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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선택 [헤럴드 단편 : 오늘에 대한 우리 이야기]

2026.06.19 11:24

젊은 작가들과의 동행 - 김의경
일러스트=김효민·챗GPT


혜윤은 집 밖으로 나서자마자 달렸다. 무릎 수술을 한 지 두 달 된 엄마를 세워둘 순 없었다. 혜윤은 새희망금고 앞에서 숨을 고르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지금 어디야? 나는 은행 앞.”

“벌써 왔지. 어서 안으로 들어와.”

은행에 온 것이 대체 얼마 만인지. 모바일뱅킹으로 은행 업무를 보고 신용카드로 물건을 사기 때문에 은행에 올 일이 드물었다.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가자 다섯 개의 둥근 탁자에 각기 서너 명의 노인이 둘러앉아 있었다. 건너편에 앉은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던 엄마가 혜윤에게 손을 흔들었고, 혜윤은 엄마에게 다가가 옆자리에 앉았다. 엄마 옆에는 지팡이가 세워져 있었다. 건너편에 앉은 할머니도 무릎 수술을 한 것 같았다. 엄마에게 여섯 달이 지나면 편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면서 걷기 연습을 하라고 조언했다.

엄마의 순서가 되자 엄마는 끄응 소리를 내며 일어나더니 절룩이며 창구로 다가갔다. 혜윤도 엄마를 따라갔다. 은행원이 엄마 뒤에 선 혜윤에게 물었다.

“따님이세요?”

그렇다고 하자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머니 청약통장하고 적금 해지하시는 거 맞죠?”

“네. 맞아요. 최근에 아파트에 들어가서 청약통장 쓸 일도 없어요.”

엄마는 천만원이 든 청약통장과 천만원을 모아둔 적금통장을 해지한다고 했다. 혜윤은 은행원 보란 듯 엄마를 보며 말했다.

“정말 후회 안 하겠어?”

“그럼.”

엄마가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은행원에게 건네며 말했다.

“우리 딸이 주식으로 돈 불려준대요. 이 계좌로 보내주세요.”

보이스피싱이 아님을 확인한 은행원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스쳤다.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혜윤에게 말했다.

“요즘 적금을 해지하는 어르신들이 많으세요.”

엄마는 은행원의 요구대로 전자 패드에 점선으로 떠오른 글자를 따라 읽으며 글씨를 썼다.

“나는 나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진다.”

왠지 은행원의 얼굴에서 불안감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것 같았다. 곧이어 혜윤의 핸드폰에 2000만 원이 입금되었다는 문자가 도착했다. 엄마는 은행원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왼손에 든 지팡이로 바닥을 짚고 오른손으로 혜윤의 팔을 잡아 기대며 말했다.

“너 안 바쁘지? 내가 봐둔 카페 있는데 가자. 엄마가 쏠게.”

카페? 엄마가 카페에 가자고 한 것은 처음이었다. 엄마가 임대아파트에 들어가기 전에 혜윤과 엄마는 한동네에 살았다. 손에 커피를 들고 가다가 엄마와 마주치면 5000원이나 하는 커피를 사 먹으면서 언제 돈을 모으냐는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엄마가 데려간 곳은 클래식이 흘러나오는 작은 카페였다. 벽에는 잔잔한 일상을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었는데 엄마가 살아온 모습과 상반된 풍경이어서 새삼 엄마의 고된 세월이 떠올랐다. 엄마의 인생은 그림 한 점 올려다볼 시간 없이 빠르게 흘러왔다.

“여기 친구들하고 몇 번 왔어. 난 여기 오면 마음이 편해져. 이제 퇴사했으니 그림도 배우고 이런 데도 오고 그래야겠어. 주식이 오를 테니 그래도 되겠지?”

희망에 찬 엄마의 얼굴을 보니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다. 사실 혜윤도 ‘주린이’였다. 친구들이 모두 샀다는 S전자 주식을 하나 사두었을 뿐이다. 엄마가 주식 이야기를 꺼낸 건 석 달 전으로 퇴사하기 전이었다. 같은 아파트에서 일하는 경비아저씨가 여윳돈이 있으면 적금에 넣어두지 말고 주식을 사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런 소리를 어디서 들었냐는 엄마의 물음에 그는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황 여사, 요즘 어딜 가든 주식 이야기를 하는데 어떻게 모르겠어? 아파트 주민들도 지하주차장, 산책로에서 주식 이야기를 하던데. 이런 고급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하는 소린데 틀린 말은 아니겠지. 아침에 엘리베이터에서 중학생들을 만났는데 심지어 그애들도 주식 이야기를 하더라고. 우리가 힘들게 일하는 동안 모두 앉아서 돈을 벌고 있어.”

엄마도 실내골프장 청소를 하면서 얻어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엄마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할머니가 주식으로 천만원 수익을 냈다고 말했고, 고등학교 동창도 전화를 걸어서 ETF로 돈을 벌었다고 자랑했다. 경비아저씨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리고 탑층에 사는 안 교수님 알지? 그분도 주식을 사라고 했어. 아침마다 벤치에 앉아서 핸드폰을 들여다보시길래 뭐를 그렇게 보시냐고 물었지. 그랬더니 아저씨도 지금 주식을 좀 사두고 노년에는 좀 편하게 지내라고 하더라고.”

엄마는 그 순간 적금과 청약통장을 해지하기로 마음먹었다. 엄마는 안 교수님 말이라면 믿을 수 있었다. 탑층 테라스하우스에 사는 안 교수는 가끔 방송에도 나오는 존경받는 학자였다. 단지 내 산책로에서 종종 반려견과 산책 나온 그와 마주쳤는데 그는 항상 반려견의 똥을 말끔히 치웠고, 엄마에게 “수고하시네요.”라는 감사의 말도 건넸다.

엄마는 또다시 끄응 소리를 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말년에는 돈 걱정 안 하고 싶어. 네 아빠는 평생 경마를 하고 로또를 긁었지만 돈만 날리고 생활비도 제대로 주지 않았어. 자식들도 다 자기 사느라 바쁘니 어쩌겠어. 투자라도 해야지.”

혜윤은 흠칫 놀랐다. ‘투자’라는 단어가 엄마의 입에서 흘러나오다니. 어쨌든 아빠의 경마와 로또보다는 엄마의 주식이 나은 선택인 것 같았으므로 혜윤은 말없이 웃었다.

카페에서 나온 혜윤이 택시를 부르며 말했다.

“이건 분명 엄마의 선택이야. 나중에 다른 말 하기 없기야.”

“그래. 내 선택이야. 아까도 썼잖아. 나는 내 선택에 책임을 진다.”

새희망금고에서 엄마에게 그런 글자를 쓰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앞에 멈춰 선 택시 문을 열며 타라고 하자 엄마는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멀지도 않은데 무슨 택시를 부르고 그래. 돈 아껴야지.”

혜윤은 엄마의 손을 꼭 쥐며 말했다.

“황 여사님, 주식이 팍팍 오를 거니까 오늘은 타고 가세요.”

혜윤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주식 카페에 접속해 글을 올렸다. 가입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최근에는 들어가본 적이 없는 카페였다.

-어머니가 청소해서 모은 돈 2000만원. 어떻게 하면 불릴 수 있을까요?

이런 제목으로 솔직하게 사연을 올렸다. 오래전, 사업이 망해서 집을 판 이후로 힘들게 살아온 부모님이 최근에 임대아파트에 들어가셨는데 노후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고, 앞으로 10년은 더 사실 텐데 노후자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막막하다면서 선배님들의 고견을 듣고 싶다고 직접적으로 도움을 청했다. 쓰고 나서 읽어보니 너무 구구절절한 것 같아서 글을 지우려 했지만 벌써 누군가 댓글을 달았다.

-부동산은 실패하셨지만 주식은 누구나 쉽게 살 수 있어요. 잘 생각하셨어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반나절 만에 수십 개의 댓글이 달렸다. 반도체, 방산, 조선, 원자력, 로봇…… 추천 종목은 제각각이었지만 모두 확신에 차 있었다. 20년 차 증권맨이라는 사람은 장문의 투자 조언과 투자 비중을 정리한 포트폴리오를 이메일로 보내왔다. 혜윤은 그중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종목들을 골라 조금씩 담기 시작했다.

주식을 산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10퍼센트가 올랐다. 엄마는 전적으로 혜윤에게 맡긴다는 기존의 약속과 다르게 자주 전화를 걸어 참견했다.

“얼마나 올랐니?”

“지금 플러스 93만 원. 어제는 220만 원이었는데.”

이튿날에도 엄마는 전화를 걸어왔다.

“주식 떨어졌다면서?”

“지금은 마이너스 57만 원이야. 엄마, 주식은 장기투자야. 5년 뒤에는 올라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마.”

다시 주식이 오르자 엄마는 다급한 목소리로 재촉했다.

“빨리 지금이라도 S전자를 열 개 더 사!”

혜윤은 어쩔 수 없이 다섯 개 더 담았다. 하지만 이튿날 주식은 급락했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전화벨이 울렸다. 혜윤은 수신 거절을 하려다가 전화를 받았다.

“얼마나 떨어졌니?”

“400만 원.”

엄마는 말이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가쁜 숨소리만 들려왔다. 곧이어 “아이고 내 다리.” 하는 소리와 함께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괜찮아?”

엄마는 괜찮다고 했지만 계속해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빨이 부딪치는 소리 같기도 했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소리 같기도 했다. 그 순간에도 주식은 떨어지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마이너스 500만 원이었는데 어느새 마이너스 640만 원이었다.

혜윤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또다시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전화를 끊었는데도 밤새도록 엄마의 무릎이 후들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귀를 틀어막아도 소리는 점점 더 커질 뿐이었다.멀지도 않은데 무슨

택시를 부르고 그래. 돈 아껴야지.

혜윤은 엄마의 손을 꼭 쥐며 말했다.

황 여사님, 주식이 팍팍 오를 거니까

오늘은 타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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