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광풍… 영유아 계좌까지 3배로 늘어
2026.06.18 00:55
전연령대서 신규 계좌 증가
탑골공원도 회사 사무실도
사람만 모이면 주식 이야기
부산에 있는 섬유 회사에 다니는 김모(35)씨는 이달 초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아들 명의로 주식 계좌를 열었다. 김씨는 매달 정부에서 주는 아동 수당 10만원에 20만원을 더해, 월 30만원을 아들 주식 계좌에 입금해 줄 계획이다. 김씨는 “일단 상장지수펀드(ETF)부터 투자해 준 뒤 삼성전자 같은 우량 주식도 사주려 한다”고 했다.
작년 6월 3000을 넘어선 코스피가 1년 만에 8000을 돌파했다. 꺾이지 않을 것만 같은 코스피 상승세에 주식 투자 바람이 국민 전체로 확산하고 있다. 작년 말 기준 국내 주식에 투자한 개인 투자자는 1455만명. 국민 10명 중 3명이 주식을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올해 들어 코스피가 더 가파른 속도로 오르면서 개인 투자자 숫자는 더 늘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5월 한 달간 이 증권사에 새로 개설된 주식 계좌는 지난 1월과 비교해 2.22배로 증가했다. 1월에 신규 주식 계좌가 100개 개설됐다면, 5월에는 222개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연령대로 보면 30대가 개설한 신규 계좌가 같은 기간 3.15배로 증가했고, 영유아·어린이(0~9세)가 3.11배로 뒤를 이었다. 이어 20대(3.02배), 10대(2.73배), 40대(2.5배) 순이었다.
본지는 지난달 29일부터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서울 시내 회사 사무실과 식당, 서울 관악구의 한 은행 창구, 경기도 성남의 한 주식 투자 스터디룸 등을 찾았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주제는 ‘주식’이었다. 탑골공원에서 만난 정모(66)씨는 “매달 받는 연금 80만원 중 50만원으로 주식을 사고 있다”고 했다.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직장인 김모(26)씨는 “오전 9시만 되면 회사 화장실이 꽉 찬다”며 “대부분 증시 개장 시간에 맞춰 주식을 하려고 온 사람들”이라고 했다.
한국 증시에서 수익을 본 투자자들은 해외 주식으로도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 12일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된 우주 기업 ‘스페이스X’ 주식 매수에 한국 개인 투자자가 쏟아부은 돈은 1조2346억원(약 8억850만달러)이었다.
전남 순천에 사는 요양보호사 박모(63)씨는 최근 10억원을 넣어두었던 우체국 예금 통장을 해지하고 그 돈을 주식에 ‘올인’했다. 박씨는 “은행 금리는 기껏해야 3~4%인데 주변에서 다 주식으로 돈 벌었다고 하니 자금을 전부 주식에 투자했다”며 “원금을 까먹을까 불안하지만, 나만 뒤처지는 것도 무섭다”고 했다.
서울 성동구에 사는 김태우(30)씨는 미국 주식에만 투자하다가 최근 한국 주식으로 갈아탔다. 일명 ‘서학 개미’였던 김씨가 ‘동학 개미’로 변신한 것은 코스피가 급등했기 때문. 김씨는 “현재 내 총자산의 70%가 주식”이라며 “코스피 상승장에서 못 벌면 돈을 불릴 기회가 없을 것 같아 국장(국내 증권 시장)에 승부를 걸었다”고 했다.
이재명 정부 들어 코스피가 8000선을 돌파하며 ‘역대급 불장(강세장)’을 맞자 국내 주식 투자 바람이 더 커지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가 주식 매수를 위해 증권사 계좌에 맡겨둔 ‘투자자 예탁금’은 지난 5월 131조5856억원을 기록했다. 1년 전 예탁금(57조2972억원)의 2.3배로 불어난 수치다. 실제로 본지가 지난달 29일부터 돌아본 서울 탑골공원, 도심 오피스가, 은행·증권사 창구 등에선 주식에 빠진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주식 투자 바람은 노후를 맞은 고령층에서도 거세게 불고 있다. 60대 이상 고령층은 예·적금으로 예치해 둔 ‘노후 자금’을 깨 주식 시장에 뛰어들고 있었다. 지난 15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의 한 증권사 창구에는 6070세대 5명이 대기표를 손에 쥐고 상담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박현범(78)씨는 “묵혀둔 예금 통장을 다 깨서 삼성전자에 투자할 생각”이라고 했다.
노후 자금 1억2000만원을 SK하이닉스에 넣었다는 김모(82)씨는 “주가가 너무 올라서 어떨 때는 무섭기도 하지만 돈맛을 보니 즐겁다”고 했다. 서울 관악구의 한 은행 직원 정모(32)씨는 “최근 90대 어르신이 은행을 찾아와 펀드 가입을 신청했다”며 “그런데 어르신이 약관을 못 읽어 가입을 반려했다가 크게 항의하는 바람에 경찰이 출동하는 일도 있었다”고 했다.
시니어 ‘빚투(빚내서 투자)’ 열풍도 불고 있다. 금융감독원 통계를 보면 지난 3월 기준 60대 이상의 신용 거래 융자 잔고(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사에서 빌린 돈)는 8조189억원이었다. 지난해 3월(3조9465억원)보다 두 배로 늘어난 수치다.
2030세대도 주식 투자에 푹 빠져 있다. 서울에서 대기업에 다니는 전모(27)씨는 최근 자산의 80%를 주식과 코인에 투자했다. 그는 “부동산은 너무 올라 진입할 엄두를 낼 수 없으니 투자할 곳은 주식뿐”이라고 했다. 전 재산 5억원을 주식에 투자했다는 이종희(37)씨는 “불장인데 은행 예적금만 하다가는 ‘벼락거지’가 될 것 같았다”고 했다. 2030세대의 ‘포모(FOMO·뒤처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가 주식 열풍에 부채질을 하는 셈이다.
근무 시간에 몰래 주식 투자를 하는 직장인도 적잖다. 실제로 서울 도심 오피스에서는 평일 오전 9시 주식장이 열리면 직원들이 사무실을 빠져나가 화장실로 모이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상사 눈치 보지 않고 화장실에서 주식 투자를 하기 위해서다. 실시간 주가를 ‘엑셀 파일’로 위장해 보여주는 주식 사이트도 유행이다. 업무 중인지 주식창을 보는지 분간이 안 가게 꾸민 이 사이트는 하루 평균 2500명이 동시 접속한다.
게임보다 주식에 관심이 더 많다는 10대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한모(13)군은 포스코홀딩스, 한미반도체, 한국전력에 투자한 ‘소액 주주’다. 그간 모은 용돈 200만원을 넣었는데 최근 ‘불장’이 이어지며 300만원으로 잔고를 불렸다. 한군은 “학교 도서관에서도 주식 투자법을 소개하는 책을 찾아 읽는다”고 했다. 한군 친구 박지호(13)군은 “예전에는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게임 얘기를 했는데 요새는 주식 이야기를 더 한다”고 했다.
본지는 지난 15일 경기도의 한 중학교 1학년생 8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응답자(84명)의 44.1%가 ‘주식 투자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주식에 투자한 이유(중복 선택)로는 ‘용돈을 불리고 싶어서’(46.3%) ‘어른이 됐을 때 자산을 관리하기 위해’(44.8%) ‘부모님이 시켜서’(19.4%) 등이었다.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에 있는 한 중학교엔 ‘주식 동아리’가 생겼다. 20명 모집에 80여 명이 지원해 경쟁률이 4대1을 넘겼다고 한다. 토스증권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미성년자(0~만 19세) 전용 ‘아이계좌’를 개설한 사람은 18만480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1만8738명)과 비교하면 863% 증가했다.
주부 김주연(48)씨는 경제 유튜브 채널 ‘삼프로TV’ 시청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최근 주부들도 주식시장에 많이 뛰어들고 있다”며 “유튜브 외에는 따로 주식 공부를 하지 않는데도 시장이 좋다 보니 수익률이 쏠쏠하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주식 중독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는 환자도 늘고 있다. 서울 구로구에서 정신건강의학과를 하는 박종석 전문의는 “주식 투자로 인한 우울증·공황 증세로 우리 병원을 찾는 환자가 2021년에는 하루에 1.5명꼴이었는데 최근에는 9.8명까지 늘었다”며 “주식으로 돈을 벌고도 ‘남들이 더 벌었다’는 생각 때문에 불안을 느끼는 환자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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