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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왜곡죄·재판소원 시행 100일…“취지는 좋은데 부작용 우려”

2026.06.18 17:21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와 서초구 대법원·대검찰청. 한수빈·문재원 기자


“이○○ 검사, 법왜곡죄로 당신을 감옥에 쳐넣겠습니다. 당신은 검찰의 수치입니다. 그리고 사법경찰관 경감 구△△는 정말 쓰레기도 안 됩니다.”

극우 성향 유튜브 ‘가로세로연구소’ 운영자 김세의씨는 구속 위기에 몰리자 지난달 20일 방송에서 담당 검사와 경찰관을 법왜곡죄로 고소하겠다고 예고했다. 유튜버 ‘구제역(본명 이준희)’은 유튜버 ‘쯔양(본명 박정원)’을 협박해 돈을 갈취한 혐의로 지난 3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을 확정받자 “억울함을 밝혀달라”고 재판소원을 청구했다. 김씨는 구속됐고 구제역의 재판소원은 각하됐다.

정부·여당의 사법개혁 정책인 법왜곡죄와 재판소원이 오는 19일로 시행 100일을 맞는다. 법왜곡죄는 판·검사와 수사관 등이 의도적으로 잘못된 법령을 적용하거나 조작된 증거를 사용해 형사사건 재판과 수사의 결과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면 처벌하는 죄목이다. 재판소원은 법원 판결에 대해서도 헌법재판소가 위헌 여부를 판단해 취소할 수 있는 제도이다.

잘못된 수사·기소·재판으로부터 시민의 기본권을 지키겠다는 취지의 입법이지만, 법과 제도가 미비해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비판이 18일 나온다. 판·검사, 헌법연구관, 경찰관, 변호사 등의 현장 의견을 들어봤다.



많은 판·검사들은 법왜곡죄 때문에 시대의 변화를 반영해 새로운 법리를 제시하는 진보적 판결과 기소가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법원에선 하급심 판결이 기존 대법원 판례에서 더욱 벗어나기 어렵게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 위반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 등은 하급심이 대법원 판례에 도전해 사회적 진보를 이끌어낸 사례들이다.

고위 법관인 A판사는 “과거에는 하급심 판사가 자신의 신념대로 대법원 판례에 어긋나는 판결을 하기도 했는데, 이제 그런 판결이 나오면 법왜곡죄로 고발당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일선 지방법원 형사부에서 근무하는 B부장판사도 “아무래도 전향적이거나 적극적인 판결문을 쓰면 시비가 생길까봐 걱정된다”며 “유죄가 안 되더라도 일단 법왜곡죄에 말려드는 것 자체가 싫다”고 말했다.

검찰도 일선 검사들이 새로운 법리 적용에 소극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원래 폭력조직에 주로 적용하던 ‘범죄단체조직죄’를 보이스피싱 조직에 적용한 사례처럼 전례에서 벗어난 수사·기소가 법왜곡죄로 공격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에 근무하는 C차장검사는 “법왜곡죄 조항이 모호하고 광범위해 범죄자들이 얼마든지 법왜곡을 주장할 수 있다”며 “검사가 불법행위 처벌에 다양한 법을 적용해 보려는 노력이 줄어들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일선 검찰청 형사부의 D검사는 “검사들 사이에선 ‘사건을 처분하면 법왜곡죄로 고소당할 수 있으니 그냥 가만히 들고 있는 게 낫다’는 농담도 나온다”고 말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법왜곡죄에 대해 “판사나 검사가 증거를 조작하거나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며 찬성했다. 그러나 정작 법왜곡죄로 가장 많이 고소·고발당한 대상은 판·검사가 아니라 경찰이다.

경찰이 지난달 6일 기준 접수한 법왜곡죄 사건은 5805건이고 이중 혐의가 인정돼 송치된 사건은 ‘0건’이었다. 피소 대상은 경찰이 전체의 1566명(27.0%)으로 가장 많았다. 검사는 376명(6.5%), 판사는 242명(4.2%)에 불과했다. 특히 법왜곡죄 적용 대상이 아닌 비신분자가 3464명(59.6%)에 달했다. 대부분은 법왜곡죄가 적용되는지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고소·고발장을 내는 것이다. 법왜곡죄 사건을 각하한 경찰관도 법왜곡죄로 고발당할 수 있다는 걱정을 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지방경찰청에 근무하는 E수사관은 “똑같은 증거를 두고도 검사와 경찰수사팀 의견이 갈릴 수 있는데, 다 법왜곡으로 몰고 가버리면 수사 자체가 힘들어진다”며 “현장 입장에선 ‘이게 진짜 국민 기본권 구제에 도움이 되나’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향후 법왜곡죄 수사권 관할 갈등이 예견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최근 ‘법왜곡죄 1호 사건’인 조희대 대법원장 사건을 경찰에 이첩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에는 법왜곡죄가 없다. 하지만 공수처는 자신이 수사 가능한 범죄와 법왜곡죄가 병합된 사건에서는 법왜곡죄를 수사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 지난 15일까지 공수처에 접수된 법왜곡죄 사건 69건 중 병합 사건은 51건이다.

오는 10월 출범하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이 사건 이첩요청권을 발동하면 경찰로부터 법왜곡죄 사건을 가져와 수사할 수 있다. 다만 중수청이 공수처에 이첩을 요구했을 때는 공수처장이 이첩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했다. 공수처와 중수청·경찰이 같은 사건을 중복 수사하면 적법 수사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재판소원을 두고선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갈등이 점점 심화하고 있다. 대법원은 재판소원이 사실상 ‘4심제’이며 정치적 영향력이 개입된다고 주장한다. 헌재는 법원 판결도 헌법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반박한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7일 다른 형사사건 재판 피고인이 제기한 헌법소원 심리가 지연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헌재에 의견을 요구했다. 법원이 헌재의 기본권 침해를 심사하겠다고 나서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헌재 고위 관계자는 “법원이 반길 리는 없지만 이기심을 떠나서 제도가 안착하도록 협조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F고법판사는 “기관 간의 신경전 상황이 현직 법관들 입장에서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많은 인권변호사들이 ‘무오류의 존재’처럼 여겨졌던 대법원 판결을 견제할 수 있다며 재판소원에 찬성한다. 하지만 사전심사를 통과해 헌재 전원재판부에 회부된 사건은 지난 8일 기준 877건 중 8건으로 1%도 되지 않는다. 헌재는 ‘청구인이 법원 판결에 단순 불복했다’는 이유로 사건 대부분을 각하하는데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헌재가 재판소원을 인용할 경우 법원이 재심을 열어야 하는지 등의 후속 절차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법원 스스로 헌법적 가치를 점검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재판소원이 필요하다고 본다”면서도 “심사 기준이나 후속 절차를 충분히 논의하지 않은 채 시행해 제도가 정착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변호사 업계에선 법왜곡죄와 재판소원으로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는 기대감이 확산하고 있다. 헌법재판은 ‘돈이 안 되는 사건’이었지만 재판소원 도입 이후 대형 로펌들은 앞다퉈 전문팀을 구성했다. 김이수 전 헌재소장 권한대행을 비롯해 로펌들의 ‘헌재 출신 모시기’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대형 로펌 소속 G변호사는 “그야말로 장이 섰다”고 평가했다. 이 변호사는 “과거에는 헌법연구관들이 학계 말고는 갈 데가 없었는데 하나둘씩 로펌의 높은 자리로 취직하더라”며 “헌재 조직이 작아서 근무한 분들도 많지 않으니 몸값도 그만큼 높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전원재판부에 회부된 재판소원 사건 상당수가 대형 로펌이 담당하는 사건이라 사회적 약자가 외면받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초로 사전심사를 통과한 ‘녹십자 백신 담합’ 사건은 법무법인 율촌이 맡았다. ‘주택재건축조합 부당이득 반환’ 사건은 법무법인 광장, ‘항소이유서 제출 기간 경과’ 사건은 법무법인 린이 대리한다.

H헌법연구관은 “대형 로펌에 유능한 인력이 많아 유리한 측면이 있었지만, 선례가 쌓이고 기준이 정립되면 일반인이나 개인 변호사가 제기한 사건도 충분히 통과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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