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 전
“사용자성 인정될라”…하청기업 복지·수당 축소 자문도
2026.06.19 11:40
하청 지원, 지배력 근거 부작용 대응
통근버스·에어컨이 인정 근거되기도
“하청과 연결 최대한 차단할 수밖에”
“이제 협력사 복지를 새로 만드는 일은 없을 겁니다.”
국내 한 대기업 노사관계 담당 임원은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 시행 이후 정부가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기조를 이어가자 재계에서도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협력사 및 하청에게 제공하던 지원 제도가 사용자성 인정 근거로 이어질 일말의 여지까지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이 관계자는 “협력사에 대한 지원을 근거로 사용자성을 요청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져, 이제 연말 선물이든 급식이든 정직원에 한해서만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들 “식당, 차량, 성과급 등 손질 검토”=19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노란봉투법을 자문하는 법무법인에는 하청에 대한 지원 체계 개편을 두고 기업들의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을 판단하는 근거로 하청에 대한 각종 복지와 수당 등 지원 제도가 활용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다. 이에 하청 직원들의 복리후생 확대를 위한 교섭권 확보 움직임이 되레 하청의 복지를 축소시키는 부작용을 낳는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한 법무법인 소속 노란봉투법 담당 관계자는 “과거 원청이 하청에 보장해주던 복지와 수당이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근거로 인정되면, 앞으로는 협의를 거쳐서가 아니라 무조건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법무법인 관계자도 “구내 식당, 차량, 성과급 내지는 최저임금 등 근로조건, 나아가서는 고용승계 사안도 손질을 검토하는 분위기”라며 “회사 실적에 따라 이런 복지는 매년 변동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사실상 의무화된다면 회사로선 난감하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폭염 용품도 사용자성 활용될라…조선사는 하청 수당 고민=더욱이 산업 현장은 노란봉투법으로 딜레마 상황이다. 당장 여름철 폭염을 앞둔 건설업계는 안전관리 조치 단계에서부터 고민하고 있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매년 일상적으로 해오던 폭염 대비 용품 지급도, 향후 사용자성 판단 근거가 될 수 있다며 주저하는 기업들이 있다”며 “현장에서 건설 원청의 적극적인 안전관리가 위축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산하에 하청이 많은 구조인 조선 업계도 상황이 비슷하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관계자는 “정부 방침에 따라 대·중소기업 상생을 위해 지원해오던 근속수당, 격려금 등을 정리하려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위, 사용자성 인정 근거에 통근버스·에어컨 등 포함=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한 노동위원회 결정문을 보면, 이같은 복지나 수당이 언급된 사례가 적지 않다. 결정적인 이유로 내세우지는 않지만, 주요한 판단 근거 중 하나로 포함하는 식이다.
한화오션 하청 급식업체(웰리브)에 대한 사용자성을 인정한 법원 판단엔 각종 편의시설을 언급했다. 최근 중앙노동위원회는 웰리브가 이용하는 조리실, 세탁실, 통근버스 등의 시설이 노후됐을 때 “소유자인 한화오션의 협조·승인 없이” 개선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웰리브의 산업안전 및 작업환경을 좌우하는 주체가 한화오션이므로, 한화오션이 이 의제에 대한 교섭 요청에 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5월 인천컨테이너터미널(ICT) 하청에 대한 사용자성을 인정한 판결도 비슷한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인천지방노동위원회는 하청이 이용하는 장비 운전석 의자와 에어컨 등을 관리할 책임이 원청에 있다고 봤다.
▶한화오션 작년 판결서는 하청 학자금이 사용자성 근거로=노란봉투법 시행 전 법원 판결에선 ‘현금 복지’가 더욱 직접적으로 사용자서 인정의 근거로 언급되기도 했다. 지난해 7월 법원이 한화오션 하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에 대한 성과급과 학자금을 사용자성 인정 근거로 거론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7월 서울행정법원은 한화오션이 하청 근로자들로부터 수요 조사를 직접 받아, 자체 재원으로 성과급과 학자금을 지원한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실질적으로 구체적인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고 판결했다. 한화오션이 사실상 하청의 복지 수준을 거론한다고 본 것이다.
재계에선 노란봉투법이 엄격하게 적용되면서 되레 하청에 대한 원청의 지원을 축소시키는 부작용이 나타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법인 율촌이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노동위 결정을 분석한 결과, 노동위가 하청에 대한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한 비율은 90%에 달한다. 사용자성이 부정된 곳은 대부분 공공기관이나 지자체라, 민간기업의 경우 모든 원청에 사용자성을 인정했다.
재계 관계자는 “사용자성이 인정될 경우 원청은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원청도 하청과의 연결성을 최대한 차단하려는 보수적인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혜원·권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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