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기의 뷰포인트]AI 데이터 시대, '암묵지'가 사라진다
2026.06.18 11:00
문서화 안된 오랜 관행 조용히 파괴
기업 채용 감축, 양성 시스템 붕괴
국가 경제 기반 무너져 성장률 하락
현대 사회는 모든 지식을 명문화하려 든다. 인공지능(AI)의 눈부신 발전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AI는 방대한 데이터와 예시를 학습한다. 문서나 코드로 작성된 '명시적 지식' 처리에 매우 탁월하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 지식의 전부는 아니다. 헝가리 출신의 화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마이클 폴라니는 저서 '개인적 지식' '암묵적 영역'에서 암묵지(暗默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인간의 지식은 언어로 완전히 표현될 수 없다. 인간은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안다.
암묵지는 독특한 인지 구조를 지닌다. 인간은 무언가를 인식할 때 개별 단서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의미 있는 전체 형태로 초점을 이동한다. 피아니스트를 보라. 그들은 손가락 끝의 감각에 무의식적으로 의지하지만, 그 감각을 넘어서 자신이 연주하는 곡 그 자체에 집중한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지인의 얼굴을 단번에 알아보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눈, 코, 입의 정확한 수치를 계산하지 않는다. 특징들을 하나로 통합해 직관적으로 파악할 뿐이다. 이러한 통합 과정에는 개인의 경험, 신념, 직관이 깊게 개입한다. 폴라니는 이를 대상에 자신을 이입하는 '내재화' 과정으로 설명한다. 반면 AI는 철저히 명시적인 데이터에만 의존한다. AI는 맥락에 맞춰 그럴듯한 정답을 확률적으로 내놓는다. 하지만 개인적인 지식이나 신념을 가질 수는 없다. 즉, AI에 '예시'는 주어질 수 있지만 살아있는 '경험'은 주어질 수 없다. 기계는 구조적으로 암묵적 지식을 포착할 능력이 없다.
현재 우리는 문서화된 지식만 인정받는 시대를 살고 있다. 예를 들면 소프트웨어 업계의 AI 코딩 도구들은 이 편향성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거대언어모델(LLM)은 인터넷에 기록된 코드와 문서만 학습한다. 팀 내에 공유되는 미묘한 규칙이나 뉘앙스는 훈련 데이터에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그 결과 현장에서는 여러 가지 심각한 오류가 나타난다. 첫째, '명시화 편향'이다. AI는 겉으로 드러난 규정은 잘 따른다. 하지만 문서화되지 않은 오랜 관행은 조용히 파괴한다. 둘째, '유창함의 가면'이다. AI는 특정 코드에 대해 매우 자신감 넘치고 유창한 설명을 생성해 낸다. 사람들은 이를 기계의 이해력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이는 다른 데이터의 통계적 평균일 뿐이다.
특정 분야를 떠나 무엇보다 중대한 오류는 암묵지가 전승되지 않아 조직의 뿌리를 흔든다는 점이다. 과거 도제 제도는 이 암묵지를 전수하는 가장 정교한 시스템이었다. 초보자는 규칙에 얽매인다. 그러나 전문가는 경험이 쌓이면서 직관적이고 통찰력 있는 암묵지를 획득한다. 복잡한 규칙과 이론은 끊임없는 수정과 경험을 거친다. 그리고 마침내 암묵적 직관으로 체화된다. 주니어 변호사의 문서 검토, 신입 개발자의 단순 코딩, 초급 금융 분석가의 데이터 입력 등은 모두 암묵지를 단련하는 훈련장이다. AI는 교재에 쓰인 명시적 지식은 훌륭하게 복제한다. 그러나 수년간의 현장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암묵지는 결코 복제하지 못한다. 암묵지는 명시적 지식과 달리 유통기한이 짧다. 암묵지의 수명은 인간의 직업 경력 기간과 같다. 문서나 파일의 형태로 보존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의 손과 머리에 깃든 암묵지는 그 세대가 은퇴하면 영원히 소멸한다.
훈련 파이프라인의 단절은 문명적 재앙을 낳는다. 고대 로마의 콘크리트 제조법이나 아폴로 계획의 새턴 V 로켓 엔진 기술이 실전된 것은 매뉴얼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기술을 시현하고 전수할 세대가 끊겼기 때문이다. 영국은 원자력 잠수함 건조 인력의 세대교체에 실패해 천문학적인 비용과 굴욕을 겪었다. 지금의 숙련된 세대가 은퇴하는 10여년 뒤, 우리 사회 역시 치명적인 전문역량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가장 큰 생산성 호황을 앞두고 있다. 시니어 전문가들은 강력한 AI의 도움을 받는다. 기계가 명시적 지식을 쏟아낼수록,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지닌 인간의 가치는 더욱 폭등한다. 훌륭한 시니어 엔지니어는 시스템의 숨겨진 규칙을 보유한 '암묵지 구현자'이다. 그들은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많은 결과물을 쏟아낼 것이다. 하지만 이는 착시다. 우리는 지금 2040년의 미래를 제물로 바쳐 2026년의 이윤을 남기고 있다. 바로 이 순간, 미래 세대를 양성하는 훈련 시스템은 조용히 해체되고 있다. 당장의 이익이 파멸적인 붕괴를 교묘하게 위장한다. 기업이 신입사원 채용을 줄이는 것은 개별적으로는 합리적인 결정이다. 그러나 이는 거시적 수준에서는 전체 사회의 하부 구조를 점진적으로 약화시킨다. 이렇게 되면 국가 경제의 질적 기반은 돌이킬 수 없이 무너진다. 경제의 장기 성장률은 영구적인 하락을 겪는다.
이 위기는 시장의 논리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기업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신입사원을 훈련시키려 하지 않는다. 경쟁사가 언제든 그 인재를 가로챌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식 전수 과정을 시장 밖으로 끌어내야 한다. 의료계가 훌륭한 본보기다. 수습 의사 제도는 시장의 변덕에 흔들리지 않는다. 이 제도는 면허 요건으로 법적 보호를 받는다. 또한 의료보험과 같은 공공 자금의 지원을 든든하게 받는다. 사회 전체가 의료 전문가 양성의 책임을 나눠서 지는 것이다. 독일의 '이원화 직업 훈련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유럽 최고 수준의 자동화에도 불구하고 전문가 양성을 굳건한 사회적 인프라로 유지한다. 영국 롤스로이스는 단절된 기술 명맥을 잇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자체 기술 아카데미를 새로 세우기도 했다.
단순한 고용 지표 너머를 겨냥한 정책 개입이 시급하다. 전체적인 신입 채용 규모나 실업률만 쳐다봐서는 안 된다. 청년들이 누구에게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해야 한다. AI가 최고급 멘토와의 단절을 초래하고 있다면 국가는 개입해야 한다. 훌륭한 멘토링 기회를 제공하는 주니어 일자리에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다. 초급 업무를 자동화하는 특정 도구에 세금을 매기거나 사용을 제한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또 남이 키운 인재에 무임승차하는 기업을 막기 위해 '교육 훈련 부담금' 신설을 고려할 수도 있다. 공공 자금이 투입되는 새로운 형태의 도제식 훈련 제도 역시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인류의 진정한 부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AI로 인해 문명과 전문성을 전승하는 고리가 약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사다리를 다시 세울 시간은 있다. 현장의 숙련된 마스터들이 완전히 은퇴하기 전까지 대략 10년의 골든타임이 남았다. 2040년의 미래 세대가 전문가를 찾을 때 텅 빈 방을 마주하게 해서는 안 된다. 국가적 차원의 제도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동기 변호사·달러의 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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