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 대신 판다는 제품이…' 중국에 밀린 폭스바겐 '초강수'
2026.06.17 17:48
중동·우크라 전쟁 여파
늘어난 무기 수요 '정조준'
中 저가 전기차 공세에 실적 악화
남는 공장서 무기 부품 만들어
GM, 록히드마틴과 협력 논의
르노, 탈레스와 드론 생산 계약나치 독일군의 다목적 군용 지프차 퀴벨바겐 5만2000대를 생산한 폭스바겐, 미군에 트럭부터 폭격기까지 다양한 군수물자를 공급하며 ‘민주주의의 무기고’로 불린 미국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 2차 세계대전 때 방위산업 기업으로 이름을 날린 미국과 유럽의 대표 자동차 회사가 최근 방산 사업에 다시 뛰어들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과정에서 유럽이 재무장에 속도를 내고, 미국이 이란 전쟁에서 소진된 무기를 보충하는 과정에서 관련 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기차 경쟁에서 뒤처지며 늘어난 유휴 설비를 신사업에 활용하려는 자동차 기업들의 전략과 맞아떨어졌다.
17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GM과 포드, 유럽 폭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다임러 등 대형 자동차 기업이 방산 사업을 시작하거나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10여 년 전 보병용 차량을 생산하는 GM디펜스를 설립해 방산 사업에 재진출한 GM은 최근 록히드마틴과 ‘범용 무기 부품’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안을 논의하고 있다. 록히드마틴은 F-35 전투기,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미사일, 블랙호크 등을 공급하는 미국의 핵심 방산 회사다.
유럽 자동차 기업도 방산 진출에 적극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날 로이터통신은 “프랑스 르노가 방산 기업 탈레스와 함께 군용 드론을 제조한다”고 보도했다. 르노는 공장 한 곳을 활용해 탈레스의 투타티스 드론 월 1000대를 생산할 예정이다. 투타티스는 1㎏짜리 탄두를 장착하고 목표 지역 상공에 머물다 적을 타격하는 드론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핵심 무기로 부상했다.
르노는 프랑스 드론 제조사 튀르지가이야르와 장거리 드론 개발을 위한 ‘코러스’ 프로그램도 추진하고 있다. 첫 시제품은 올해 말 나올 예정이다. 이 밖에 메르세데스벤츠는 인공지능(AI) 기반 드론 방어 스타트업과 손잡고 대공 방어 및 안티 드론 시장에 진출했다. 폭스바겐도 최근 이스라엘의 미사일 방어 시스템 아이언돔에 필요한 부품 생산을 논의 중이다. 포드 역시 군사용 차량 공급을 미국 정부와 조율하고 있다.2022년부터 이어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100일 넘게 지속된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미국과 유럽 주요 국가 무기 재고는 상당 부분 소진된 상태다. 미국이 이란과의 전쟁에서 1000기 넘게 소모한 토마호크·패트리엇 미사일을 완전히 보충하려면 3년 이상 걸릴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역시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자주 국방’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무기 수요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빠른 무기 공급’이 필요해진 주요국 정부가 떠올린 건 2차 세계대전 때 군수물자를 생산한 노하우가 있는 자동차 기업이다. 마침 중국 비야디(BYD), 지리, 샤오펑 등의 전기차 공세로 실적이 급감하고 유휴 생산 라인이 늘고 있는 미국·유럽연합(EU) 자동차 기업에도 방산 일감은 ‘가뭄 속 단비’로 평가된다.
이호중 한국자동차연구원 산업조사실장은 “주요 글로벌 자동차 기업은 과거 군용차를 생산해본 경험이 있다”며 “무기 증산에 나선 각국이 수백만~수천만 대 제조 능력을 갖춘 자동차 기업에 생산을 요청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 기업도 미국과 EU가 주도하는 글로벌 방산 시장의 성장성에 주목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P글로벌과 리서치앤드마케츠에 따르면 글로벌 상용차 판매량은 2025년 9290만 대에서 2026년 9260만 대로 소폭 줄지만, 방산 시장 규모는 같은 기간 5069억달러에서 5427억달러로 약 7%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방산 사업을 분리해 계열사를 세운 뒤 본격적으로 육성하려는 기업이 늘고 있다. 다임러트럭은 지난 15일 군용차 전문 브랜드 다임러트럭디펜스를 공식 출범시켰다. 민간 트럭시장 수요 정체로 올 1분기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약 80% 급감하자 실적 부진 돌파구를 방산에서 찾겠다는 것이다. 데니스 킨젤만 다임러트럭디펜스 최고경영자(CEO)는 “2028년까지 방산 분야에서만 연간 10억유로(약 1조7500억원) 매출을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자동차 기업이 전투기, 미사일 등 방산 핵심 분야에까지 진출할 수 있을지를 두고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수송 차량, 더 나아가 장갑차는 다룰 수 있겠지만 탱크와 첨단 무기 시스템 사업 진출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당분간 방산 기업과 협업해 보조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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