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반도체 착시와 경제 지표의 이면
2026.06.18 07:00
거시 리스크 관리와 가계부채 구조조정 필요성최근 발표된 올해 1분기 주요 거시경제 지표는 숫자만 놓고 보면 눈에 띄는 성과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분기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10.5%를 기록하며, 1976년 이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성장을 달성했다. 이에 따라 올해 연간 명목성장률이 10%대를 기록할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정부가 관리 목표로 제시한 '명목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역시 분모의 팽창에 힘입어 하향 안정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올 1분기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말 88.2%에서 가파르게 하락해 85%선, 85.11%에 바짝 근접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러한 명목 GDP 증가에 따른 부채 비율 하락은 거시경제 건전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의미가 있음은 분명하다.
물론 경제 규모가 커지는 과정에서 부채의 절대적 총량이 함께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신용 공급과 부채 증가를 일률적으로 부정할 일은 아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부채의 절대 액수가 늘어나더라도 경제 규모에 비해 과도하게 불어나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일이다. 그런 관점에서 2021년 3분기 99.1%까지 치솟았던 가계부채 비율을 점진적으로 낮춰 오는 2030년까지 80% 수준으로 유도하겠다는 정부의 관리 방향과 이번 지표 개선은 나름의 정책적 성과로 평가할 만하다.
특히 이번 지표 개선은 단순히 반도체가 만든 분모, 즉 명목 GDP의 확장에만 기댄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정부가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분자, 즉 가계부채 총량의 증가세를 연 1.5% 수준으로 관리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분모의 확대와 분자의 관리가 맞물리면서 올해 연간 명목성장률이 10%를 달성할 경우 연말 가계부채 비율은 81.8%로, 12% 성장 시에는 80.3%까지 떨어질 것으로 추산된다. 다만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가 다시 확인된 만큼 당국의 관리 기조가 현장에서 지속 가능한 흐름으로 안착했는지는 향후 분기별 세부 자금순환 통계와 가계대출 구성 변화까지 확인해야 보다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경계해야 할 점은 통계적 수치에 안주해 내년 이후의 리스크까지 가볍게 보는 낙관론이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의 지적대로 현 고성장 국면은 "우리가 같은 물건을 생산해도 국제 가격이 크게 올라 매출 금액이 달라진" 경기 순환적 호황에 가깝다. 실제로 1분기 GDP 디플레이터가 12.9% 상승한 데는 수출 디플레이터가 23.5% 급등한 영향이 컸다. 그러나 이 같은 명목 지표의 개선과 달리 가계 실질소득 증가율은 0.4%에 그쳤고 적자가구 비율도 27.4%에 달하는 등 미시 체감 지표는 여전히 차갑다. 현재의 분모 팽창이 구조적 체질 개선이 아닌 수출 단가 상승에 기댄 만큼 내년 이후 반도체 사이클이 하강 국면으로 돌아서면 지표상의 안정세는 언제든 약화할 수 있다.
부채 비율이 낮아졌다고 해도 절대적인 부담까지 가벼워진 것은 아니다. 가계 빚이 성장을 제약하기 시작하는 임계치는 통상 GDP 대비 80~85% 수준으로 거론된다. 지표상으로는 이 임계 구간의 문턱까지 내려왔지만 비율 하락의 이면에는 고금리 국면에서 누적된 원리금 상환 부담과 소비 여력 약화라는 그림자도 함께 놓여 있다. 당장 내년의 거시 환경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부채 비율이 줄었으니 우리 경제가 완전히 건전해졌다"고 도취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결국 지금의 지표 개선은 경제 규모 확대에 따른 자연스러운 부채 증가를 인정하는 틀 안에서 그 비율을 통제 가능한 범위 안으로 유도해 가는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통계적 착시가 주는 안도감에 젖기보다는 반도체 호황이 만들어준 지금의 여유를 가계부채 구조를 손볼 기회로 삼아야 한다. 당국은 화려한 성장률 지표 이면의 취약성을 면밀히 점검하고 지표 관리에 그치지 않는 부채 구조조정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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