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간 전
‘미결수’라도 커피조차 마실 수 없어
2026.06.18 17:01
나는 승용차를 몰고 경기 의왕에 있는 서울구치소로 향한다. 조수석에는 변호사들이 많이 들고 다니는 검은색 서류 가방이 놓여 있다. 가방 안에는 피의자의 수용 번호와 신상이 적힌 접견 신청서, 법원에 제출할 의견서 초안, 그리고 증인이 나오면 물어볼 질문들이 담긴 증인신문 사항 초안이 들어 있다. 의견서나 증인신문 사항 초안은 법원에 제출하기 전에 미리 의뢰인에게 설명해 주고, 의견이 있으면 반영하기 위해 들고 가는 것이다.
구치소로 향할 때는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자유가 박탈된 곳으로 가는 길이라서인지 차에서 듣는 음악도, 차에서 홀짝거리는 아이스아메리카노도, 목에 뿌린 향수도, 에어컨에서 나오는 찬바람 등 일상의 사소한 모든 것이 새삼 소중해진다.
구치소나 교도소는 대개 시내 외곽의 후미진 곳에 자리하고 있는 데다 내비게이션에는 나오지 않기 때문에 구치소로 갈 때는 비밀 아지트를 찾아가는 것 같다. 내비게이션에 나오지 않는 이유는 전시에 적이 구치소나 교도소 문을 열어줄 수 있어서 군사 보안 사항이라는 데 있다. 구치소, 교도소 문을 열어주면 수용자들이 뛰쳐나와 그간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정부를 공격하거나 사회질서를 교란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적이 폭격하지 않고 살며시 와서 곱게 문을 열어준다면 전시에는 교도소가 제일 안전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구치소와 교도소는 다르다
호랑이 등짝처럼 노란색 띠와 검은색 띠가 번갈아 휘감긴 바리케이드가 세워진 구치소 입구에 도착하면 나도 모르게 경건해진다. 일반 민원인들의 차는 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지만 변호사는 구치소 직원이 앉아 있는 부스를 향해 변호사 신분증을 보여주면 차단기가 올라간다.창구에 변호사 신분증과 함께 휴대폰, 노트북, 약 같은 반입 금지 물품을 맡기면 목걸이가 달린 플라스틱으로 된 출입증을 건네준다. 출입증을 들고, 10t 트럭이 전속력으로 달려와 들이받아도 끄떡없을 것 같은 육중한 철문 앞에서 기다리면 작은 인터폰 스피커에서 “정재민 변호사님, 들어가십시오”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문이 열릴 때마다 문짝 밑바닥에서 덜덜거리는 큰 소리가 들리는데 그 육중함만큼 국가권력의 무게, ‘리바이어던’의 힘을 느낀다(16세기 영국의 사상가 토마스 홉스는 국가권력을 구약성서에 나온 괴수 ‘리바이어던’에 빗댔다).
공항 검색대에 들어서듯 금속 탐지기와 가방 투시기를 통과하고 나면 앞서 통과한 철문과는 딴판인 깔끔한 흰색 문이 마치 창호지를 바른 한옥의 미닫이문처럼 옆으로 스르륵 열린다. 그러고 나면 비로소 구치소라는 특별한 영토 안으로 첫발을 내딛게 된다. 그 흰색 문을 통과하자마자 내 몸이 구치소라는 완전히 낯설고 특별한 세계에 진입하게 됐음을 깨닫는다. 이곳에 들어서면 한순간에 사방이 고요해져서 뜰을 가로질러 접견실로 가는 내 발소리가 선명하게 들릴 정도다.
구치소와 교도소는 다르다. 구치소는 미결수가 머무는 곳이다. ‘미결(未決)’은 말 그대로 아직 형이 결정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앞서 말했듯 미결수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돼서 노역을 안 하며 변호인 접견이 자유롭다.
반면 교도소는 형이 확정된 기결수를 수용하는 곳이다. 기결수가 교도소에 있는 것은 확정된 판결의 효력에 따라 징역형을 집행하기 위한 것이다. 징역형은 구금 외에도 노역하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에 기결수는 노역을 한다. 다만 사형수는 노역하지 않는다. 사형에는 징역형이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형이 집행되기 전까지 도망가지 못하도록 구금돼 있을 뿐이다. 그래서 기결수이지만 미결수처럼 취급된다고 한다. 미결수와 기결수는 공간도 구별되고 옷 색깔도 다르다.
다시 말하면 미결수는 아직 재판 중인 상태로 판결 결과가 바뀔 여지가 있는 사람이고, 기결수는 판결 결과가 바뀔 여지가 없는 사람이다(물론 판결이 확정되더라도 재심을 청구해서 그 결과가 바뀔 수는 있지만, 재심은 판결 결과를 뒤집을 새로운 증거가 나와야만 겨우 가능하기 때문에 좀처럼 허용되지 않는다). 자신의 운명을 바꿀 여지가 있는 사람과 정해진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사람은 차이가 크다.
전자는 희망을 품고 최선의 노력을 해볼 수 있지만 오히려 그 가능성 때문에 마음이 힘들기도 하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나중에 나쁜 결과를 받고 후회할 것 같은데 막상 최선을 다한다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후자는 이미 정해진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이지만 최선을 다하지 못한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가 남아 그 역시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변호사는 아직 운명을 바꿀 여지가 있고 최선을 다해 보고 싶은 미결수들이 주로 찾는다. 그래서 변호사는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구치소 뜰을 가로질러 접견동 건물의 2층으로 들어서면 왼쪽으로는 변호사가 대기하는 공간이, 오른쪽으로는 수용자를 접견하는 넓은 시설이 펼쳐진다. 변호사들이 대기하는 공간에는 긴 소파 앞에 이런저런 신문이 펼쳐진 테이블이 놓여 있고, 한쪽 구석에는 변호사들을 위한 커피머신이 설치돼 있다.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설치해 놓은 것이다. 옛날에는 일부 변호사가 머신에서 뽑은 커피를 들고 가 수용자에게 한두 모금 마시라고 건네주기도 했다고 한다. 구치소에 있으면 커피 마시는 것이 여의치 않거나 영치금으로 사서 마시더라도 인스턴트커피 정도만 마실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커피머신에서 나온 커피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구속되면 커피를 마실 수 있을까
그러나 요즘은 변호사가 접견실에 커피를 들고 가지 못한다. 커피에 마약이나 독극물이 담겨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마약사범은 지인이 책을 보내는 것도 금지된다. 종이에 마약을 적셔서 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싶으면 구치소에 직접 구매를 요청해서 사 읽어야 한다.예전에 30대 젊은 피의자가 구속돼 검사실에서 조사받을 때 변호인으로 참여해 본 적이 있다. 아버지가 세운 회사에 어린 나이에 사장으로 앉았다가 아버지가 관행적으로 해온 회계 처리의 잘못을 뒤집어써서 본인으로서는 꽤나 억울한 점이 있었다. 오전 내내 거칠게 닦달하던 검사가 오후에 점심을 먹고 직접 원두커피를 타주자 그 사장이 수의를 입은 채 철제 의자에서 용수철 튀어 오르듯 벌떡 일어나 고개를 깊이 숙이며 두 손으로 받아서 아껴가면서 조금씩 마셨다. 그걸 보면서 신체적 구속과 카페인 중독이 결합하면 사람의 영혼이 올가미에 걸린 고양이처럼 수사기관에 사로잡힐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에게 “나중에 나가면 제가 좋은 커피 사드릴게요”라고 속삭였는데 그 말에 그는 고개를 들어 나와 시선을 맞추고 모처럼 씩 밝게 웃어 보였다.
변호사 대기실 반대편에는 단체 접견실로 들어가는 작은 문이 있고, 그 문 앞에서 교정 공무원 너덧 명이 수문장처럼 접견 절차를 관리한다. 변호사가 준비해 온 접견 신청서를 교정 공무원에게 제출하고 서 있으면, 교정 공무원은 그 내용을 확인하고 마이크로 해당 수용자를 부른다. 수용자가 접견실에 도착하면 나는 마치 판문점의 군사분계선을 넘어가듯 간단하게 접견실 문턱을 넘어선 뒤 마침내 수용자를 마주하고 인사를 하게 된다. 그러고는 변호사와 수용자가 함께 접견실 가운데 있는 교도관에게 가면 교도관이 몇 번 방으로 들어가라고 안내한다.
이렇게 수용자를 만나는 방식은 서울구치소가 특이한 편이다. 서울 동부·남부·수원 등 다른 구치소에 가면 변호사가 방에서 대기하고 있고, 수용자가 그 방을 찾아온다.
접견실 첫 한마디, 신인 감독 입봉작만큼 인상적
접견실로 들어가면 대여섯 줄의 복도가 나오고 복도마다 좌우로 작은 접견방이 마치 코인 노래방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다. 한 방에 문은 두 개다. 하나는 수용자가 들어가는 문이고, 다른 하나는 변호사가 들어가는 문이다. 낮은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볼 수 있다. 악수도 할 수 있다. 문밖에서 모든 장면이 보이도록 문과 칸막이를 포함한 방 전체가 투명한 아크릴 판으로 돼 있다. 의자는 접이식 철제 의자이고 갈색 쿠션이 붙어 있다. 변호사가 앉는 쪽에는 긴급 상황 발생 시 누르는 버튼이 설치돼 있다.수용자와 미처 악수하지 못했다면 방에 들어가서 낮은 칸막이 위로 악수를 나눈다. 마주 앉은 뒤 나는 가벼운 미소를 머금고 “안녕하세요? 건강은 괜찮으세요?”라고 묻고는 그의 첫말을 기다린다. 이런 특수한 상황에서 상대가 처음 하는 말은 비록 문자 자체로는 특별하지 않더라도 신인 감독의 입봉작처럼 특별한 인상을 남긴다.
거액의 회삿돈을 횡령해 난생처음 구속된 40대 회사원 A도 그랬다. 뽀얀 피부와 어려 보이는 얼굴이 아직도 좋은 집에서 고급 장난감을 가지고 놀 법한 소년 같았다. 그와 마주 앉아 기분은 좀 어떠냐고 묻자, 그는 괜찮다고 하더니 다음 순간 눈가에 눈물이 핑 돌면서 고개를 숙이고는 그대로 울음을 터뜨려 버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지켜봐 주었다. 그는 감정을 추스르고는 감옥에서 내 책을 읽고 믿음이 가서 어머니를 통해 나를 선임하게 됐는데 막상 이렇게 마주 앉으니 갑자기 심적으로 의지가 되기도 하고 자신의 처지가 비참하게 느껴지기도 해서, 또 어머니에게 미안하기도 해서 눈물이 터졌다고 했다. 자신의 감정을 상당히 정확하게 파악하고 표현도 잘하는 사람이었다.
A는 주식과 선물 투자로 거액의 손실을 입었다. 여기저기 돈을 빌렸는데 갚지 못해 빚 독촉에 시달렸다. 그러다 회삿돈을 보고 욕심이 생겨 몰래 빼돌렸다가 덜미를 잡힌 것이었다. 문제는 그 빼돌린 돈으로 채권자들에게 돈을 갚았으나 경찰이 조사를 시작하면서 채권자들이 A로부터 받은 돈을 경찰에 반환하고 A를 사기죄로도 고소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A는 처음 구속된 만큼 충격이 더 크고 감정적으로 ‘패닉’이 온 것 같았다. 진정될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처음에는 힘들지만 하루하루 지날수록 조금씩 더 나아질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A는 접견이 계속될수록 눈에 띄게 표정이 편안해졌고, 자신도 안정을 찾아간다고 했다.
그제야 나는 본격적으로 사건에 대한 상담을 시작했다. 현재 A가 어떤 상태이고, 앞으로 어떤 절차가 기다리고 있고, 내가 보기에 그 전망이 어떻게 될 것 같은지를 설명하고, 그 과정에서 A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를 상의했다. A는 자신의 책임을 덜기 위해서 이런저런 말을 판사에게 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나는 그중에 오히려 말이 안 되는 거짓 변명처럼 보여서 해로운 것이 적지 않다며 걸러주었다. 이렇게 접견을 하다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가버린다. 못다 한 이야기는 편지로 주고받거나 다음 접견 때 이어가겠다며 악수를 한 뒤 일단 헤어진다.
접견이 끝나면 함께 교도관에게 가서 서로 주고받은 서류가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면 그 서류의 이름을 적고 서명해야 한다. 교도관은 수용자가 접견하러 올 때 들고 온 서류와 접견을 마치고 갈 때 서류를 저울에 올려 무게를 확인한다. 놀랍게도 한 장이라도 더 많거나 적으면 무게에 차이가 난다. 그 절차가 끝나면 변호사와 수용자는 악수나 목례를 하고 헤어진다. 수용자는 원래 있던 감옥으로 돌아가고, 나는 다음 접견자 B를 만나러 다른 접견실로 들어간다. (다음 달에 계속)
●1977년 경북 경주 출생
●現 JM파트너스 대표변호사
●前 법무부 법무/송무 심의관
●前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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