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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마시고 ‘운전자 바꿔치기’ 경찰…대법 “범인도피방조에 해당”[세상&]

2026.06.18 16:46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
범인이 자신 위한 허위진술 등을 용이하게 한다면?
“방어권 남용 법리에 따라 범인도피방조죄에 해당”
대법관 다수 의견으로 상고기각…찬성8명·반대5명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3월 1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 대법관들과 참석해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양근혁 기자]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음주운전 사고를 내고 동승자의 운전자 바꿔치기 제안에 따라 음주 측정을 피한 행위에 대해 ‘범인도피 방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8일 범인도피방조,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혐의를 받는 전직 경찰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한 원심을 대법관 다수의 의견으로 확정했다. 찬성의견(상고기각)을 낸 대법관은 8명, 반대의견(파기환송)을 낸 대법관은 5명이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피고인(A씨)은 음주운전을 하지 않은 친구가 피고인을 위해 경찰관에게 그 자신이 운전자라고 허위로 진술하는 것을 용이하게 했고, 그로 인해 벌금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도로교통법 위반 음주운전죄를 범한 진범의 발견을 방해해 형사사법 작용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할 위험이 발생했다”며 “이와 같은 피고인의 방조 행위는 방어권의 남용으로서 범인도피 방조죄에 해당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다수 의견”이라고 밝혔다.

이어 “따라서 원심이 이와 같은 취지에서 이 사건 공소사실 중 범인도피 방조 부분을 유죄로 판단한 제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한 것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의 주장과 같이 논리와 경험의 원칙을 위반해 자유심정주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범인도피 방조죄 성립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했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2023년 5월 전북 전주에서 술을 마신 상태로 차를 몰다가 신호 대기 중인 승용차를 들이받아 교통사고를 낸 혐의(음주운전)를 받는다.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취소 수준인 0.097%였다.

A씨는 또한 당시 조수석에 타고 있던 친구 B씨가 “내가 운전한 것으로 해 주겠다”고 말하자, 이에 동의하고 B씨와 자리를 바꿔 B씨가 운전한 것과 같은 외형을 만든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이어 보험회사에 전화해 “B씨가 운전했다”고 말하고, B씨는 교통사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내가 운전했다”고 말하며 음주감지기에 의한 음주측정에 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A씨에게는 B씨의 범인도피행위를 용이하도록 이를 방조한 혐의(범인도피방조)도 적용됐다.

A씨와 B씨의 자리 바꿔치기 범행은 사고 후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지구대로 복귀한 이후 사고 부위 및 경위를 이상하게 여긴 보험회사 직원의 추궁과 신고로 발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교통단속 경찰관으로 근무하던 A씨는 이 사건으로 해임됐다.

이날 선고의 쟁점은 범인이 자신을 위한 타인의 허위 자백 또는 진술을 촉진·강화하거나 용이하게 하는 방법 등으로 타인의 범인 도피 범행을 방조한 행위가 방어권 남용으로 범인도피방조 혐의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앞서 1심은 A씨의 행위가 범인도피 방조에 해당함을 전제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A씨)은 (B씨의) 범인도피행위를 용이하게 해 이를 방조했다”고 판시했다. A씨는 항소했지만 2심도 1심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범인도피 혐의로 기소됐던 B씨는 1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고 항소하지 않으면서 형이 확정됐다.

이날 찬성의견을 낸 엄상필 대법관은 “범인도피방조죄에 관한 방어권 남용 법리의 적용 배제는 단지 범인의 범인도피, 방조 행위를 처벌하지 않는 데 그치지 않고, 결국에는 가벌성이 높은 범인도피 교사 행위까지 처벌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져 실체적 진실 규명을 통한 적정한 형벌권 행사에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며 “이는 그동안 대법원이 방어권 남용 법리를 선언하고 유지해 온 배경과 근본 취지에 어긋나는 결과가 된다”고 밝혔다.

반대의견을 낸 오경미 대법관은 “다수(찬성)의견처럼 방어권 남용 법리의 정당성 논거를 형사사법 작용에 대한 침해 정도의 중대성에서 찾는다면, 범인이 범인도피죄의 본범과 함께 공동의 의사로 기능적 행위 지배를 통해 주도적으로 수사 기관에 허위 자백을 하는 범죄를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것은 형사사법 작용에 대한 침해 정도가 방조 행위보다 훨씬 중대하므로, 이 경우 범인을 범인도피죄의 공동정범으로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오 대법관은 “그러나 대법원은 이러한 경우에 범인을 공동정범으로 처벌하지 않고 있다”며 “이와 같이 범인이 자기 도피 행위를 단독으로 또는 제3자와 공동으로 수행하는 경우에는 범인도피죄의 정범이나 공동 정범으로 처벌되지 않으면서 단지 범인도피죄 본범의 실행행위를 용이하게 한 경우에는 방조범으로 처벌되는 것은 형법의 방조범 체계와 모순되고 처벌의 균형성 측면에도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날 선고에 대해 “대법원은 처음으로 범인도피죄와 관련하여 방어권 남용 법리의 의의와 취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그동안 대법원이 방어권 남용 법리를 선언하고 유지해 온 배경과 그 근본취지에 비춰 현재의 판례 법리가 여전히 타당함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범인이 자신을 위한 타인의 허위 자백 또는 진술을 촉진·강화하거나 용이하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타인의 범인도피 범행을 방조한 경우, 그와 같은 범인의 방조행위는 방어권 남용으로 범인도피방조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며 판결의 의의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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