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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보다 소가 많은 오지마을, 이주 희망자 줄 서는 이유 [르포]

2026.06.19 05:00

지난 17일 경남 남해군 설천면 용강마을에서 김동민(64) 이장이 꽃밭을 살피고 있다. 꽃밭에 있는 ″내가 먼저 행복해야 모두가 행복합니다″라고 적힌 나무 팻말은 이 마을에 이사한 이주민이 만들었다. 안대훈 기자
남해 산골 오지마을인데 “이주하려 줄 섰다”
지난 17일 오후 경남 남해군 설천면 용강마을. 구두산 자락 해발 200m쯤에 위치한 산골 오지마을이다. 상수도관조차 연결 안 돼 지하수를 사용한다. “주민보다 소(800두)가 10배 많다”는 이 마을에 최근 이주 희망자가 줄을 섰다. 불과 1년 반 사이 주민 10명(61명→71명)이 늘었는데 추가로 3명이 대기 중이다. 이 마을 김동민(64) 이장은 “아직 주민등록을 안 한 주민까지 포함하면 작년과 올해 15명이 들어왔다”며 “3명 더 이사하길 원하는데 빈집이 없어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용강마을은 농어촌 기본소득 사업 시행 이후 ‘인구 4만’을 빠르게 회복한 남해군의 221개 마을 중에서도 안정적인 인구 증가세를 유지 중인 대표적인 마을이다. 여기엔, 농촌이 낯선 도시 이주민을 적극적으로 챙긴 김 이장(3년차 마을이장) 노력이 컸다고 한다. 부동산 중개인이 없는 오지마을에서 이주민을 위해 빈 집과 농지를 알아봐 주고, 과거 이주민에게 요구했던 마을발전기금(150만원) 등도 마을 규약을 만들어 없앴다. 주민과 함께 마을 곳곳에 쌓인 쓰레기와 슬레이트 조각 더미를 치워 루드베키아·수국·메리골드 꽃밭으로 가꾸는 등 마을 환경도 개선했다.

특히 남해군이 주목한 건, 이주민-원주민 간 갈등을 조율해 원활한 소통을 이끈 김 이장의 중재자 역할이다. 김 이장은 용강마을 출신으로 30년 넘게 부산에서 살다 귀촌해 양측 입장을 잘 이해한다고 한다. 올해 이주한 용강마을 한 주민은 “반려견을 원하는데 소음 탓에 이를 원치 않는 이웃이 있어 걱정이었는데, 이장님이 중재해주신다고 하셔서 안심했다”고 전했다. 남해군 관계자는 “평생 도시와 농촌에서만 각각 살았던 분들이니 ‘문화적 충돌’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며 “이장님처럼 이런 문화적 차이와 갈등을 줄일 ‘신중년 리더’의 역할이 이주민 안착 등 기본소득 효과를 증대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지난 17일 경남 남해군 설천면 용강마을 내 용강복지회관에서 김동민(64) 이장이 주민 화합 차원에서 직접 개사한 마을 노래를 설명하고 있다. 안대훈 기자
이주민·원주민 화합 이끈 ‘남해 신중년 리더’
소멸 위기 지역의 주민에게 1인당 월 15만원씩 주는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 사업지 곳곳에서 인구가 늘어난 가운데 지역별로 기본소득과 연계해 상승 효과(시너지)를 낸 사례와 대책에 이목이 쏠린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부터 기본소득이 지급된 전국 10개 군 지역의 인구가 기본소득 도입 이후 4.7% 증가하는 등 지역 활력에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번 달 농식품부는 기본소득 사업지로 7개 군을 추가 선정했다.

18일 각 지자체에 따르면 지난달 남해군 인구는 4만1091명으로,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대상지로 선정되기 직전인 지난해 9월 3만9296명과 비교해 1795명이 증가했다. 2024년 10월 ‘인구 4만’이 처음 무너지고, 1년 7개월 만에 회복했다. 남해군 인구는 2011년 5만명대를 찍고 계속 내리막이었지만 기본소득 시행 기대감이 커진 지난해 말부터 반등했다.

그런데 남해군 자체 분석 결과, 마을별로 인구 증가 성과는 달랐다. 용강마을처럼 신중년 리더를 중심으로 이주민-원주민 간 화합이 잘 된 마을일수록 안정적으로 인구가 늘었다. 안성필 남해군 인구청년정책단장은 “결국 인구를 안착하는 핵심 경쟁력은 외부인을 이웃으로 품어주는 마을 주민들의 열린 마음과 자발적 노력”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월 27일 오전 충남 청양군 청양읍 행정복지센터에서 주민들이 농어촌 기본소득을 신청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뉴스1
‘만원 임대 주택’ ‘결혼장려금’…기본소득 시너지↑
기본소득에 이끌린 이주민의 초기 주거 마련과 정착 자금 문제를 해소, 시너지를 낸 지역도 있다.

14년 만에 인구가 증가한 강원 정선군은 농어촌 기본소득과 결혼장려금 같은 실질 지원책을 접목, 청년층의 지역 정주성을 높였다. 결혼장려금은 혼인신고 직후 200만원을 먼저 지급하고 1년 뒤 200만원, 2년 뒤 100만원을 추가로 총 500만원을 지원하는데, 이주민의 초기 정착 비용을 결혼장려금이 담당하고 농어촌 기본소득이 지속적인 생활 기반을 보충하는 구조라는 게 정선군의 설명이다.

김덕기 정선군 가족행복과장은 “결혼장려금으로 초기 비용 부담을 덜고, 기본소득과 복지 혜택으로 양육 부담을 경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등 생애주기별 지원 정책을 지속해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선군 인구는 지난달 3만5113명으로, 지난해 9월 3만3266명과 비교해 1847명이 증가했다.

1년 전보다 인구가 842명 늘어난 충남 청양군은 농어촌 기본소득 관련 이주민 증가에 대비, ‘만원 임대 주택 공급 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은 방치된 빈집을 정비한 뒤 청년이나 신혼부부·귀농인에게 월 1만원에 재임대하는 방식으로 운영 중이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 4월 1일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사업이 진행되는 충북 옥천군을 찾아 사회적경제조직 조합원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본소득 소비처 만든 주민들…“지역경제 활성화 효과↑”
‘인구 5만’을 회복한 충북 옥천군에서는 주민이 직접 농어촌 기본소득 소비처를 마련,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를 키우기도 했다. 지난 3월 옥천군에서 지역 상권이 가장 열악한 청성면에 사는 주민 70여명은 ‘청성주민협동조합’을 꾸렸다. 조합은 최근 기본소득 가맹점 등록을 마치고 팝업 장터를 열어 지역 농산물, 이불과 달걀 등 생필품, 냉동식품을 판매했다. 향후 식당과 카페 운영 등 생활 밀착형 공동체 사업으로 영역을 넓힐 방침이다.

청성면을 필두로 옥천군에선 가맹점 부족으로 기본소득 사용이 불편했던 면 단위 지역을 중심으로 미용실, 정육점, 소규모 마트가 설립되고 있다. 옥천군 인구는 지난해 9월 4만8373명에서 지난달 5만423명으로 증가, 4년 만에 다시 5만명 선에 진입했다. 곽상혁 옥천읍장은 “인구가 다시 증가하면서 지역사회 전반에 새로운 활력이 생기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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