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가 묻는다, 누구의 책임이며 누구의 곳간인가[편집장 칼럼]
2026.06.18 10:30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각으로 1200억원대 자금이 들어온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회사의 설명입니다. 임금, 퇴직금, 협력업체 대금, 상품 매입 자금 등 회생 절차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금 수요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직원 수는 과거 1만 8000명 수준에서 9000명 안팎으로 줄었습니다. 여기서 유동성이 끊기면 남은 일자리와 협력업체, 입점업체의 거래망까지 연쇄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 자금 조달의 막판 길목에서 두 거대한 주체가 마주 보고 있습니다. 한쪽은 홈플러스의 대주주인 동북아 대표 사모펀드 MBK 파트너스입니다. 다른 한쪽은 홈플러스 주요 점포를 담보로 1조3000억원대 대출을 제공한 최대 담보권자 메리츠금융그룹입니다. MBK는 1000억원 규모의 연대보증을 제시했고, 홈플러스는 이를 바탕으로 메리츠가 총 2000억원 규모의 긴급 운영자금 지원에 나서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장면을 단순히 “메리츠가 홈플러스를 살릴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로 보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흐립니다. 더 정확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홈플러스를 살리기 위해 먼저 열려야 할 곳간은 누구의 곳간인가.
본업 경쟁력을 잃게 한 대주주의 경영
자본시장의 기본 문법으로 볼 때 기업 경영의 위험과 책임은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있는 대주주가 먼저 부담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MBK는 2015년 약 7조2000억원 규모로 거론된 거래를 통해 홈플러스를 인수했습니다. 이후 홈플러스는 점포 매각과 자산 효율화 전략을 이어갔습니다. 물론 이것이 모두 잘못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부채를 줄이고 자산 회전율을 높이는 것은 사모펀드가 구사할 수 있는 정상적인 재무 전략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 전략이 끝내 본업의 경쟁력 회복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대형마트의 핵심은 가격 경쟁력, 상품 구색, 물류 효율, 점포 경험입니다. 그런데 홈플러스는 인수 이후 오랜 기간 이 네 가지 축에서 뚜렷한 반전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점포는 줄었고, 투자는 늦어졌고, 소비자의 발길은 온라인과 다른 오프라인 포맷으로 옮겨갔습니다. 그 결과 지금의 홈플러스는 단순한 유동성 부족을 넘어 기업가치 자체가 훼손된 상태에서 회생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
MBK가 내세우는 논리도 있습니다. 사모펀드 운용사, 즉 GP는 자금의 주인이 아니라 운용자일 뿐이라는 주장입니다. 펀드 안의 돈은 국민연금, 교직원공제회 등 출자자 LP들의 자산이며, 운용사가 특정 포트폴리오 기업의 부실을 막기 위해 임의로 자금을 집행하는 것은 선관의무 위반이자 배임 논란을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법리적으로는 일리가 있습니다. 사모펀드의 자금은 김병주 회장 개인의 돈도, MBK 운용사의 자유재산도 아닙니다. LP의 돈을 특정 기업의 정치적 구제금융처럼 쓸 수 없다는 설명은 자본시장 원칙에 부합합니다.
그러나 이 논리는 책임의 전부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홈플러스에 필요한 것은 반드시 펀드 자금이어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운용사 차원의 자본 확충, 김병주 회장 측의 추가 신용보강, 실질 담보 제공, 손실분담 약정 등 대주주가 책임을 보일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실제로 MBK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대형 운용사이고, 김 회장은 포브스 기준 국내 최상위권 자산가입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가 MBK 지분 일부를 1조 원대 가치로 평가해 투자한 사례도 있습니다. 수조 원대 자산이 모두 현금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최고의 금융 전문가 집단이 회사 청산을 막기 위한 1000억 원 안팎의 실질적 신용보강 방안을 끝내 마련하지 못한다는 설명은 시장 상식으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결국 핵심은 “돈이 없느냐”가 아닙니다. “내 돈을 어디까지 위험에 노출시킬 것이냐”입니다.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메리츠의 고민
그 사이 독배는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 쪽으로 넘어왔습니다. 그러나 메리츠를 선의의 피해자로 그릴 필요는 없습니다. 메리츠는 금융회사입니다. 홈플러스에 돈을 빌려주면서 담보를 잡았고, 위험에 맞는 금리를 요구했습니다. 그것은 자본시장에서 정상적인 거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메리츠가 추가 자금을 집행해야 한다면 그 역시 철저하게 금융의 언어로 설명돼야 합니다. 동정이나 정치적 압박이 아니라 담보, 보증, 우선변제권, 자금 사용 통제라는 조건 위에서만 움직여야 합니다.
메리츠는 이미 홈플러스 주요 점포를 담보로 1조3000억원대 대출을 제공한 최대 채권자입니다. 담보가 있다고 해서 위험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회생 절차가 시작되면 담보 가치와 실제 회수 가능성은 별개의 문제가 됩니다. 최근 홈플러스 점포의 담보가치를 두고도 메리츠와 회계법인, 감정평가법인의 시각 차이가 적지 않습니다. 기존 대출의 회수 가능성조차 평가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신규 자금 2000억원은 전혀 다른 차원의 위험입니다.
더구나 현재 MBK가 제시한 신용보강은 2000억원 전체를 덮는 구조가 아닙니다. 1000억 원 규모의 연대보증은 분명 한 걸음 나아간 조치입니다. 하지만 홈플러스가 요구하는 긴급 운영자금 전체와 비교하면 절반의 보증입니다. 채권자에게는 전체 자금 투입의 위험을 요구하면서, 대주주의 안전망은 절반만 제공하는 거래를 정당한 금융 계약이라고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와 최근 강화된 주주보호 원칙에 비춰봐도 메리츠의 고민은 가볍지 않습니다. 메리츠금융그룹은 상장 금융지주입니다. 그 뒤에는 자본을 맡긴 수많은 주주가 있습니다. 만약 정치적 압박과 여론에 떠밀려 회수 가능성이 불확실한 자금을 충분한 담보와 보증 없이 집행한다면, 그것은 홈플러스의 고통을 메리츠 주주에게 전가하는 결과가 됩니다. 메리츠가 김병주 회장과 MBK 측의 확실한 보증을 요구하고 대출 한도에 선을 긋는 것은 인색함이 아닙니다. 자본시장의 마지막 원칙을 지키려는 방어 기제입니다.
부실이 터지면 대주주는 유한책임이라는 법적 방패 뒤로 물러서고, 현장의 임직원과 협력업체, 채권자가 고통을 나눠 갖는 장면은 낯설지 않습니다. 이익은 자본이 가져가고 손실은 사회가 떠안는 구조. 책임이 사라진 자리에 곳간만 남는 자본주의의 민낯입니다. MBK가 진정으로 홈플러스를 살릴 의지가 있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권과 채권자를 향한 호소가 아니라 대주주의 추가 책임입니다. 현금 출연이든, 실질 담보 제공이든, 더 강한 연대보증이든, 시장이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먼저 자신들의 곳간을 열어야 합니다.
규제가 낳은 대형마트의 수렁
물론 홈플러스 사태를 사모펀드의 경영 실패만으로 설명하는 것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한 발 물러서면 우리는 더 큰 구조적 모순과 마주하게 됩니다. 흔히 오프라인 유통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단일 매장 매출 3조 원 시대를 열었고, 올리브영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결합한 H&B 플랫폼으로 성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백화점과 H&B, 대형마트는 업태가 다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합니다. 오프라인이 모두 죽은 것이 아니라, 변화에 맞는 룰과 투자, 고객 경험을 확보한 오프라인은 살아남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대형마트는 유독 깊은 수렁에 빠졌을까요. 답의 한 축은 정치가 채워놓은 규제의 사슬에 있습니다.
2012년 도입되고 2013년 이후 본격화된 대형마트 영업규제는 월 2회 의무휴업,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의 영업 제한, 그리고 영업제한 시간 중 점포를 물류 거점으로 활용한 온라인 배송까지 제약을 받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전통시장 보호와 근로자 휴식권이라는 명분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 유통의 전장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쿠팡, 컬리, 네이버쇼핑 같은 온라인 사업자들은 밤새 주문을 받고 새벽에 배송하며 소비자의 시간을 장악했습니다. 반면 대형마트는 도심 한복판에 거대한 물류 거점, 즉 매장과 창고를 갖고도 그것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같은 소비자를 두고 경쟁하면서 한쪽에는 24시간 고속도로를 열어주고, 다른 한쪽에는 심야 통행금지를 적용한 셈입니다.
이 규제는 대형마트를 보호하지도, 전통시장을 근본적으로 살리지도 못했습니다. 오히려 유통의 주도권을 온라인 플랫폼으로 넘겨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소비자는 전통시장으로 돌아가기보다 스마트폰 앱으로 이동했습니다. 정치가 의도한 보호의 대상은 충분히 살아나지 못했고, 규제의 대상이 된 산업은 회복력을 잃었습니다.
자본의 책임과 정치의 원칙이 마주 설 시간
따라서 홈플러스가 위기를 넘긴다면 다음 과제는 분명합니다. 산업이 숨 쉴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열어줘야 합니다. 의무휴업일의 평일 전환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영업제한 시간 중 점포 기반 온라인 배송을 허용해야 합니다. 출점 규제 역시 지역 상권 보호라는 명분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실제 소비자 편익과 물류 효율, 고용 유지 효과를 함께 따지는 방식으로 재설계해야 합니다.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이 공동 물류, 공동 배송, 지역 상생 플랫폼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도 병행해야 합니다.
홈플러스를 살리는 길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채권자가 돈을 더 넣는다고 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대주주만 비난한다고 산업이 회복되는 것도 아닙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먼저 대주주가 책임을 보여야 합니다. 그다음 채권자는 충분한 담보와 보증, 우선변제권, 자금 사용 통제 장치가 있을 때 움직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정부와 국회는 대형마트가 온라인 플랫폼과 같은 룰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낡은 규제를 걷어내야 합니다.
홈플러스 사태는 우리에게 두 가지 시험대를 던지고 있습니다. 사모펀드가 유한책임의 장막 뒤에서 이익만 취하고 책임은 사회에 넘기는 구조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그리고 정치가 표심을 위해 산업의 목줄을 죄어온 결과로 터져 나온 파열음을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7월 3일의 시한은 한 대형마트의 운명을 가르는 날짜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자본시장이 대주주의 책임과 채권자의 원칙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그리고 유통 산업정책을 과거의 표심이 아니라 미래의 경쟁력 위에서 다시 설계할 수 있는지를 묻는 날입니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홈플러스는 한 기업의 실패를 넘어, 책임 없는 자본과 책임 없는 정치가 서로의 곳간을 지키는 동안 현장만 무너져 내린 위험한 선례로 기록될 것입니다.
이홍표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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