄 거라고 믿는다. 내 기록은 전혀 중요치 않다.
홍명보 감독과 아기레 감독의 전략 싸움은 50대50 호각세였다고 본다. 후반에 윙백 엄지성을 넣고, 스트라이커 조규성을 추가 투입한 판단은 좋았다. 경기 내용만 놓고 보면 승점 1점씩 가져가는 게 공평한 결과일지 모른다. 축구는 늘 이렇다. 운도 따라야 한다.
김민재의 말처럼 이제 앞을 봐야 한다. 남아공은 멕시코와의 개막전에선 그저 경험을 쌓으러 온 팀처럼 보였는데, 체코전에선 달랐다. 투박했지만, 힘과 스피드가 돋보였다.
체코전 승리가 테킬라처럼 짜릿했다면, 멕시코전 패배는 첫 승의 취기에 다소 일찍 휩싸였던 게 아닐까. 남은 일주일 동안 불씨를 다시 뜨겁게 살려내야 한다. 4년 전 카타르 월드컵 2차전이 끝났을 때보다 긍정적이지 않나. 비기거나 이기면 32강 진출이다. 우리는 다시 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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