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간 전
[기자의 시각] 근현대 150년만 중한 게 아니다
2026.06.17 23:38
휴일에 드라마와 영화를 즐겨 본다. 구독하는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가 다섯 개고 영화관도 종종 가다 보니, “안 본 드라마나 영화가 있긴 하냐?”는 핀잔을 자주 듣는다. ‘도파민’을 손쉽게 충전하는 방법이라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곤 한다.
그런데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곤 도파민 충전에 실패했다. 1689만여 명의 마음을 울린 히트작이었지만, ‘이렇게 호소력 있는 역사가 왜 이리 늦게 영화화된 걸까?’ 하는 의문이 먼저 자리 잡아 버린 탓이다. ‘한국사 수업에선 왜 단종이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불쌍하게 죽은 왕 정도로만 언급될까? 시신을 누가 어떻게 수습했는지는 왜 배우지 못했을까?’ 같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을 본 뒤엔 반성하느라 혼이 났다. 이안대군 즉위식 장면에서 신하들이 “만세” 대신 외치는 “천세”(중국의 제후국에서 쓰는 표현)가 어떤 의미인지, 왜 문제가 되는지 기사를 읽기 전까진 몰랐기 때문이다.
한국사 수업에서 단종과 조선 시대 왕 즉위식을 좀 더 깊고 자세히 가르친다면, 앞으로 단종을 주인공으로 삼는 콘텐츠가 더 다양하게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21세기 대군부인’에서 불거진 논란은 반복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희망은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시대사별 분량에 막혀 실현되지 못하는 게 교육의 현주소다. 고조선과 삼국시대·남북국시대·고려·조선을 다루는 전근대사 비중이 35%로 작기 때문이다. 중학교에서 전근대(80%)를 충분히 가르친다곤 하지만, 역사 교육계에선 “의미와 맥락을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5000년 한국사 중 시간적으로 훨씬 긴 전근대사 수업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하지만 요즘 교육부는 중학교 역사 교과서 내 근현대사 분량 늘리기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현행 20%를 30% 이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현대사는 현대 사회를 통찰할 수 있는 핵심 요소지만 고교 이전 근현대사 교육이 분량 등의 제약으로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인데, 전문가들은 학생들의 전근대사 지식 부족 현상 역시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신유아 인천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과거엔 상식이었던 원광법사 세속오계, 원효와 의상을 요즘엔 역사 전공 학생들조차 모르는 실정”이라고 했다.
근현대사만이 지금 한국 사회를 설명해주고 또 성장시킬 수 있는 건 아니다. 전근대 시기 조상들의 흥망성쇠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줄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전근대사엔 ‘케이팝 데몬 헌터스’ 호랑이(더피)와 까치(수지)의 원형인 까치호랑이(호작도)처럼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역사가 많다. 5000년 한국사 가운데 150년 근현대사만 중한 게 아니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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