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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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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역주행에 담긴 청년들의 희망

2026.06.18 18:14

■이재용 선임기자
걸그룹 리센느·양귀자 ‘모순’ 역주행 눈길
취업·자산형성 늦는 청년 지지가 원동력
‘뒤처짐이 패배 아니다’ 희망 표현일수도
빠른 성공보다 진정성의 가치에 주목을
이재용 선임기자
요즘 문화계의 트렌드는 단연 역주행이다. 몇 년 전 발표한 노래가 음원 차트에 진입하고 수십 년 전 출간한 책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다. 대표적인 사례가 걸그룹 리센느의 노래 ‘러브 어택’과 양귀자 작가의 소설 ‘모순’이다.

리센느는 요즘 가장 핫한 걸그룹이다. 이들이 2024년 8월 발표한 노래 ‘러브 어택’은 최근 국내 주요 음원 차트에서 톱10에 들었다. 유튜브 채널에서 한 멤버가 “거제 야호(안녕)”라고 외치는 영상이 대박을 친 덕분이다. 영상에서 거제 출신 리더 원이가 ‘갸루(Girl·걸의 일본식 발음)’ 분장을 한 일본인 멤버 미나미에게 “너 이러고 거제 가면 거제 시민들에게 혼나 진짜”라고 하자 미나미가 “거제 야호”라고 받아친다. “거제 야호”는 올 상반기 최고의 밈(온라인 유행 콘텐츠)으로 떠올랐다. 사람들은 이들의 순수하고 엉뚱한 매력에 열광했고 노래의 역주행으로 이어졌다.

‘모순’의 역주행은 출판계의 불가사의이자 기적 같은 사건이다. 1998년에 출간된 모순은 28년이 지난 올해 교보문고의 상반기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4위에 올랐다. 모순은 예스24의 1~5월 도서 판매 집계에서도 10위를 기록했다. 예스24는 올해 도서 시장의 핵심 키워드로 역주행을 꼽았다. 발간 당시에도 좋은 반응을 얻었던 모순은 2020년부터 입소문을 타며 재조명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 콘텐츠의 역주행을 2030세대가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예스24에 따르면 올해 1~5월 모순 구매자 중 2030세대의 비율은 41%에 달했다. 양 작가는 작가 노트에서 “용기를 잃고 주저앉은 사람들에게 무언가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어 이 소설을 시작했으나, 모순으로 얽힌 이 삶은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라고 적었다. 젊은 세대가 출간된 지 30년 가까이 된 책을 다시 꺼내 든 이유를 엿볼 수 있다.

2030세대는 또 중소 기획사 걸그룹 멤버들의 도전과 노력에도 뜨거운 응원을 보냈다. 대형 기획사 아이돌들이 글로벌 무대를 누비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동안 사투리를 쓰는 지방 출신 멤버들이 꿈을 위해 묵묵히 나아가는 모습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며 열광했다. 리센느가 과거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공연을 펼치는 장면이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30세대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살아간다. 이들 세대는 특히 선배 세대와 달리 ‘빠른 성공’에 익숙하지 않다. 4050세대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대규모 공채를 통해 사회에 진출할 수 있었다. 반면 2030세대는 경기 침체와 기업 고용 축소로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린다. 또 은행 대출과 월급을 모아 집을 살 수 있었던 4050세대와 달리 2030세대는 천정부지로 오른 집값과 강화된 대출 규제로 내 집 마련의 꿈을 포기한 경우가 많다. 20년 전 서울의 중위소득 가구가 6~7년간 한 푼도 쓰지 않고 돈을 모아야 집을 살 수 있었다면 지금은 14년을 모아야 한다.

한마디로 2030세대는 취업도, 결혼도, 자산 형성도 늦어지는 세대다. 우리 사회는 속도를 성공의 척도로 삼는다. 학교와 기업·사회에서 남들보다 한발 앞서 나가야 성공한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더 빠르게 올라서기 위해 반칙과 꼼수가 동원되기도 한다. 하지만 경쟁에서 한 번 뒤처진 이들이 역전의 기회를 잡기는 쉽지 않다. 경쟁의 규칙과 기준이 기득권자에게 유리하게 짜여 있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기회의 불균형 속에 성장의 사다리가 끊어졌다고 체감한다. 이들이 ‘공정’의 문제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30세대가 역주행에 열광하는 것은 한 번 뒤처졌다고 해서 영원히 패배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절실한 희망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문화 콘텐츠 시장에서도 속도에 집착한다. 영화 개봉 첫날 관객 수, 신간 출간 첫날 판매량, 음원 공개 첫날 차트 순위로 작품의 운명을 성급히 판단한다. 하지만 모순과 리센느가 보여줬듯 성공에는 빠른 성공만 있는 게 아니다. 수년 혹은 수십 년이 지나도 좋은 콘텐츠는 결국 제 가치를 인정받는다. 느린 성공은 우연이 아니라 꾸준한 축적의 결과다.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속도가 아니라 진정성이다. 남들보다 늦었다고 조급해하기보다 자신만의 속도로 꿈을 향해 나아가는 청년들의 역주행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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