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로픽 수출통제로 시험대 오른 ‘소버린 AI’···한국 어디까지 왔나 [뉴스분석]
2026.06.18 17:23
앤트로픽의 최신 모델인 미토스5·페이블5가 미국의 수출통제 대상에 오르면서 ‘소버린 AI(주권 AI)’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른 나라나 특정 기업에 의존하지 않고, 한국이 데이터, 기술, 인프라를 가지고 독립적인 인공지능(AI)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모델뿐 아니라 칩, 클라우드,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등이 연계된 AI 산업 특성상 전면적인 소버린 AI는 비현실적이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AI 산업 단계별로 선별적인 구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AI 파운데이션 모델(기초 모델)의 경우 미국·중국 등 주요국과 한국 간 성능 격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AI 성능 집계 플랫폼인 아티피셜 애널리시스를 보면 지난 16일 기준 상위 1~5위는 모두 클로드·GPT 등 미국 모델이었다. 상위 20위권 내에도 미국·중국이 양분하고 있으며, 한국 모델은 없다.
이는 AI 성능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인 컴퓨팅 용량에서 격차가 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AI연구기관 에포크 AI에 따르면 미국은 전 세계 AI GPU 클러스터 컴퓨팅 용량의 75%를 차지하고, 중국이 15%로 그 뒤를 이었다.
반도체 부문도 메모리는 확실한 주도권을 쥐고 있지만, 그 외 분야는 ‘열세’다. 정부는 퓨리오사AI, 리벨리온 등 국산 신경망처리장치(NPU) 기업들을 지원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매출 규모는 제한적이다. 최근 AI반도체가 단일 칩이 아닌 네트워킹과 랙 (rack) 단위 시스템으로 진화 중이라는 점도 변수다. 칩 생태계를 단시간에 국산화하기는 더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정부가 최근 후공정 등 반도체 생태계 구축에 착수했지만 인프라 사업 특성상 성과가 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생태계의 롤모델 격인 대만은 1980년대 후반부터 국가 주도로 생태계 구축을 추진해왔다.
최병호 고려대 인공지능연구소 교수는 “(반도체 분야는) 기술 투자부터 대량 생산에 이르는 상용화 단계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면서 “다만 AI 주도권을 위해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기에 정부가 정책 펀드 등으로 생태계 조성을 적극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AI 모델 운영의 기반이 되는 클라우드 산업에서 해외 의존도가 높다는 것도 짚어볼 지점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클라우드 소프트웨어(SaaS) 기업들의 인프라 서비스(IaaS) 지출액 중 외국산 비중은 74.4%에 달했다. AI 전환이 가속화될수록 AI 생태계를 주도하는 아마존 등 빅테크의 점유율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클라우드는 데이터 저장·처리 구조가 올라가는 핵심 기반으로, 한 번 외국산으로 구축되면 이전이 어려운 ‘락인 효과’가 크다. 특히 미국 클라우드법상 해외에서 서비스하는 클라우드도 필요 시 자료 제출을 명할 수 있어 데이터 주권과도 연결된다.
전력 인프라도 소버린 AI의 성패를 가르는 변수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4월 보고서에서 AI 데이터센터 확장이 전력망 접속과 에너지 장비 공급망의 속도에 좌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국내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올해 8.2TWh(테라와트시)로 미국(약 180TWh)와 20배 넘게 차이가 난다. 특히 반도체 클러스터가 밀집된 수도권의 전력 자립도는 66%로 전국(108%)보다 크게 낮아 불균형이 두드러진다. AI로 늘어난 전력 수요를 감당하고, 필요한 곳에 적시에 공급하는 일이 과제가 된 셈이다.
최 교수는 “국방과 같은 안보 영역은 AI 생태계를 국산화하고, 산업 분야는 결국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투트랙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풍부한 제조 분야 데이터를 바탕으로 피지컬AI 시장을 키우고, 범용 클라우드 시장 대신 AI 전용 클라우드에 집중하는 것 등이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경전 경희대 빅데이터응용학과 교수는 “현재 주요국의 AI 모델 성능 개선 속도가 둔화된 것은 기회 요인”이라며 “꼭 최고 성능이 아니더라도 업무에 쓸 수 있는 수준의 ‘기준선’을 넘으면 소버린 AI의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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