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 전
돈과 소송에 갇힌 '학폭 참교육'[뉴스룸에서]
2026.06.19 04:31
소송 등 돈 있는 집 아이들은 빠져나가
치유와 반성 이끄는 제도 고민할 때
소년은 엘리베이터 안에 주저앉아 울었다. 2011년 12월 20일 아침, 대구의 한 중학교 2학년생 권승민군은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투신한 아이가 남긴 유서에는 같은 학교 또래들에게 당한 학교폭력의 실상이 담겼다. 가해자들은 9개월간 통장의 돈을 빼앗고, 술·담배 심부름을 시켰다. 심하게 때리거나 고문까지 했다. 권군은 부모에게 "사랑한다"는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아이가 떠난 후 교사였던 아버지는 교편을 내려놨고, 형은 주먹에 피가 나도록 벽을 때렸다.
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 1화의 모티브로 알려진 이 사건에 당시 여론은 분노했다. 이후 국내 학폭 대응 시스템은 완전히 바뀌었다. 학교폭력예방법이 전면 개정돼 초중고교에서 학폭 신고가 접수되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를 무조건 열도록 했고, 가해 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에는 처분 사실을 의무 기재하게 됐다. 학교전담경찰관(SPO) 제도가 생긴 것도 이때였다. 더는 학폭을 '애들 싸움'으로만 치부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다짐이 담겼다.
이후 잔혹한 학폭 사건이 터질 때면 엄벌주의 기조가 더 뚜렷해졌다. 2023년 '정순신 아들 학폭 사건'이 대표적이다. 윤석열 정부 초대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됐던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이 동급생에게 "돼지 XX" "좌익 빨갱이"라고 폭언하는 등 심각한 학폭 가해를 했음에도 서울대에 진학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들끓는 민심에 놀란 정부는 2026학년도부터 학폭 처분 사항을 수시는 물론 정시·논술·실기 등 모든 전형에 반영하기로 했다.
'사이다 맛' 조치들은 피해자들에게 청량감을 줬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제도의 맹점을 악용해 책임에서 빠져나가는 교묘한 가해자들이 많아져서다. 처벌 범위와 강도가 커질수록 꼼수는 늘어갔다. '맞학폭(학폭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이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맞신고하는 상황)'은 흔한 전략이 됐다. 학폭 처분 사실이 학생부에 남는 걸 막으려고 소송전도 불사한다. 담당 변호사를 바꾸는 등의 방식으로 시간을 끌며 3심까지 가는 사이 졸업해버리면 학폭 기록이 남지 않는다. 물론 아무나 할 수 있는 전략은 아니다. 고액 수임료를 지불할 여력이 되는 부모를 둔 아이만 할 수 있다.
법정이 돼버린 학교에는 정작 교육이 설 자리가 줄었다. 학폭으로 접수되는 순간, 교사는 어떤 훈육도 하기 어려워진다. 가해 학생을 타이르다간 자칫 아동학대로 고소당할 수도 있다. 과거 인터뷰한 한 초등 교사는 "저학년 때부터 학폭 예방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이후 친구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를 학폭이냐, 아니냐 관점으로만 보더라"며 안타까워했다. 사소한 갈등은 화해로 푸는 법을 배워야 할 학교가, 어떻게든 다툼에서 이기는 법을 따지는 공간이 돼버렸다.
올해 대입에서도 학폭 가해 전력이 있는 수험생은 큰 불이익을 받게 된다. 가장 낮은 수위인 '서면사과' 처분만 받았어도 일부 대학엔 지원 자체를 할 수 없다. 학폭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건 따질 필요 없이 중요한 일이다. 다만 제재를 강화하는 쪽으로만 달려온 학폭 제도가 학교 현장을 더 낫게 변화시켰는지는 따져볼 때가 됐다. 학폭 여부를 대입에 반영하기 시작한 지난해 전국 고교의 학폭 심의 건수가 한 해 전보다 오히려 2.7% 더 늘었다는 뉴스가 무얼 얘기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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